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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첩의사 Sep 24. 2023

몸에 관을 제거하다

"환자분 관을 제거합니다!"



몸에 관을 제거하다

 


  1.

 

 "환자분 관을 제거합니다.

  뱃속으로 약간 이상한 느낌이 날 수 있습니다. 잠시만 참으시면 됩니다."

 

 쭉 달려 나오면 20cm 길이 고무관이 환자 배 안에서 나온다. 이미 배 안에 고인 체액들은 음압 걸린 주머니를 통해 지난 며칠간 다 나왔기에 이제 뺄 시점이 되었다. 투명하고 긴 고무관이 딸려 나오는 모습은 마치 몸 어딘가에 박힌 고약한 이물질을 빼내는 것 같다. 나는 수없이 많이 보고 집어넣은 관이지만 환자에게는 몸 안에 들어있는 관 하나 자체가 부담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환자분 아직 안 뺐습니다. 이제 진짜로 빼겠습니다. 아플지 모르니까 한번 심호흡하고 참으세요"

 

 환자는 이제 눈을 찔끔 감고 이마에 살짝 식은땀이 비치는 모습이다. 그 타이밍에 나는 이미 관을 뺀 자리에 거즈와 반창고를 이용해 붙이고 있다. 관을 뺀 지 이미 수 초가 지났고 나는 마무리하면서 태연하게 농담을 건넨다. 대부분의 관은 부드러운 실리콘 재질이기에 크게 고통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잘 빠진다. 간혹 내부에서 다른 조직과 관이 비정상적으로 밀착되어 있거나 이물질이 많이 묻은 경우 환자에게 고통을 조금 줄 수 있다. 그렇기에 간혹 환자들 중 이상한 느낌이나 통증을 약간 호소할 수 있다.

 

"환자분 사실은 아까 다 뺐습니다. 하나도 안 아프셨죠?"


오랜 기간 치료 과정을 묵묵히 잘 따라오고 호전된 환자와 나 사이에 관계에서 이런 농담은 오히려 환자에게 힘이 더 될 수 있다. 환자나 나 모두 웃으면서 이제 치료가 거의 다 끝나간다고 안도의 밝은 웃음을 함께하였다. 이 웃음의 의미는 관을 고통 없이 빼서 좋다는 의미보다 환자 상태가 많이 호전되어 환자와 치료하는 의사 함께 기쁨의 의미인 웃음이다.

 

 



 


2.

  

 환자가 병원에 입원, 치료하는 경우 많은 종류 관들을 설치한다. 간단한 처치, 수술을 하는 경우나 내과적 질환으로 치료받는 환자는 소수의 관을 설치하지만 여러 부위 수술을 하거나 중환자의 경우 여러 관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신체 여러 부위에 설치하는 배액관이며 인위적인 인공호흡기 치료를 위한 기도삽관튜브도 있다. 배액관이라는 것은 상처 부위, 수술 및 시술 부위에 체액, 혈액, 염증액 등이 모이는 것을 빼기 위하여 삽입한 관을 말한다.

 

다양한 이름표가 붙은 각각 관들은 제각각 역할들이 있다.

 

 평상시 건강한 우리 몸에는 전혀 다른 관들 도움이 필요 없다. 음료를 마실 때 빨대가 일종의 관 역할을 하지만 이는 곳 한번 쓰고 쉽게 버려진다. 물론 빨대가 없다면 음료를 바시는 경우 불편할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게 몸 여기저기에 필요한 관들이 있다.  

 

 즉 신체 안으로 인위적 관을 꽂아 도움받을 필요 없이 정상적인 몸 안에서는 자연스럽게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들이 균형이 이루어진다. 몸이 아파 병원에 오는 경우 인위적인 관들의 도움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물론 불필요하고 과도한 관들의 설치는 오히려 추가적인 출혈이나 감염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아울러 인위적인 관을 오랜 기간 동안 유지할 경우에도 추가적인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병원에서 환자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관은 바로 기도삽관튜브이다. 즉 환자 스스로 정상적인 호흡이 어렵거나 전신마취하는 기간 기도를 통해 폐, 전신으로 산소를 공급해 주기 위한 관이다. 필요한 순간에 반드시 필요하고 또한 정확히 신속하게 꽂아야 하는 관이다. 이 과정을 기도삽관이라고 하며 누군가는 흔하게 많이 보고 하는 시술, 처치이지만 한 생명의 순간순간 목숨에서 중요한 과정이다.

 

  중환자실에 주렁주렁 관이 여기저기 달린 환자가 있다. 머리끝부터 발까지 수많은 관들이 달려 있다. 지긋이 환자를 쳐다보며 관 숫자를 헤아려본다.

 

 입안에 기도삽관튜브로 호흡을 맡기고 있고 코에는 비위관이 달려 영양을 공급해 준다. 목 옆으로는 커다란 혈액투석관이 달려 환자 투석을 담당해 준다. 양측 쇄골 아래 정맥을 향해 굵은 정맥관 두 개가 있어 각종 수액과 혈액, 약물을 쉼 없이 주고 있다. 환자 양측 가슴에는 흉관이라고 가슴 안에 고인 피와 체액을 빼주는 것을 한다. 이 환자는 복부 장이 심하게 터져 수술을 환자여서 수술 후 복부 배액관을 세 개를 가지고 있다. 이 배액관은 배의 가장 깊숙하고 체액이 많이 고이는 골반강, 좌우 상복부 쪽에 설치하였다. 방광 안에 소변을 배액 하기 위해 폴리 카테터라고 부르는 소변줄을 가지고 있다. 팔다리에도 깊은 상처를 동반한 개방성 골절을 수술한 상처 부위가 있어 그 부위에 배액관을 각각 가지고 있다. 추가적으로 지속적으로 동맥압을 모니터링하기 위한 팔 요골동맥에 설치한 동맥관이 있다. 팔다리에도 수액 등을 주기 위해 미리 잡아놓은 정맥관이 각각 있다.

 

[ 입 1, 코 1 , 목 1, 쇄골하 2, 가슴 2, 배 3, 소변줄 1, 팔다리 2  / 팔다리 정맥관  2 / 동맥관 1 ]

 총 16개

 


 이렇게 많은 관들이 몸에 달려있는지 세어본 지도 처음이다. 많은 관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많은 관을 가지고 있는 환자는 초대박 환자가 분명하다.

 

추가적으로 환자 상태에 따라 머리 수술을 하는 경우 머리, 뇌 안으로 배액관이 설치될 수 있고 심각한 저산소증 환자의 경우 흔히 에크모라고 부르는 체외막산소화요법하기 위한 관이 필요하다. 이 경우 대퇴동맥, 정맥이나 경정맥 등 커다란 혈관에 관을 설치해야 한다. 이렇게 추가로 관을 설치할 신체 부위, 혈관 등이 어디에 있을지 고민되지만 꼭 필요한 경우라면 어떻게든 찾을 곳을 만들어서라도 해야 한다.

 

 

내가 주로 보는 환자들은 심각한 출혈, 골절, 내부 장기 손상을 가진 중증외상환자이다. 앞서 말한 열 가지도 넘는 관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이 매일같이 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번 이런 환자가 와서 치료를 시작하면 정말 커다란 산, 산맥을 만난 기분이다.

 

 

목표는 이 관들을 하나씩 하나씩 제거하는 것이다. 관들 도움 없이 정상적으로 생활, 건강을 되찾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관을 제거한다는 것은 스스로 숨을 쉬며 기침도 하고 몸에 필요한 산소를 스스로 호흡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몸 안에 고약하고 해로운 체액, 고름들이 다 배출되고 건강해져서 스스로 흡수가 가능하다는 상태를 말해준다. 쉼 없이 동맥을 통해 동맥압, 혈압을 감시하지 않고 하루에 서너 번만 혈압을 측정해도 되는 안정된 상태를 말해준다.

 

환자가 퇴원해서 건강하게 집으로 가기 전까지 마지막 팔뚝에 놓인 작은 정맥주사관을 빼고 나는 환자에게 말한다.

"환자분 이제 저는 환자에게 알약만 처방해 드립니다.

그 정도로 환자분이 건강해진 것이기에 조만간 퇴원 준비합시다!"

 

 



 

3.

 

 의과대학 실습 시 비위관삽입을 배우고 시행한다. 학생 때도 중요하지만 병원에 첫발을 내디딘 인턴과정에서도 비위관삽입은 중요한 업무 중 하나이며 자주 하는 것이다. 비위관이란 말 그대로 코를 통해 위까지 넣는 관을 말한다. 대략 1미터 가까운 관을 코를 통해 삽입하기 시작해서 관 끝이 위 안에 거치하게 한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대략 50-60cm까지 삽입하고 빠지지 않게 코에 관을 고정한다. 이 관을 통해 입을 통해 식사, 약 복용이 어려운 환자에게 식이와 약물을 공급해 준다. 때로는 뱃속 위, 소장 등에 가스가 다량 차있는 경우 그 가스를 배출하는 목적으로 비위관을 삽입하기도 한다.

 

모든 일이 마찬가지로 대부분 쉽게 잘 행해지나 때로는 어렵고 해도 해도 안 되는 경우가 있다. 비위관 삽입에서도 정상적인 해부학적 구조나 환자 협조가 잘되는 경우는 쉽게 잘 들어간다. 하지만 때로 코부터 인두, 목까지 구조물이 비정상적이거나 환자가 지속적으로 기침하여 협조가 안되며 정말 난감하다. 간혹 위액과 담즙액 같은 소화액이 위안에 가득 차 있는 경우에 구토하여 흡입성 폐렴 위험성이 있는 경우 반드시 비위관 삽입이 필요하다. 어떻게든 꼭 넣어야 하는 관이지만 환자 협조가 안되면 정말 난감하다. 그 과정에서 환자가 구토까지 한다면 위험한 상황에 닥칠 수도 있다. 이처럼 하나의 관도 사람에 따라 꼭 필요하고 중요하다. 그러기에 넣는 과정, 결정에서부터 제거하는 것도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전원 스위치를 눌렀다를 반복하며 쉽게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관이 있고 없고에 따라 환자 목숨이 달릴 수도 있다.

 


 앞서 말한 열 개가 넘는 관을 제거하기 시작한다.



기준, 누구나 다 납득할 만한 기준이 있다. 그렇기에 학자들, 의료인들은 그 기준을 나름대로 정하였다. 가령 소변줄인 경우에 환자 상태가 호전되고 스스로 정상적 배뇨가 가능한 상태이며 지속적인 소변량 체크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호전된 경우에 제거가 가능하다. 모든 관들이 마찬가지로 소변줄도 오래 가지고 있는 경우 요로 감염의 원인이 될 수 있기에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빼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반대로 환자가 혈압도 불안정하고 계속해서 출혈도 되어 대량 수혈이 되는 경우에는 소변줄을 통해 소변량 감시가 꼭 필요하다. 그렇다고 소변줄을 빼고 넣고를 반복하는 것은 더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한다.

 

특히 신중하게 고민하며 제거해야 할 관은 몸통, 즉 가슴과 배 안에 들어있는 관이다. 가슴에는 굵은 흉관이 갈비뼈 사이를 뚫고 흉막 안 흉강에 설치되어 있다. 배 안도 주로 상대적으로 깊은 공간 안에 체액 등이 잘 고이기 때문에 이곳에 배액관을 설치한다. 이 경우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가슴에 흉관인 경우 폐 안 상태, 즉 혈액이 줄어드는지, 환자 부종으로 인한 체액이 몸 전체적으로 줄어드는 것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빠른 시간 내에 서둘러 오판으로 빼는 경우에 자칫 안쪽 가슴, 배 안 상태가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 기계에 나사를 조였다 풀었다는 반복하는 것은 쉽지만 몸에 관을 넣고 빼는 것은 쉽게 결정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충분히 내부 문제, 고약한 체액이 배액 되었다고 판단되어 제거를 결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빼기를 결정하기 전에 나는 한 번 더 고민한다.

 


 '만약 나의 친구, 가족이라면 이 상황에서 관을 뺄까?
  이 관을 가지고 있으면서 더 이점과 빼고 나서 좋은 점들 사이에서
다시 심각해 고민해 본다.'

 


열여섯 개의 관을 다 빼고 건강을 찾아 집으로 향하는 환자를 생각하면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 마음을 다시 생각하면서 새롭게 찾아 오는 대박 환자 몸에 관을 꽂아 넣는다. 지금은 살이 째는 고통과 몸속으로 꾸역 관을 꽂아 넣지만 이는 곳 환자가 살 수 있는 올바른 길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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