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한 듯, 그러나 애써 태연한 표정의 그의 모습이다. 곧 이 침대를 타고 차디찬 수술실로 들어갈 것이다. 지난 세 번 수술은 정신없는 상태로 수술실로 들어갔으나 오늘 수술은 맨 정신에 들어가는 수술실이다. 환자 눈가에 눈물이 살짝 맺어있다.
나와 처음 만나 J 환자.
70대 시골 아저씨이나 생각보다 근육질에 건강한 체격이셨다. 그분에게는 항상 옆을 지켜주고 보살펴주는 아내가 있었다.
칠십 평생을 병원 한번 가보지 않은 그에게 지난 한 달간 네 번 몸에 칼을 대는 순간이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직전에 이번 수술이 잘 끝날 것이라고 걱정 말라고 안심을 시켜준다. 내가 세 번째 칼을 댄 외과의사 손이었고 다음 네 번째 칼을 잡는 의사는 오늘 수술을 마음속으로 준비하고 계실 것이다.
지난 세 번의 수술은 다치고 피가 나고 부러진 곳을 수술하였지만 이번에는 고약한 혹을 떼에 내는 수술이다.
2.
한창 바쁜 농번기이다. 매번 가는 익숙한 집 근처 길을 지나고 있다. 순간 아차 싶은 찰나에 저 아래 도랑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순간 정신을 잃고 이리저리 몸을 일으키려 하였으나 몸이 안 움직였다. 숨도 차고 어지러웠다. 하지만 하늘이 도운 것인지 지나가는 마을 사람이 나를 발견하고 바로 119에 신고하였다.
그 이후로는 기억이 없다. 어디론가 실려와서 몸에 여기저기 관을 꽂고 정신을 또 잃어버리고 깨어나니 중환자실이란 곳이다. 내 몸에 많은 사람들의 손이 닿았고 관들을 꽂아 넣었다. 붉은 피도 내 몸속으로 많이 들어갔다.
내 몸에 피나는 곳을 지혈하고 허리에 쇠를 박아 고정을 하고, 피가 나는 비장을 떼어냈다고 하였다. 밥을 한 숟가락 먹기 시작할 즈음, 몸에 혹이 하나 발견이 되어 신장을 떼어낸다고 한다. 아직 몸에 상처가 다 아물지도 않은 것 같은데 또 수술을 한다고 한다. 잠시 또 몸에 네 번째 칼을 대는 것에 두려움이 생겼으나 혹에 대한 걱정과 세 번째 칼잡이를 믿고 이 병원의 네 번째 칼잡이에 내 몸을 맡기기로 하였다.
3.
환자는 처음 응급실로 왔을 당시 한두 시간, 그리고 세 번째 수술 직전부터 내가 담당하였던 환자다. 몸에 중요 부위인 가슴, 복부에 출혈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몸을 지탱해 주는 척추에 심하게 부러졌다. 말 그대로 중증외상환자이다. 70대 나이에 무색하게 여러 번 수술과 중환자실 치료, 수술 전후 과정과 회복에 잘 견디었다. 지연성으로 출혈된 비장 수술도 잘 회복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워낙 심하게 다친 상태이었고 출혈도 많이 되어 의료진들과 환자 가족들 모두 걱정도 많이 했지만 그만큼 더 열심히 치료하였다.
그러나 또 다른 넘어야 할 곳이 있었다. 몸 안에 고약한 덩어리. 악성 물질인 것이다. 중증외상환자 손상 부위 평가 위해 CT 검사를 대부분의 환자에게서 시행한다. 내가 보는 우선순위는 내부 장기에서 심각한 출혈이나 천공, 터진 것을 우선으로 본다. 다음으로 골절 여부를 보고 이외 추가적인 것들을 보고 평가한다. 이후 출혈, 천공 부위에 대한 최우선 치료를 시행하고 급한 골절부터 순차적으로 치료한다.
처음 응급실에서 워낙 출혈 부위가 심각하였고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었기에 두 번째 순위인 골절이나 추가 이상 부위는 다음으로 정확히 평가하기로 결정하였다. 출혈, 골절, 이어서 지연성 출혈까지 치료한 후 이제는 고약한 덩어리에 대한 정확한 판단, 그리고 수술적 치료를 결정할 순간이다.
암 덩어리에 대한 평가가 끝나고 가족들에게 그 사실을 알릴 차례이다. 아들과 모니터에 암 덩어리를 보여주면서 슬쩍 나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즈음 안타깝지만 모 축구 선수의 운명 소식이 나올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