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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ntie J Nov 29. 2018

벽난로, 연못 그리고 우리 2.

: 늦었지만 장군이와 멍군이에게 삼가 조의를..

한창 돈 들어갈 일이 잦을 시기에 받은 경제적 타격 덕분에 집안 분위기는 내내 칙칙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대학생이 돼버린 나는 아르바이트다, 학교생활이다 최대한 집에 들어가지 않거나 늦게 들어갈 핑곗거리를 만들기에 분주했다. 나만 그랬던 것 도 아니었다. 아무도 대놓고 티를 내진 않았지만 ‘집’이라는 공간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같이 있는 게 다들 나만큼 힘들었던 모양인지 식구 중 그 누구도 함께 무언가를 하자는 제안을 하지도 않았고 때문에 그 흔한 식구들의 생일상도 함께 챙기지 않았다. 당시 부모님께선 어떻게 사셨는지, 내 형제들은 어땠는지 한참 희미하다. 집이 사람처럼 변하는 건지, 사람이 집처럼 변해 버리는 건지 휑하기만 했던 시절이었다.


보통 집에 들어오면 온갖 일로 스산했던 마음이 평온해지고 안도되기 마련인데 연못 집은 크고 작은 골칫거리 덕분이었는지 그저 딱 ‘이 놈의 집구석’이었다. 특히나 현관문 기준, 실내로 들어오면서부턴 본격적으로 ‘집구석’ 타령이 스멀스멀 올라왔고 현관문 밖, 마당 정도 돼서야 슬슬 마음이 안정되었다. 물론 곧 허물 집이었으니 마당이라고 대단히 봐줄 만한 상태는 아니었다. 하지만 오가는 곤충에 잠깐씩 새소리도 들리고 계절마다 작은 변화라도 있어 대책 없이 허물어 주기만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집 내부보다는 백배는 나았다.

 

머리를 숙여야 들어올 수 있는 작은 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오면 오른쪽에는 여름마다 물이 차 넘치긴 했지만 연못이 있었고, 왼쪽엔 담장에 붙은 아담한 장독대가 정겨웠다. 특히 장독대는 가파른 계단 예닐곱 개를 올라야 했는데 웬만한 장독을 다 올리고도 나 하나 쪼그리고 앉기에 충분할 정도로 넓었다. 담장보다 낮긴 했지만 지나다니는 동네길 정도는 훤히 내려다 보여 뭐라도 없는 심심한 오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유유자적 하기엔 최적의 장소였다.


장독대에서 내려오면 바로 수돗가가 있었고, 그 앞엔 무슨 나무였는지 꽤나 굵고 울창해 여름이면 넉넉하고 시원한 그늘을, 겨울이면 집과 어울리지 않게 쓸데없이 멋진, 눈 내려앉은 겨울 고목을 연출해 내는 큰 나무가 있었다. 그리고 풀 한 포기 없이 먼지가 폴폴 나던 누런 흙 마당엔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며 사방에서 날아든 풀 씨, 꽃씨 덕분에 온갖 잡초들이 무성해지기 일쑤였는데 잡초라도 가지각색 파릇해 그냥 두고 봐줄 법도 했건만 엄마는 시간만 되면 죄다 쥐어 뽑아버리셨다. (사는 내내, 나는 잡초라도 좀 있어야 연못 물이 넘칠 때 마당에 물이 덜 고인다고 주장했으나 곧 묵살당했고 조금이라도 뿌리내린다 싶은 잡초는 바로 뜯겨 나갔다) 허나 그것도 거기까지. 손질하지 않아도 제때 왕성하게 살아난 잡초들로 연못 주변까지 무성해지면 엄마 손도 거기 까진 닿지 않아 그나마 푸른 한 철을 보낼 수 있었다.


이렇게 좋은 마당이 있는 집이니 우리는 당연히 개를 키웠어야 했다.

아니 당시 집안 분위기로 봐선 뭐든 키웠어야 했다. 특히 엄마는.


지나고 보니 당시 엄마에겐 곁에 두고 맘을 쓸 어떤 대상이 필요했던 것 같다. 눈치껏 집안 사정 살피면서 부모에게 살갑게 굴 자식도, 작은 힘이라도 돼 보일 법한 자식도 우리 형제 중엔 없었다. 자식들은 제 각각 그 멋지다는 ‘청춘’을 관통하고 있었지만 멋은커녕 현실에 압도당해 어쩔 줄 몰라 어지러워했다. 게다가 인생 시나리오에 전혀 없을 것 같던 가세까지 기울었으니.. 각자 알아서 살아내야 했다.

생겨먹은 그릇이 그 시절엔 그 정도였던 거다.


엄마는 평생 키워보지 않은 ‘문조’에 ‘카나리아’, ‘십자매’까지 새 열대여섯 마리를 어디선가 사 들고 오셨다. 새장 세 개가 마당 나뭇가지에 걸렸고 애완동물 특히 새라면 질색하던 나까지 당번이 돼 보살피라는 분부를 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다들 나름의 이유로 책임에서 빠져나갔고 결국 모든 뒤치다꺼리는 엄마 몫으로 돌아갔다. 가을 즈음 접어들자 식구 누구도 새장을 들여다보지 않았던 듯. 여름 한철도 안될 시간만큼만 새소리는 이야깃거리가 되었고 결국 새 종족은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는데, 점점 날씨가 싸늘해져 마루로 새장을 옮기고 난 다음 날. 우린 처참한 대학살의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그 날 이후, 다시는 새를 키우지 않게 되었다. 대체 어떻게 가능했던 건지 그 죽일 놈의 쥐들이 밤 새 새장을 습격했고 새장의 새들은 거의 잔해를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처참하게 학살당했다.


쥐떼 새장 습격 사건은 딱히 공감대가 없던 당시 우리 식구들에게 ‘쥐 잡기’에 일로매진 하자는 만장일치를 남길 정도로 모두에게 충격이었으나 공포까지 몰고 오진 않았다.

역시 이사 후 식구들은 웬만한 일엔 놀라지 않게 된 듯!


다음은 보다 무난하게. ‘개’였다.

이번엔 사온 게 아니라 어디선가 얻어오셨다. 연못 집 첫 개는 ‘장군이’. 어릴 적 모습은 전형적인 황구. 그러나 자라면 자랄수록 토종 황구라 하기엔 꽤나 똑똑하고 기품도 있으며 심지어 어딘가 잘생긴 듯도 보여 우리 식구들끼린 가장 멋있다고 여겨왔던 진돗개와 셰퍼드 사이, 그 어디, 무엇이라고 멋대로 믿어 버렸다. 그러니까 우리 사이에서 장군이는 이미 진돗개고 셰퍼드였다. 태어나길 튼튼하게 태어난 건지 뭐든 잘 먹고, 잘 짖고, 이름처럼 ‘장군’ 스러웠다. 두 번째 개는 ‘멍군이’. 낮이면 늘 비어있는 집에 장군이 혼자 심심하겠다 싶어 엄마는 멍군이를 어디선가 또 얻어 오셨는데 멍군이는 다 자라도 장군이의 사분의 일도 안 되게 작은 개였다. 보통은 강아지라 부를 크기였지만(아마도 요즘이었으면 집안에서 키울 애완견이었지 싶다) 우리 집에서 개는 모두 ‘개’로 통했다. 장군이가 유독 똑똑해서였나, 멍군이는 영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는데 늘 이름처럼 ‘멍’했다. 일단 많이 잤고, 느렸고, 평소에도 전혀 빠릿빠릿하지 않았다. 특히나 항상 반쯤 빼물고 있는 혓바닥은 멍군이를 더 멍청해 보이게 만들었다.


이번엔 달랐다. 관심이 한 철도 못 간 새와는 달리 온 식구들은 장군이와 멍군이를 많이 챙기고 사랑했다. 마치 가족끼리 나누지 못한 모든 애정을 개 두 마리에 쏟듯이. 당시만 해도 반려견을 건강하게 키우는 요즘 같은 방법들엔 관심이 없었고, 그저 개는 개답게 키워야 가장 행복한 법이라 여겨 개 두 마리를 모두 마당에 풀어놓고 키웠다. 개밥 역시 남는 생선이나 반찬으로 온갖 잡탕을 만들어 시골 농가에서처럼 끓여 먹였고, 따로 목욕 한번 시키는 법이 없어 한참이라도 개를 쓰다듬고 나면 손에서 개 냄새가 진동을 했지만 집에 들어오는 누구라도 두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지 않고는 마당을 가로지르지 못했다.

잠만 마당에서 자는 식구였다. 특히 한창 춥다는 겨울밤이면 마당의 개들 생각에 밤잠을 설쳐 결국 벌떡 일어나 안 덮는 낡은 이불을 개 집 안으로 밀어 넣고, 개 집 주변에도 사방의 바람을 막을 나무 판 대기를 세우고 걸쳐 놓고야 다시 잠 들 정도였다. 이런 마음을 알았던 건지 장군이와 멍군이는 유난히 식구들을 잘 따랐다.

그런데 문제는 흙 마당이었다. 평소에야 괜찮지만 비 오고 눈이라도 내리면 흙이 진창으로 변했는데 특히 외출에서 돌아와 대문을 통과하고 나면 개 들 때문에 온 집안 식구들의 옷이 엉망이 되기 일쑤였다. 누군가 돌아왔다 싶으면 집 어디에서부터 달려 나오는 건지 개 두 마리가 앞을 다투어 달려와 안겼는데 특히 장군이는 웬만한 어린애보다 큰 놈이라 전속력으로 달려 두 발을 사람 가슴팍에 얹으면 제 아무리 어른이라도 뒤로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대문을 통과해 현관문까지 바짓가랑이에 허리에 온통 진흙 묻은 개 발자국이 찍히고 나면 결국 집 안으로 들어와선 수건으로 걸레로 그 자국을 지우는 게 또 일이었다. 결국 날이 궂어 마당이 진흙으로 변할 때면 대문을 열면서 동시에 우산을 앞으로 펴 개 두 마리의 환영인사를 적극적으로 방어하며 집으로 들어오는 수를 써야 했다.


마당 없는 빌라로 이사를 하면서 장군이와 멍군이를 더 이상 키울 수 없게 되었다.

이사를 한 달 여 앞두고 온 식구들은 장군이와 멍군이의 거처 문제로 속을 태웠다. 작고 어린 애완견도 아니고 비싼 개도 아닌 저 둘을 누가 맡으려 하겠으며, 키운다 해도 목줄 없이 자라 사방팔방 천지 분간 못하는 개들인데 과연 적응이나 잘할 수 있을까.. 온 식구가 걱정하면서 이사 날을 기다리던 어느 날, 대문 소리가 나면 힘차게 달려와 두 발을 턱 하고 가슴팍에 얹던 장군이가, 현관문까지 바짓가랑이에 질질 매달리던 멍군이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엄만 누군가로부터 개 두 마리를 가져갈 시골 농장을 소개받았고 아무도 모르게 마침 식구 아무도 없던 틈을 타 보내버렸다고 간략하게 말씀하셨다.


조금 더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게 되고 나서였나..

문득문득 생각나는 장군이와 멍군 이를 떠올리다가 갑자기 그때 개 두 마리가 실려간 시골 농장이 과연 어떤 농장이었을까 생각이 깊어졌다. 과연 외국 영화 속에서나 보던, 개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사방이 푸른 그런 농장이었을까? 엄마가 장군이 멍군이 두 마리를 보낸 농장은 아마도 분명 개를 사고파는, 개 농장이었을 거란 심증이 차 올랐다.


그렇게 개도 키울 수 없어졌다.


장군아, 멍군아. 제대로 못 보내 줘 미안하다.

저 하늘에서라도 마음껏 뛰어다니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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