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안 소똥 냄새가 먼저 퍼지고 있다. 구급차로 온 환자보다 소똥 냄새가 먼저 들어온 것이다. 시골에서 자라서 외양간, 소 그리고 소똥을 누구보다 잘 알고 그 냄새도 익숙하다. 이곳은 소똥 냄새가 있어야 할 곳은 아니지만 소똥이 묻어있더라도 중증외상환자는 언제든지 그리고 반드시 와서 치료받아야 할 권역외상센터이다.
소똥 냄새에 이어 고통스러운 환자 목소리가 들린다.
온몸에 소똥이 범벅이고 전신, 특히 좌측 상복부와 가슴을 특히 아파하고 있었다. 소똥을 걷어낼 틈도 없이 환자의 팔에 주삿바늘을 꼽고 이것저것 관들을 넣기에 바빴다. 고통소리의 크기는 즉 그 환자 몸 안팎으로 많이 부러지고 손상된 것이며 동시에 환자의 아픔을 말해주는 것이다. 환자의 가슴과 복부 씨티를 본 후 고약한 소똥 냄새가 아제 나지 않고 오로지 이 환자가 아파하는 목소리 그리고 몸 안에 나는 피에 집중하기로 하였다. 몸 안팎으로 뼈가 부러지고 내부 장기, 비장과 한쪽 신장에 피가 나는 것만 보일 뿐이다.
이것저것, 수액, 피를 꾸역꾸역 집어넣고 혈압이 조금 정상 범위에 들아가는 순간 이 소똥 냄새의 정체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오늘 출산하는 어미소를 옆에서 도와주다가 그 어미소에게 몸 여기저기를 들이받아서 다친 것이다. 출산하는 어미소는 예민해져서 자칫 주인에게도 과격한 행동을 한다는 것을 들었지만 이렇게 심하게 다칠 줄을 몰랐을 것이다. 함께 소를 보살피던 환자의 아내 또한 상태가 좋지 않아 분산 수용을 위해 타 병원으로 간 상태였다.
아직 응급실 바닥 여기저기, 환자가 입고 온 옷 여기저기 소똥과 그 냄새는 안에 있는 모든 의료진의 코를 진동시켰다. 그보다 나를 던 진동시키고 긴장시키는 것은 환자 몸 상태를 보여주는 시티 검사였다. 양측 가슴을 지탱해 주는 갈비뼈가 두 손으로 세야 될 정도로 많이 골절되었고 그 안으로 폐에도 피가 나고 고여있었다. 또한 복부에 비장, 한쪽 신장도 으스러지고 피가 나고 있는 상황이었다. 침착하게 하나씩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동시에 환자에게 극심한 고통을 덜어주는 진통제 또한 충분히 줘야 한다.
비장, 신장 출혈이라면 손쉽게 제거, 떼어내는 것이 출혈을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이자 마지막 방법으로 생각하고 치료를 시작한다. 그보다 장기를 보존하는 치료를 최우선으로 한다.
의사는 쉽게 장기를 떼어버리고 수술을 한다는 결정을 하지만 그것은 환자에게 자칫 여생에 큰 고통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환자 혈압, 상태가 불안정할 때는 과감하고 정확한 결정으로 해서 환자 생명을 구해야 한다.
하나의 장기가 없어도 살아가는데 큰 지장이 없다 하더라도 단 하나뿐인 생명은 반드시 보존하고 지켜야 한다.
나는 이 환자에게 남은 30-40년 인생을 위해 신장, 비장 가지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목표를 삼고 치료 방향을 결정하였다.
2.
응급실 안에 소똥 냄새는 그 후로 여러 날 동안 계속되었다. 하지만 환자는 그 기간보다 훨씬 더하게 두어 달을 병원에서 치료하며 몸을 회복하였다.
가슴과 배 안에서 계속되는 출혈로 그것을 보충하고 채워 넣기 위해 열 팩 이상의 적혈구를 수혈하였다. 몸의 절반 이상의 피가 빠져나가고 다시 그것을 다른 사람의 피로 보충한 셈이다. 쉽게 비장과 한쪽 신장을 떼어내는 수술, 즉 비장절제술과 한 측 신장절제술을 한다면 지혈이라는 목표를 쉽게 얻을 수 있지만 장기를 보존하는 치료를 목표로 하였다. 결국 여러 차례 혈관색전술을 시행하여 환자의 비장과 한쪽 신장을 떼어버리는 것을 막았다. 여생이 최소 20,30년이 되는 상황에서 장기를 보존할 수 있는 치료법이 있다면 그것을 찾아가는 것이 낫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 환자가 그것을 잘 따라오고 치료 과정이 복잡하고 힘들더라도 참고 견뎌주는 것이 중요하다. 의료진들 모두 그 상황 상황에 따라 적절하고 신속한 치료를 해줘야 한다.
몸 안 장기, 특히 비장이나 신장 같은 고형장기(고체처럼 딱딱하지는 않지만 딱딱한 장기를 말한다)는 많은 혈액들이 공급되기에 수많은 작은 혈관들이 있다. 소에 들이받아 장기가 부딪히고 피가 나는 상황은 즉 그 안에 크고 작은 혈관들에서 출혈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출혈은 동시에 그 안에서 피가 고이고 피가 모이면 공간을 압박하고 통증도 유발한다.
환자에게서는 출혈, 흉부와 복부에 출혈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합병증이 발생하였다. 그렇기에 몸 안으로 들어가는 여러 가지 관들을 순차적으로 꼽고 그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갔다.
건강하게 다시 집으로 돌아갈 목표를 가지고 있는 환자와 이 환자를 잘 회복시키려는 의료진, 외상외과의사 나의 목표가 동시에 이루어지게 되었다.
3.
퇴원 후 일주일 만에 더 건강해진 모습으로 부부 환자가 외래 진료 들어오신다. 당시 입원하였던 환자는 70 대 남성이지만 부부 모두가 내가 치료하였던 환자이다. 남편은 심한 중증외상환자여서 오랜 기간 동안 입원치료하였고 그 옆을 지키던 아내도 나의 외래진료, 약 처방을 여러 차례 하였다. 걸음걸이와 눈빛을 보자마자 상태가 훨씬 좋아졌다는 것을 알아챈 나는 농담으로 진료를 시작하였다.
"아직도 그 많은 소들 다 키우세요?"
"그때 그 나쁜 소는 팔으셨나요?"
"그때 받아주고 보살펴 주었던 송아지는 무럭무럭 잘 크고 있나요?"
부부는 나에게 대답 대신 웃음으로 질문에 대한 답을 하셨다. 대신 몸은 더 좋아지고 회복되었으나 집에 있는 동안 있었던 일들과 소소하게 불편하였던 것들을 말씀하신다. 많은 소를 키우는 일을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기에 집으로 돌아가 눈에 보이는 일들을 조금씩 한다고 말하였다. 일주일 만에 다시 봤으나 두 달 가까이 병원에서 매일 보았던 것보다 더 건강해진 모습이었다.
진료를 마치면서 슬쩍 30년이나 묵은 양주를 주고 간다. 김영란법이 어쩌고 하지만 이미 퇴원과 회복도 다 한 환자의 정성과 감사가 담긴 선물이기에 기꺼이 반갑게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