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니 제가 있는 병원, 그리고 선배님 사무실이 가까워서 지나가다 자주 뵌 기억이 납니다. 물론 동문회에서도 자주 뵙고 소주잔도 많이 부딪힌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선배님을 가장 오랫동안 많이 그리고 눈을 직접 마주 보고 마음으로 뵈었던 기억은 병원이었네요. 특히 수술실 앞, 그리고 중환자실에서 많이 뵈었습니다. 그 며칠간의 마음 아픔 기억의 마지막은 장례식장에서 조문으로 끝이 났네요.
벌써 5년 전 일이네요. 5년이란 시간이지만 아직도 엊그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생각하면 또 생각이 나고, 너무 안타깝고 슬픕니다. 선배님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저에게는 참 안타깝고 아쉽고, 계속 생각나는 환자 중 한 분입니다. 선배님의 어머님입니다.
누군가의 어머니이기도 하고 가족이기도 한 제가 보고 치료한 환자들 중 수많은 환자가 가족 곁을 떠났습니다. 물론 반대로 가족 손을 잡고 건강히 집으로 돌아간 환자들도 많습니다.
선배님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자꾸 만약이라는 가정을 계속 생각나게 합니다. 큰 사고, 그리고 기존의 질환들. 너무나 많은 안 좋은 문제들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최악의 결과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나중에 가해자, 운전자가 대낮에 무지막지하게 운전을 해서 어머니를 치셨다는 말을 듣고 제가 더 분노하였답니다.
저는 가끔 생각합니다.
선배님께서 저를 어떻게 기억을 하실지?
' 가족을 살려주지 못한 의사? '
'어머니의 마지막을 함께해 준 의사'
'어머니 마지막 사망진단서를 써준 의사?'
제가 항상 바라는 것은 사망진단서라는 서류 아닌 전원의뢰서, 특히 더 전문적인 재활전문병원으로 전원의뢰서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건강하게 집으로 퇴원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항상 저의 바람이고 현실에서는 수많은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서너 달 치료하였던 한 환자를 떠나보냈습니다. 차마 마지막 순간에 저 또한 슬퍼서 너무 울고 있는 보호자, 가족들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사망선언을 하고 허둥지둥 사망진단서를 작성하였습니다.
저 또한 그렇게 슬프게 떠난 환자는 일부러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야지 또 다른 환자들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환자 치료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부족하였거나 아쉬웠던 부분은 여러 번 마음속으로 되새기고 다음에는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위한 치료를 위해 노력하려고 다짐합니다.
그렇지만 떠나보낸 다음 주에 외래로 보호자가 찾아오셨습니다. 전날 외래 명단에 망자 ( 이미 세상을 떠나신 환자분... ) 이름이 있는 것을 보고 속으로 제발 보험회사 직원이나 다른 사람이 대신 왔으면 하고 바랬습니다. 하지만 떠나신 환자의 아내분이 오셨습니다. 어색한 인사, 안부를 묻고 지난주 장례를 잘 치르셨는지 물었다. 서류, 진단서 추가 기재를 원한다고 하였는데 그것보다 마지막 인사를 못하고 가셨다고 그것 때문에 오신 것 같았습니다. 아내는 그동안 감사하다고 말해주셨습니다. 솔직히 그런 말을 듣는 것 자체가 너무 죄송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처음에는 정말 며칠 살지도 못할 것 같았는데 그래도 서너 달 치료를 받으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더해서 수십 년간 매일 붙어살아왔는데 갑자기 떠난 것이 아니라, 그래도 가족을 떠나보내는 시간을 몇 개월을 가져다주고 마음 정리 시간도 주어서 그것 또한 감사하다고 말하였습니다.
아직 제가 인생을 적게 살아서인지,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보호자의 말을 잘 이해하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보호자의 얼굴을 다시 쳐다볼 수 있고 그 표정이 그리 슬픔보다 편안해 보니는 것 자체를 보니 내 마음도 다시 편해졌습니다.
언제나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것은 슬프고 어렵습니다. 다시 얼굴을 맞대지 못하고 함께 손잡고 슬퍼하고 기뻐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모두가 견디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 일이 있지 않기를 위해, 한 명이라도 더 가족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외상외과 의사인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