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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첩의사 Aug 22. 2023

두 남자의 동침.

누구를 먼저 수술해야 하나?



두 남자의 동침.


누구를 먼저 수술해야 하나?





1.

 어스름한 새벽, 멀리 창밖으로 해가 떠오는다.  어제 수술한 두 환자 걱정에 이른 새벽 출근을 하여 바로 중환자실로 향했다. 중환자실 앞 간이 의자에 두 남자가 밤새운 모습으로 피곤에 지쳐서 의자에서 조각잠을 자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한 형제인 것처럼 서로를 의지하면서...


두 남자의 동침을 보았다.

 






2.

 시계는 밤 12시를 훌쩍 넘겨서 환자의 상태를 마지막으로 살피고 안정화된 것을 확인하고 나는 마음속으로 안도의 깊게 내쉬면서 중환자실을 나선다. 중환자실 바로 앞에는 눈을 크게 뜨고 굳게 닫힌 중환자실 문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안에 있는 본인의 아내와 아버지를 생각하는 두 남자가 있었다. 중환자실의 문을 나서는 순간 두 남자의 네 개의 눈동자가 나의 입을 향했다.


반사적으로 나의 입에서는

"두 분 다 괜찮습니다"


이어



 "환자의 위중도 있지만 먼저 경로 우대에 따라 나이 더 있으신 할아버님 보호자분께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할아버님의 상태는 양호하십니다. 고령에도 호흡을 잘하셔서 잘 쉬시고 계시고 내일이면 입에 달린 인공호흡기는 제거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어서 아내의 남편분께 다가가서


" 수술 이후에 혈압, 맥박 등이 안정화에 접어들었습니다. 이제 수혈은 그만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워낙 처음에 대량 수혈을 했기에 응고장애 등이 나타나면 여러 장기 들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처음에 다친 부위가 좋지 않은 부위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속단하기 이릅니다. 하루 이틀 더 상황을 봐야 할 것으로 보이고 인공호흡기 또한 상황을 봐가면서 제거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

 

마지막으로 두 남자를 동시에 바라보며

 " 두 분 피곤하실 텐데 밤사이에 중환자실 안의 당직의사 선생님과 간호사께서 잘 봐주실 것입니다.  여기 앞에 안 계셔도 됩니다.  잠시 쉬었다 오세요. 내일 아침 일찍 다시 상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


 





3.

중증외상환자는 시간이 생명이다. 한두 시간의 짧은 시간 내에 그 사람의 생명을 좌우한다. 시간의 중요성을 골든 아우어라고 말하며 한 시간 내로 모든 조치와 치료, 수술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83 , 44

각각 나이를 말하는 숫자다.


 

83세의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가시다가 경운기에 부딪혀 복부에 충격이 가해져서 오셨다. 이미 외부 병원에서 장천공으로 인한 복막염을 진단받고 오셨다. 이런 경우에는 고령에다 복막염이 진행되면 패혈증으로까지 가기에  빨리 수술을 진행해서 문제 되는 장을 절제하는 수술을 시행해야 한다. 다행인지 이날은 낮 시간임에도 수술방이 여유가 있어서 바로 수술 결정을 하고 준비에 시작하였다. 전반적인 환자 상태를 마취과 선생님과 상의하고 수술방에도 장천공 수술을 대비해서 준비를 한다.

 

마지막 남은 것은 수술동의서. 사람의 몸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에 수술을 앞두고 상 만일의 경우를 대처해야 하고 준비해야 한다. 더군다나 고령의 환자이고 응급수술을 하는 경우는 더욱더 부담되는 상황이다. 할아버지는 이전에 담도암으로 인하 휘플 수술이라는 큰 수술을 했기에 내부의 유착이나 내부 장기의 구조가 변형이 되어있어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이러한 위험한 상황들을 보호자에게 하나씩 설명해 드리면서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마지막으로 마취과와 수술방에는 10분 뒤면 준비해서 올라간다는 최종 연락을 하였다.

  

그 순간 멀리 큰 소리로 달려오는 앰뷸런스. 일반적으로 중환은 미리 연락을 하고 오는 것이 보통이나 환자의 상태가 워낙 위중해서 연락할 틈도 없이 환자는 위급한 상황으로 응급실로 들어왔다.

 

40대 초반의 여자

고속도로에서 운전자 도중 사고가 나서 복부가 불러오고 얼굴부터 팔다리에 여기저기 피범벅이다. 문제는 이 환자는 이미 배가 육안적으로 보이게도 불러오고 있었다. 의식은 점점 떨어져서 혼미해지고 있었다. 가만 만져만 봐도 배 안에 피가 가득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응급실의 모든 의사들 간호사들이 달려들어 A, B, C 순서대로... 기도를 확보하며 호흡을 유지하고 이어서 수액을 주기 위해 몸에 여러 혈관 확보도 한다. 굵은 혈관이 몸의 여러 곳에 꽂혀진다. 응급조치 후 최소한의 혈압을 올리고 가까스로 응급 시티 촬영을 시행하였다. 이미 육안적으로 보였던 것처럼 배 안에는 피가 가득 고여있다. 시티를 보는 순간 이미 나의 머릿속에서는 ' 배를 이렇게 열고 피를 재빨리 걷어내면서 피나는 부위를 잡고 장을 이렇게 자르고...' 이런저런 수술을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환자의 상태를 본다.

수많은 수액과 수혈을 해도 소용이 없다. 이미 시티 상에서는 복강 내 주요 큰 혈관의 손상으로 피가 지속적으로 나오는 것이 명확히 보여주고 있었다. 혈압도 수축기 혈압이 제아무리 수액, 혈액을 쏟아부으며 혈압을 올리는 승압제 용량을 계속 올려도 70 밖에 안된다. 맥박수는 100을 넘은 지 오래고 120, 130을 넘나 든다. 몸에 여기저기로 피를 보내기 위해 심장도 있는 힘을 다해서 빨리 뛰고 있다. 나의 심장도 점점 빨라진다.

 

방법은 하나다. 바로 수술방으로 올라가서 배를 여는 방법뿐이다. 결정을 해야 한다. 수술방은 단 하나.

 

10분 뒤면 수술방으로 올라가기 위해 배를 부여잡고 있는 83세의 할아버지와 그 옆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아들과 할머니.

 

배가 불러오며 혈압도 떨어져서 의식이 점차 떨어지는 아내를 바라보는 두발을 동동 구르는 남편.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수술방과 마취과 선생님과 연락을 해도 도저히 상황이 안된다고 한다. 결정을 해야 한다. 짧고 깊게 한숨 들이쉬고 안 이빨을 지긋 한번 깨문다. 결정했다.

 

옆에 있는 치프에게 말해서 여자 환자를 빨리 수술 준비해서 올리라고 말하고

발걸음은 할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할아버지는 흰 가운의 의사를 보자마자

"어서 수술해 줘! 배 아파 죽겠어... 어서! "

할아버지의 아들과 할머니께 정중히 인사드리며 말한다.

"제가 수술을 해드리려는 외과 의사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할아버님의 상태는 장천공으로 인한 복막염 상태입니다. 신속하게 수술을 해서 문제 되는 장을 절제해야 합니다. 어르신의 나이도 있기에 신속하게 수술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 그러나, 방금 저 안으로 들어온 환자가 있습니다. 저 환자도 제가 수술을 해야 하는 환자입니다. 배 안에 정말 많은 피가 고여 있습니다. 혈압은 점점 떨어지고 환자의 의식도 점차 흐려지고 있습니다."

 

"... 죄송합니다. 어르신이 먼저 오시고 수술 준비를 다 된 상태이며 수술 동의서에 서명까지 한 상태인 것을 잘 압니다. 다시 한번 정말 죄송하지만 양보를 부탁드립니다. 그래야만이 저 환자도 살고 할아버지도 함께 살 수 있습니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

  

제 눈과 입을 바라보던 보호자들의 몇 초간의 침묵을 끊은 아드님의 한마디.



"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을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

 


그 순간 얼마 전 동시에 수술이 필요한 형사와 범인을 두고 고민하는 모습이 나왔던 의학 드라마의 주인공이 내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결정이 끝났다.

 

신속하게 여자 환자는 수술방으로 올라갔다. 수술 침대에 옮겨지고 마취를 준비하는 중에도 환자의 혈압은 너무 낮았다. 가까스로 배를 여는 순간. 환자의 배속에서 아주 빨간색의 액체가 밀려나오며 아래로 흘려내려 나의 신발과 발을 적시는 것도 잊은 채로 환자의 배 안에서 피가 나는 곳을 열심히 찾아간다.

잠시 후 환자의 혈압은 점점 올라가고 배속의 피는 점점 줄어들고 깨끗해진다.

' 이 환자는 살았구나! ' 하는 생각과 함께 긴장이 잠시 풀리는 동시에 머릿속은 밖에서 배를 부여잡고 기다리고 있을 할아버지 생각에 다시 초조해진다.

그러나 수술을 집도하는 외과의에게 초조함이나 조급함은 금물이다. 자신의 몸을 맡긴 환자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는 환자가 수술이 마지막까지 끝나는 순간까지 환자만을 생각하며 집중을 해야 하는 것이다.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대량수혈로 인한 응고장애 및 폐 합병증 등의 우려는 있지만 수술 후에 경과를 봐야 할 상황이다. 이제 다음 환자이다.

 여자 환자 뱃속 피가 어느 정도 잡혀가고 혈압 맥박이 잡혀갈 때부터 나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할아버지의 상태가 어떨까 계속 걱정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걱정을 많이 했지만 잘 버텨주셨다. 다행히 복막염이 패혈증까지 진행하지 않고 수술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전에 수술한 것을 영향으로 유착이나 내부 장기의 상태를 걱정하였으나 우려했던 것보다는 장 상태가 깨끗하였고 천공으로 인한 염증이 심하지 않은 상태였다. 문제는 할아버지가 고령에다 폐 상태가 좋지 않기에 숨 쉬는 것이 여의치 않아 수술을 마치고 인공호흡기를 계속 유지해야 하는 것이었다.

두 환자 수술을 마치고 시계를 보니 시간은 이미 밤 10시가 넘어간다.

 

바로 몇 시간 전에 나의 손으로 치료한 두 환자를 중환자실에서 보면서 살핀다. 중증외상환자는 이제부터가 또 다른 시작이다. 그러나 밖에 걱정하는 가족들  바람이 통했는지 두 환자는 모두 잘 버텨주고 있고 수술 전의 상태보다 안정화에 접어들고 있었다.

 





4.

두 환자의 회복 상태가 하루하루 좋아졌다. 두 환자 모두 인공호흡기를 바로 제거하였고 며칠 뒤 한 명씩 일반 병실로 옮겨 큰 무리를 없이 퇴원을 하게 되었다.  매일 두 환자를 볼 때마다 나는 긴박했던 수술의 결정 순간이 머리에 스치었다.

'다시는 그런 고민을 나에게 주지 마시길... '  하면서 되뇐다.

 두 환자 모두 일반 병실로 옮긴 이후에 어느 날인가 여자의 남편이 어느 날 말하였다.



 "제가 할아버지와 보호자를 열 번이나 찾아가서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말할 것을 보호자가 다른 보호자와 환자를 직접 찾아가서 대신 말해준 것이다.


 "아닙니다. 제가 오히려 더 고맙습니다.

좋은 환자, 좋은 보호자를 만나고 두 분 다 모두 잘 회복하셔서 저 또한 기쁘고 보람이 있습니다 "

 

 





아직 권외상 센터가 본격 개소하기 전 십여 년 전 일이다. 내가 외상외과를 시작한 시점이지만 너무나 많은 시행착오와 난관들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모든 것이 완벽하게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조금씩 아주 조금씩은 나아지고 있다.


당시에는 '정말 우리나라에서도 외국과 같은 응급환자를 대기하기 위해 수술실을 2-3개 비워놓고 대기하는 외상센터가 생길 수 있을까?'라는 의문, 기대, 걱정이었다.


그 바람은 아직도 꿈일 뿐이다. 어느 정도 하드웨어, 시설은 돼있지만 인력이 너무나 부족하다.

 아직도 먼 유토피아 같은 소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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