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의 한숨보다 이제야 기다리는 숫자가 나오니 마음속 뭉클한 느낌이다. 100이 넘는 숫자를 보면 내 가슴속 심장도 콩닥 뛰는 느낌이지만 두 자리 숫자는 나에게 조금이나마 편안함을 준다. 환자가 이제 좀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안심이 된다. 안도의 한숨이라도 애써 스스로에게 위안을 하지만, 실제로는 지난 일주일간 그렇게 기다리던 숫자이다. 오래전 첫 데이트 후 문자를 보내고 답 문자를 눈 빠지게 기다리던 그 느낌이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과정은 그 어떤 노력으로도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마찬가지로 환자 상태를 좋아지게 하려는 수많은 노력을 해도 마음대로 안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다른 사람 마음을 얻는 것보다 환자 치료가 수만 배 더 어렵고 힘들다.
어제 하루 종일, 밤늦게까지 100을 넘나들고 120, 130 가까이 올라가던 숫자가 90이 되었다. 이 환자를 배를 세 차례나 개복해다가 다시 닫는 과정을 반복하고 10리터 가까이 혈액을 쏟아붓는 일주일간의 수술, 치료 과정을 생각하면 내 가슴속 심박수가 다시 120쯤 되어간다.
환자와 처음 만난 새벽 2시를 갓 넘어간 순간, 우연히 보호자를 통해 사고 당시 커다란 트럭과 벽 사이에 몸통이 낀 환자 동영상을 본 순간부터 내 심박수는 이미 100을 훌쩍 넘어버렸다.
누구나 정상적인 심박수에서 심한 운동, 달리기를 할 경우 곧바로 심장이 콩닥콩닥 뛰면서 심박수가 올라간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운동을 마치고 쉬면서 안정을 찾고 시원한 물을 들이마시면 이제 심박동 수는 안정 범위인 100 이하로 떨어진다.
복강 내 장이 터지고 골반뼈가 골절되어 벌이진 상태에서 중환자실이라는 전쟁터에서 출혈과 감염을 이겨내는 싸움 속에서 환자 심박동 수가 정상으로 가기를 바라는 것은 사치다. 네 번의 수술과 수없이 많은 고비를 넘나들고 버티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2.
살아있다는 증거는 숨 쉬는 것,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하는 것으로 쉽게 알 수 있다.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하며 바로 앞사람과 대화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눈빛, 얼굴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활력징후( 바이탈 사인, vital sign)를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병원에 있는 사람, 환자들에게 혈압, 맥박, 호흡 그리고 체온 네 가지를 말하는 활력징후는 중요하다. 환자가 수시로 상태가 변화는 과정에서 그 상태를 객관적으로 말해주는 것이 바이탈 사인이다.
누구나 심한 독감에 걸려 체온이 39도 가까이 올라간 경험이 있을 것이다. 몸 안에 신체 반응을 통해 열이 난다는 것은 신체 내부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표현해 주는 것이다. 독감이 나아지고 몸 상태가 회복되면서 체온은 정상에 가까워진다면 스스로 좋아졌다는 것이 느껴진다. 체온을 가리키는 숫자가 정상 범위에 들어간다는 것이 곧 바이탈 사인이 정상이라고 말해준다.
혈압, 맥박, 호흡 그리고 체온
이 네 가지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바이탈 사인, 환자 상태를 객관적으로 말해주는 지표이다. 추가적으로 환자의 의식 상태, 산소포화도 등이 객관적인 추가 지표이다. 이 모든 지표가 정상이라 할지라도 환자의 상태는 언제든지 수시로 변할 수 있고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이 기본이 중요하기에 이 지표를 중심으로 환자 상태를 객관적으로 평가, 향후 치료 방향의 지표로 삼아야 한다.
이 중에서 맥박 수. 즉 심장이 1분 안에 뛰는 숫자를 말한다. 신체적 상태, 나이, 기저 질환 등에 따라 사람들마다 정상 범위가 다르나 일반적으로 1분에 60회에서 100회까지 정상으로 본다. 빠른 달리기를 하거나 긴장하는 상황에서 심박동 수가 100을 훌쩍 넘어 빨리 뛰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환자들에게서도 신체 변화, 즉 몸 안에 염증 반응으로 열이 나거나 대량 출혈 등으로 신체 내 혈액이 부족한 상황이며 이에 대한 보상 작용으로 심장이 빨리 뛰게 된다. 즉 심박동 수가 올라가 100을 훌쩍 넘어간다. 반대로 환자 상태가 회복된다는 지표 중 하나가 이 심박동 수가 정상 범위로 들어오는 것으로 알 수 있다. 물론 극단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심박동 수가 너무 낮아서 심장이 멎어버린다면 그것은 최악의 결과이다.
3.
쉼 없이 모니터 숫자 알람이 울린다.
이 중 특히 심박수가 올라가는 것, 산소포화도가 뚝뚝 떨어지는 알람 소리는 더 크게 들린다.
바이탈과 라고 부르는 과들이 있다. 쉽게 인간의 생명과 관련된 치료를 하는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들을 말한다. 최근에는 또 다른 용어인 필수의료라고 이들 과에 대한 중요성들은 여기저기서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언제나 반짝 관심이며 안타까운 희생자들이 나와야지 언론에서 관심을 가진다.
지금 우리 사회의 심박수는 절대 정상이 아니다. 심박수가 빠르다는 것은 비정상적인 몸의 반응으로 인해 심장 뛰는 횟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심박수가 느리다는 것 또한 심장 기능의 장애, 극단적으로 심장이 멈추기 직전에 나타나는 상황이다. 반짝 관심을 가져주는 관심이 몰려 빈맥, 심장이 빨라지는 상황과 무관심 상황이 지속되는 서맥, 심장이 느려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는 상태에서 나와 같이 바이탈과, 소위 필수의료를 하는 의사들의 심장 또한 빈맥과 서맥을 반복된다. 누구나 다 환자이든 의사이든지 모두 정상적인 심박수 범위에 있는 것이 좋다. 평생 한숨도 쉬지 못하고 뛰는 심장 또한 정상적인 범위 안에서 뛰고 싶어 한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지쳐버리거나 느리게 뛰어 멈춰버리는 것은 큰 문제다.
환자의 심박수가 정상범위에 들어가는 것만큼 기쁜 것은 없다.
"이제 심박수가 90이다. 휴. "
여기서 한숨은 곧 이 환자가 정상을 찾아가고 있고 곧 회복의 길로 접어든다는 의미이다. 희망의 끝자락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환자의 심박수를 보며 외상외과의사의 마음속 심장도 함께 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