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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첩의사 Aug 07. 2023

죽고 싶다

'당신이 있어 행복했어' 부인의 마지막 말...



죽고 싶다

 



순간 숨이 멎는다. 숨을 쉬려 해도 쉬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여름 워터 파크에서 2미터가 넘는 물속에 빠져 내 몸이 머리끝까지 완전히 잠겨 물속에서 허우적거렸다. ‘정말 사람이 이렇게 죽는구나!’ 누군가 구해주지 않으면 나도 물속에서 즐거운 수학여행 가는 도중 바닷속에서 영영 나오지 못한 학생들처럼 이대로 이 세상과 이별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그런 상황에 남겨진 사랑하는 가족 얼굴……. 짧은 순간이지만 너무나 두려웠고 어떻게든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였다. 두려운 죽음 문 앞까지 갔던 나는 다행히도 잠시 한눈 판 안전요원 도움으로 무사히 물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살았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이처럼 무섭고 두려운 죽음을 간절히 원했던 내 마음 깊은 곳에 간직했던 한 환자가 생생히 떠올랐다.

 






J와 첫 만남은 어느 겨울 늦은 저녁, 고통 속에 헤매는 긴박한 환자들이 넘쳐나는 응급실이었다. 지게차 운전자가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J의 골반 위를 밟고 지나가버린 상태로 내게 실려 왔다. 응급조치 후 시행한 CT 검사 상 골반 내에 심한 장기 손상과 급성 출혈하고 있고 혈압은 낙하하듯 떨어지고 있었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수술실로 가는 방법만이 유일하게 J가 살 방법이다. 수술 결정 후 가족과 첫 만남에서 내가 전한 말은 냉정하고 차가웠다.

 



“환자 상태가 너무 안 좋으십니다.

수술한다 하더라고 생존 가능성은 매우 낮으나 수술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저희 외상팀에서 최선을 다해 수술하겠습니다.”

 



내 말에 부인과 두 아들은 혼미한 정신에 제대로 된 대답이나 질문조차 하지 못 한 채로 굵은 눈물과 말없이 끄덕이는 고개로 수술 동의서로 대신하였다. 수술실 안에서 상황은 생각보다 더욱 절망적이었다. 아무리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골반 내 출혈은 더 이상 수술이 무리고 의미 없어 보였다. 수술실 안으로 보호자를 대표하여 큰 아들을 불렀다. 임시 덧 가운, 마스크, 모자를 어색하게 쓰고 들어온 아들. 얼마나 울었는지 뿌연 안경 렌즈 사이로 빨간 눈동자가 어렴풋이 보였다. 피가 주르륵 흐르는 수술 부위를 아들에게 보여주며 나는 꽉 깨문 이빨 틈으로 침착하게 또박또박 말했다.

“보시다시피 너무나 출혈이 많고, 혈압이 낮아 더 이상 수술은 무리이며, 의미가 없습니다. 이제 수술 마무리 하고 중환자실로 옮기겠습니다.”

내 말은 곧 아들에게는 아버지 사형선고였다.

순간 수술실 안 여러 의료진 모두가 숙연해졌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외상팀 전원은 출혈이 멈출 수도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거즈압박과 지혈제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마무리하고 중환자실로 옮겼다.

 


“가망이 없습니다. 가족 모두 마음 준비 하십시오.”

 


이 말과 동시에 부인은 바닥에 철퍽 주저앉으며 오열하며 실신하였다.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응급실에서부터 수술까지 몇 시간 동안 긴장으로 다리는 아무런 힘도 없었지만, 집도의를 믿고 수술에 동의해 준 보호자 앞에서 차마 힘든 내색할 수 없다. 게다가 그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게 될 가슴 아픈 상황이 아니던가! 나는 J 주치의와 동시에 집도의로서 침착하게 다리에 힘주며 마음을 다잡은 나는, 이어 말했다.


“너무 심한 골반 골절로 인해 주위 장기, 혈관 손상이 심하여 골반강 내로 출혈 부위가 많아 지혈을 할 수 없었습니다. 현재로선 지혈제와 거즈압박 통해 최선의 치료를 했습니다.”

 


입에는 일반적인 중증외상 환자 수술 후에 보호자에게 설명하듯이 ‘출혈, 대량수혈, 응고장애, 다발성 장기부전……. 등등’ 이러한 말이 무의식적으로 섞어 나왔다. 하지만 부인과 두 아들에게 그 많은 의학 용어는 절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족에게는 오로지 한 마디, ‘가망이 없습니다.’라는 말만 들렸다.

 


늦은 밤 수술을 마치고 보호자에게 절망 같은 말하였지만 아직은 끝나지 않았다. 보호자에게 그렇게 말하였다 하더라도 환자를 담당하는 외과의사는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몸에 달린 여러 개 굵은 관을 통해 새빨간 혈액과 여러 약물이 쉼 없이 들어가고, 이에 더해 중환자실 밖에서 간절히 기도하는 가족, 그리고 외상팀 모두 최선의 노력이 함께 모여 살 수 있다는 한줄기 희망을 찾아가는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응급실 시작부터 수술까지 이어지는 수 시간 동안 나는 너무나 지친 나머지 중환자실 간이 의자에서 잠시 새우잠을 청하였다. 얼마간 시간이 지났는지 나는 모니터 알람 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순간 무의식적으로 바로 J의 모든 상태를 보여주는 모니터로 향했다. 혈압이 올라갔다. 그리고 배액관 통해서 나오는 출혈량도 현저히 줄고 있으며 동시에 들어가는 수혈양도 줄어들고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안정화되며 또다시 시간이 지났다. 시나브로 혈압은 정상 범위를 향해 가고 불현듯 나는 J의 머리 상태가 걱정되었다. 초기 머리 외상은 없었으나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저혈압 상태가 지속되었기에 자칫 허혈성 뇌손상이 발생할지도 모르는 상황. 하지만 가족의 간절한 기도가 통했는지 J는 수술한 지 삼일 째 되는 날, 기적과도 같이 동공반사도 돌아오고 미약하나마 손가락이 움직였다. 그로부터 이틀 후에는 스스로 눈도 깜박였다. 환자 옆에서 떠나지 못하고 지켜있던 나와 외상팀 모두는 이러한 상황이 믿기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또 다른 희망으로 더 적극적으로 치료하기 시작하였다.

 


기도삽관으로 인해 말은 할 수 없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J를 애타게 응원하던 가족과 눈 맞춤하고, 가족 손을 잡고 서로 체온을 나누는 자체만으로도 가족은 너무나 기뻐하였다. 나 역시 내 입으로 몇 번이나 사망선고 한 J를 어쩌면 건강한 모습으로 사랑하는 가족 품으로 돌아갈 희망이 조금씩 생기게 되었다.

 


출혈은 점차 멎어갔고 상태가 어느 정도 안정화된 이후 2차 수술에 들어갔다. 2차 수술에서는 첫 수술 당시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서 시행하지 못하였던 골반골 외고정술, 방광루 및 대장루 만드는 수술을 하였다. 하지만 도저히 잡히지 않던 출혈이 멈추고 2차 수술까지 무사히 시행한 우리에게는 마지막으로 크고 넘기 힘든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감염과 싸움이다. 초기 골반골절로 인한 골반주위 근육의 광범위한 괴사, 방광과 직장 천공으로 인한 감염이 시작되었다. 감염은 점차 확대되어 패혈증과 다발성 장기부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점차 악화되는 전신 상태와는 반대로 J의 의식은 하루가 다르게 점차 또렷해졌다. 하지만 복부와 골반 근육은 수많은 뼈 조각이 파고들어 짓눌러졌다. 감염된 조직이 녹아내리고 도려내지는 근육, 피부 감염으로 인한 고통이 점차 심해져 갔다. 그러한 고통 속에서 J는 하루 두 번 면회시간마다 찾아오는 가족 손을 놓지 못하였다. J에게는 가족들이 잡아주는 손이 유일한 진통제이며 희망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J가 느끼는 고통은 가족이 잡아주는 손과 기도만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었다. 점차 심해지는 감염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 부전은 현재 나와 있는 그 어떤 약물로도, 가족의 수없는 눈물방울과 기도가 모이고 모여도 막을 수 없었다.

 


나와 모든 의료진이 감염과 다발성 장기부전과 싸움을 계속하던 어느 날. 감염이 더욱 심해지고 패혈증까지 진행되어 의식도 흐린 상태에 손힘마저도 점차 약해지고 있던 J가 부인 손바닥에 몇 글자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죽. 고. 싶. 다.’

 






물속에서 짧은 순간이지만 죽음이 너무나 두렵고 사랑하는 가족 생각에 살고 싶다는 애타는 느낌이 간절했던 나는 J가 과연 어떤 심정으로 죽음을 간절히 원했는지 궁금하였다. 물속에서 숨이 멈춰지며 점차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 하지만 J에게는 몸이 썩어가는 고통을 차마 이겨낼 마지막 의지보다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하였다. 살이 썩어 들어가고 몸속 모든 장기가 하나씩 죽어가는 상태에서 지게차가 짓누른 그날의 고통이 자꾸만 떠오르는 J. ‘죽고 싶다’는 이 네 글자가 어찌 보면 J에게는 인생 마지막 소원이었다. 시간을 거꾸로 돌려 처음 수술실에서 출혈이 멈추지 않았더라면 J에게 살이 썩고 녹아내리는 고통이 없었을까, 또 가족이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조금이라도 덜어주었을까 하는 간사한 생각이 내 뇌리를 스쳐갔다.



J와 가족과 만남이 있은 지 정확히 15일 되는 날.

수차례 더 수술을 통해 감염조직을 제거하고 수많은 항생제를 쏟아부어도 소용이 없었다. 더 이상 방법은 없었다. 가족의 간절한 기도나 외상팀 노력이 제 아무리 더해져도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패혈증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부전이 이제는 마지막 단계인 심장으로까지 전해졌다. 마지막까지 심장을 짜주던 약물도 이제 소용이 없다. 이젠 심장 뜀박질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는 모니터를 보며, 나는 힘없는 목소리로 옆에 있는 담당 간호사에게 말한다.

 


"가족 모두 불러주세요."


 

지난 15일간 그 많은 울음을 쏟아부은 가족은 어디에 눈물샘이 남아있는지 중환자실 밖에서부터 목 놓아 울며 들어왔다. 내 가슴속에도 소리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당신이 있어 행복했어.

당신이 나에게 준 우리 두 아들, 정말 고맙고. 잘 키울게…. 좋은 곳으로 먼저 가있어요. 여보…….”


나는 가족이 모두 울부짖는 상황에서 정말 입 밖으로 나오기 정말 힘든 마지막 말을 하였다.

 



“ J 환자분, OOOO 년 O월 O일 O시 O분 사망하였습니다.”

 


울컥, 내 눈에도 지난 보름동안 참고 참았던 눈물이 고였다. 다시 가족 품으로 돌려드리지 못하고 떠나보냄에, 가족에게 J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 못 듣게 해 주어 너무나 미안함에, 내가 결국 가족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는 서러움에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이 내 앞을 가렸다. 마음속으로 외상외과 의사 한계가 여기까지인지 고민도 되었다. J를 떠나보내는 가족의 슬픔 크기만큼이나 하얗고 많은 함박눈이 창밖에 흩날리고 있었다.

 


‘ J 환자분은 마지막으로 부인이 말한 ‘당신이 있어 행복했어.’을 듣고 고통 없는 곳으로 가시며 편안히 눈 감으셨습니다.’라는 말이 내 입속에서 조용히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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