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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첩의사 Mar 17. 2023

이번에도 또 못 살리고 장례식장으로

누군가의 어머니 장례식장에 가다.



누군가의 어머니 장례식장에 가다.


이번에도 또 못 살리고 장례식장으로




1.

이번에도 또 살릴 수 없었다.


기억을 거슬러 다시 날짜를 헤아린다. 그리고 적어놓은 환자의 병록번호를 자판에 두드린다. 당시 상태, 혈액검사 그리고 CT, X-ray를 다시 살핀다. 벌써 몇 번 째인지 모르겠다.


달력이 수십 장 넘겨지고 떡국도 여러 번 먹고 오래전 일이다. 상외과 10년차가 넘어가도 또 못살렸다.


나는 또 환자를 살리지 못하여 장례식장을 향한다.


순간 잠에서 깨었다. 꿈이었다.

 





2.

"저기 동네 사람들! 우리 마누라 치료해 줬던 의사 선생님 오셨네!"



멀리서 나를 알아본 할아버지가 큰소리로 말씀하신다. 눈이 퉁퉁 부어있는 할아버지는 동네 사람들 모두 들으라는 듯 한 번 더 커다랗게 말한다. 이곳이 장례식장이 아니라면 마치 대단한 사람이라도 온 것 같이 자랑하는 큰 목소리다. 나는 할아버지 목소리가 나를 부르는 것이 아닌 이미 세상 사람이 아닌 할머니를 그리워하며 부르는 것으로 들린다. 멀리 선배 얼굴도 보인다. 며칠간 엄마를 치료해 주고 마지막 사망 선고까지 한 후배인 나를 멀리서 보고 이미 퉁퉁 부어있는 눈으로 눈인사를 건넸다.



누군가의 어머니, 동시에 한평생을 같이 산 아내를 떠나보내는 자리인 장례식장이다.


 나에게 있어 나와 동고동락한 환자를 떠나보내는 자리는 병원 중환자실이다. 내가 어제 중환자실에서 떠나보낸 환자에게 다시 한번 인사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 방금 나를 큰 소리를 불렀던 분은 하루 전까지, 정확히 몇 시간 전까지 중환자실 문 앞과 환자가 마지막 운명하는 순간에도 나와 함께한 환자의 남편이다. 이곳은 내가 존경하는 선배님 어머님의 장례식장이다. 그렇다. 나는 지금 선배님 어머님이면서 동시에 내가 어제까지 치료하였던 환자의 장례식장에 왔다.


장례식장은 언제 가도 마음이 무겁기만 한 공간이다. 인사를 드린다. 꾸벅 두 번 절하고 영정을 바라보고 인사한다. 중환자실 침대에 몇 시간 전까지 실제 얼굴, 온몸을 삶의 끝자락에서 조금이라도 생을 이어가려 했던 환자였다. 이제 마지막 가는 길을 잘 가시라고 인사를 드렸다. 하루 전까지 나와 같이 중환자실에서 힘들게 마지막 생명의 끝자락을 잡으시려고 애쓰셨던 환자분이셨는데 영정 속 사진은 너무나 밝게 웃고 계신다.



며칠 전 선배님으로부터 다급하게 어머니의 교통사고 소식 전화가 온 순간,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하였다.

 '꼭 살려드리겠다고.'


그러나 나의 다짐은 만 이틀도 안 돼서 허망하게 혼자만의 약속으로 끝났다.




3.

밤새워 뒤척인다.


머릿속에서는 도대체 어디서 문제였는지 자꾸만 시계를 다시 되돌렸다가 다시 제자리로 왔다가를 반복한다. 늦은 밤, 뒤척이는 내 옆 핸드폰에 동문회를 통해 문자가 온다. 역시나 선배님 어머니상 문자이다. 나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인데 바로 문자를 지워버리려다가 장례식장이 어디인지는 보았다.

누군가의 어머니, 가족이다. 어머니는 아들 등에 바짝 붙어있는 존재이다. 그 아들이 어디에 가든지 항상 마음과 몸이 함께하는 존재가 어머니다. 나와 친분 있는 선배님의 어머니라기보다 누군가의 어머니이기에 모든 환자는 최선을 다해 치료해야 한다.



밤새워 뒤척였지만, 다음 날 어떻게 눈이 떠졌다. 병원에는 다시 내가 돌보고 치료할 환자들이 있다. 다행히 어제의 큰 파도가 지나가서인지, 다른 환자들은 큰 문제가 없이 잘 치료가 되고 있다. 나도 모르게 집에서 검정 옷을 주섬주섬 갈아입고 운전대를 잡았다. 어젯밤 본 문자에서 본 장례식장으로 차는 가고 있었다. 장례식장 문을 들어서면 선배를 먼저 찾아야 할지, 고인의 남편인 할아버지를 먼저 찾아야 할지부터 고민이다. 다음은 어떤 말을 하고 위로의 말을 어떻게 할지, 바로 어제 병원에서 안타까운 말을 다시 어떻게 전해야 할지 고민하는 끝에 차는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멀리서 나를 보고 큰 소리로 부르시는 할아버지, 애써 슬픔을 억누르려고 더 큰 소리로 말씀하신다. 한평생을 같이 한 아내를 떠나보내는 아픔을 장례식장에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장례식장을 나서면서 할아버지와 선배님, 그리고 가족 모두 나에게 인사를 하셨다. 오히려 나는 가족들 모두에게 죄송하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조용히 고개만 숙이고 얼른 장례식장을 빠져나왔다.


누군가의 어머니, 그리고 가족이 세상을 떠나는 슬픔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머릿속에서는 자꾸 엊그제 중환자실 침대에 계신 아직 살아계셨던 어머님의 얼굴과 영정 속에 밝게 웃고 계신 어머님의 사진이 겹쳐 보였다. 하지만 이렇게 해야지 내 마음속에 후회를 조금이나마 억누를 수 있다. 또 다른 누군가의 가족이 온다면 살릴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나에게 불어넣을 수 있었다.



그날 나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와 방금 내가 다녀온 영정 속 환자분의 처음 의무기록, 검사 등을 다시 보고 또 보았다. 너무나 심하게 다치시고 고령 환자에 여러 질병을 앓고 있는 상태, 그 순간 또 어떤 처치를 했어야지 환자가 살 기회를 더 가질 수 있는지 고민하고 고민하였지만, 역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환자분이 병원에 있을 당시에는 점차 악화하는 환자 치료에 집중해서 단순 교통사고로만 알았다. 그러나 장례식장에서 선배를 통해 들은 처참한 사고를 들으니 그 사고를 낸 차, 운전자가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하루 전 병원에서 그리고 지금은 장례식장에서 뭐라 제대로 위로의 말을 드리지 못하였지만 안타까움만 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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