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개떡과 함께 봄은 시작되었다.
쑥개떡
쑥개떡과 함께 봄은 시작되었다.
1.
벚꽃은 본격적인 봄의 시작을 알린다.
흐드러지게 피어난 벚꽃을 맞으며 카이스트 안 교정을 거닐고 있으면 봄이 된 것을 몸으로 느낀다. 벌써 몇 해 동안 불청객으로 마스크에 가려져 벚꽃이 이미 흐드러지게 피고 졌지만 이제서야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본격적인 봄이 시작된 것 같다. 카이스트 교정, 교문도 들어가 벚꽃들을 보면 더더욱 봄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옷은 점점 가벼워지고, 슬슬 반팔이 하나씩 꺼내야 할지 고민하는 따뜻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이렇게 고민하는 사이 봄은 언제 사라질지 모르고 훌쩍 뛰어넘어 여름으로 변신할지도 모른다.
봄이 와도 아직 겨울의 끝자락인지 아니면 여름의 시작인지 구분이 안 되는 시점.
아마도 당직을 마치고 파김치가 되어 오전에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기에 계절이 무엇인지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이 순간 바로 필요한 것은 바로 잠이다. 침대에 풍덩 빠져버리는 것.
비몽사몽의 순간 머릿속으로
‘ 아 참. 어제 고향에서 쑥개떡 택배가 왔다고 했지?’
입안은 쑥개떡이 들어가야 봄이 시작된다.
2.
아들과 딸은 쑥개떡 맛을 모른다.
성심당의 튀소(튀김소보르) 정도의 달콤함과 기름에 튀긴 탄수화물이어야지 눈을 힐끗 준다. 기름과 단맛에 절은 탄수화물에 깃들여지고, 이제는 스벅에서 먹는 치즈 듬뿍 머금은 크로스 무슈 정도는 되어야 맛있다고 달려들며 먹는다.
시간을 거꾸로 돌려 나의 어린 시절, 건너 건넛마을에 사시는 나의 할머니가 떡을 만들어 우리 집으로 손수 들고 오셨다. 나는 할머니의 떡을 예의상 한두 개 입에 가져가는 시늉을 했던 기억이 나다. 여러 어르신들의 눈빛에 못 이겨 먹는 나와는 달리 입에 딱딱 달라붙게 그 떡을 맛있게 먹었던 나의 아빠,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결국 이 떡은 아들을 먹이려는 엄마의 마음이다.
3.
쑥개떡은 전자레인지에 1분 30초를 돌리면 따뜻하게 먹음직스러워진다.
고향 표 쑥개떡은 찐 다음 두세 개씩 나누어 비닐 포장을 한 후 급속 냉동을 한다. 엄마가 만든 쑥개떡이 담긴 아이스박스 택배는 다음날이면 우리 집 아파트 현관 앞에 온다.
쑥개떡의 사전적 정의는 [ 노깨나 보릿겨 등에 쑥을 넣고 반죽하여 둥글넓적하게 아무렇게나 반대기를 지어 찐 떡 ] 이라고 나온다. 노깨는 체로 쳐서 밀가루를 뇌고 남은 찌꺼기, 보릿겨는 보리에서 보리쌀을 내고 남은 속겨라 한다. 노깨, 보릿겨는 잘 모르겠고 귀한 쌀이 아닌 구하기 쉬운 찌꺼기 등을 이용하여 주린 배를 채우는 음식을 말하는 것이다. 너무 거칠고 맛이 없을까 봐 그나마 봄에 구하기 쉽고 맛난 쑥을 넣은 떡을 말하는 것이다.
사전을 쓴 사람은 아마도 요즘의 쑥개떡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최근의 쑥개떡의 정의를 바꾼다면 쌀가루에 쑥을 넣고 반죽하여 둥그렇게 만들어 찐 떡이라 말할 수 있겠다.
당직 다음날은 파김치가 된다. 내가 전날 당직을 하는 동안 어떻게 사람들을 살릴 기회를 더 주었는지, 혹시나 내가 부족해서 환자가 안 좋은 길로 가는 것은 아닐지?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뛰어다니다 보면 당직 시간이 훌쩍 간다. 다행히 든든한 당직 교대 선생님이 이어 오셔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한다.
비몽사몽 집으로 가는 길에 쑥개떡 생각에 갑자기 마음과 발걸음이 빨라진다. 집에 도착해서 씻는 것은 잠시 미루고. 비닐에 쌓여진 쑥개떡을 손으로 살짝 만진다. 거의 해동이 된 상태이기에 정해진 매뉴얼, 전자레인지에 1분 30초를 돌린다. 따뜻한 쑥개떡과 그윽한 쑥 향기가 내 앞에 놓인다.
쑥개떡이 입안으로 들어간다.
이번 떡에는 콩과 더불어 팥까지 함께 있어 쑥을 머금은 떡과 콩, 팥의 아삭 담백함이 어우러진다.
떡은 이빨로 잘게 잘리고, 쑥 향과 콩의 고소함이 입안 가득 퍼진다.
혀를 타고 신경을 따라 뇌로 전해지는 고향의 봄 향기가 느껴진다.
비로소 나의 봄은 시작되었다.
불청객이, 마스크가 막아놓은 봄은 결국 쑥개떡 앞에는 어쩔 수 없이 봄 빗장을 열어버렸다.
남은 것은 냉동실에 보관이다. 다음에 냉동 쑥개떡은 4분 30초를 돌려야지 따끈 맛있는 촉감으로 다가온다. 물론 미리 냉동실에서 꺼내어 해동이 된다면, 마찬가지로 1분 30초 전자레인지에 들어갔다 나오면 된다. 가끔 따끈한 쑥개떡보다 살짝 식은 쑥개떡이 오히려 찰지고 쑥 향이 더욱 그윽하게 입안에 감쌀 때도 있다. 따뜻한 것은 따뜻한 데로, 차가운 것은 차가운 데로 입안에 딱 달라붙고 쑥 향 가득 그윽함을 맴돌게 한다.
이번 쑥개떡이 떨어지고 옷장에서 반팔이 한두 개씩 나올 때쯤, 2차 쑥개떡 택배가 온다.
그것은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쑥개떡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