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난로, 연못 그리고 우리 1.

: 정말 '집' 때문이었을까?

by Auntie J

대부분 가세가 기울기 시작하면 먼저 이사를 한다.

전반적으로 바람을 빼는 거다.

해가 너무 잘 드는 윗동네로 올라가거나 아예 잘 들지 않는 곳으로 내려가거나.


짐작해보니 초등학교 6학년 무렵 부모님은 좀 더 그럴듯하게 살 수 있는 집을 마련하시는 데 성공하신 듯했다. 바로 옆 동네이기는 하지만 그나마 좀 산다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동네의, 예전 집에 비해 아주 큰 대문을 가진 2층 양옥집을 마련하셨다. 주변의 으리번쩍한 집들에 비해 멋은 덜했지만 일단 대문이 크고, 마당도 꽤나 넓었으며 무엇보다 2층 양옥집이었다. 엄마는 욕심껏 집을 꾸미기 시작했고, 마당은 호박에, 가지에, 고추에 계절마다 밥상에 오를 야채들로 풍성했다. 이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루가 멀다 하고 손님들이 다녀갔고

별생각 없던 나는 이 정도면 우리 집도 꽤나 잘 사는 건가.. 싶었다.


그렇게 좀 사는 집 애처럼 지낸 지 4,5년. 언제나 극적인 반전은 이럴 때 일어나는 법.

좋은 집에, 평화로운 가정, 안정적인 생활. 모든 게 완벽해 보이는 바로 그때.

아버지께서는 사기를 당하셨다.

대부분의 사기가 그렇듯이 - 잘 아는 사람을 통해, 매우 성실하고, 신뢰롭게! - 아버지는 여태 벌어 차곡차곡 모은 모든 걸 다 때려 부으셨는데 결국엔 어찌해볼 도리 없이 파국을 맞이하셨다. 이후 수순은 대부분 가세가 기울기 시작한 집안들의 대처 요령과 비슷하다.

‘좀 사는 집’에서 이사를 했다.

그것도 동생 친구네 집으로.


K는 여동생의 유치원 친구였다.

오빠와 나는 누리지 못한 조기 교육의 혜택을 동생은 누렸는데, K는 당시 동생의 베프였다. 엄마 통신에 의해 전해진 바, K의 집안은 일단 무지하게 잘 사는 부자 집이었다. 그것도 부모님 대에서만이 아니라 그 위, 위, 위에서부터 부자인 집안. 여기에 K의 아버지는 세금 관련 공무원이었는데, 사실인지 아닌지 그냥 돈이 막 생기는 일을 하고 있다 했다. (지금이라면 턱도 없을!) 덕분에 으리으리한 본가 말고도 세 놓는 집을 십여 채 더 가지고 있었고 다행히 그중 한 채가 비어 있어 딱한 사정에 처한 학부형을 돕기가 가능해진 거다.

동생의 유치원 학연(?) 덕을 이렇게 볼 줄이야!


곧 헐어 버리고 새 건물을 지을 집이었단다.

그러니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았고 당연히 상태도 좋지 않았다.

아니 멀쩡한 2층 양옥집에서 여름이면 비가 새고, 겨울이면 냉 골 일 것 같은 집으로 이사를 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 집, 다섯 식구의 상태가 더 안 좋았다.

일보 전진을 위한 잠시 후퇴 정도의 바람? 혹은 진짜 몇 해 살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 때문이었을까.

아버지, 엄마는 집을 전혀 손 보지 않고 살기로 작정하신 듯했다. (집을 손볼 정신적, 경제적 여력이 안돼서 그랬다에 강력한 한표.)


겉모습은 정원 딸린 아담한 1층 집이었다.

다섯 식구 지내기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방 세 개, 화장실 하나, 부엌 하나, 그리고 방보다 좁지만 마루까지. 그런데 집안 구석구석이 아무리 봐 줄래도 도통 맘에 들어오질 않았다. 우선 방 하나가 이상하리만큼 길었다. 직사각형도 나름이지, 원래 방 2개를 터 놓은 것만큼 길쭉해 세간을 들여놓아도 테가 나질 않았다. 엄마의 최애 아이템, 자개장롱 두 짝을 짝 맞춰 놓고 TV올린 문갑까지 줄줄이 놓아도 방 한구석이 휑했다. 그리고 중간 크기 방 하나에 간신히 혼자 지낼 수 있는 작은 직사각형 방 하나.

보통 집의 쓸모를 보려면 방 크기부터 가늠해보는데 이 집의 진짜 문제는 방 크기가 아니라 방바닥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방바닥이 딱딱하지가 않았다. 물론 생활하기 불편할 정도로 물컹한 건 아니었지만 야무지게 단단한 온돌 느낌이 아니었다. 게다가 물컹한 곳을 지나면 어떤 부분은 약간 파여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디는 살짝 솟아 있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이사를 가거나 집을 꾸미면 벽은 도배를 하고 방바닥은 장판지를 풀로 붙이고 말린 뒤, 그 위에 니스를 몇 겹 다시 바르고 또 짱짱하게 말리고 나서야 짐을 들이는 게 수순이었다. 즉, 손을 볼라치면 파인 곳은 메꾸고 튀어나온 곳은 다듬는 미장 공사를 먼저 하고 도배공사를 했어야 하는데 애당초 그런 정성은 없었던 바, 방 3개에 마루까지 모두 노란 고무 장판을 깔아버렸다. 헌데 장판을 깔아도 네 귀퉁이 아구가 벽 모서리에 꼭 들어 맞고, 중간 이음새도 들뜨지 않게 꼼꼼히 깔았으면 그나마 봐줄 법했을 텐데, 대체 어느 일손의 작품인지 방 네 귀퉁이마다 장판이 삐죽이 치고 올라가 뻗어 있는 모양새로 마감을 해놓았고 장판이 이어지는 가운데도 덧댄 부분이 과해 중간만 장판이 불룩 히 솟은 모양새가 돼버렸다.

대충 방 크기에 맞게 장판 두 장을 ‘턱’ 하니 겹쳐 놓았다고 하면 딱 맞겠다. 워낙 솜씨 없는 일손이었던 걸까, 아니면 그냥 대충 깔아주세요 했던 걸까, 설마 이런 집에도 사람이 살러 들어오나 싶어 대충 깔아도 되겠다 싶었던 걸까..

하지만 그 집에서 사는 3년 동안, 우린 가끔 겹친 장판 사이에 낀 먼지를 닦아내려 장판을 들어 올리거나, 구석 귀퉁이 쪽 먼지를 빼내면서도 심란해하기나 했지, 어느 누구도 장판 귀퉁이를 자르고 다듬거나 이음새를 다시 맞출 궁리는 하지 않았다.

정성도 없어, 돈도 들이지 않아, 맘은 애당초 줄 생각도 없어, 그러니 그냥 그렇게 사는 수밖에.


때깔 없고 맘이 안 가긴 방보다 화장실이 더했다.

근심을 풀어주는 곳이라 ‘해우소’ 라 부른다 더만, 이건 이름과 전혀 걸맞지 않게 일을 보고 나오면 스트레스에 압도되는 곳이 이 집 화장실이었다.

작아도 너무 작았다.

겨우 한 사람이 들어가 일만 볼 수 있을 정도였는데, 물이라도 끼얹고 씻으려면 아크로바틱 한 포즈를 취해야 겨우 가능했다. 한 여름엔 잠시라도 들어갔다 나오면 땀범벅이 되기 일쑤였고 겨울이면 허구 한날 동파 걱정이었다. 오죽하면 난 이 집 이후로 화장실 때문에 씻기 싫을 수도 있다는 의견에 격하게 동의한다.


부엌도 나을 것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좁고, 낡고, 지저분했다. 아무리 청소해도 깔끔해 지기 힘든 상태였다.

그래서였나,. 이 집에 사는 동안 우린 식구끼리 둘러앉아 지지고 볶으며 먹고 마신 기억이 당최 없다. 우선 엄마가 부엌을 들락대며 뭐라도 분주했어야 했는데, 이 집 부엌에서 요리하는 엄마의 모습을 기억해 낼 수가 없다.


모든 게 살기에 불편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마루 한가운데엔 얼토당토않게, 기막히게 안 어울리는 ‘페치카’ 즉, ‘벽난로’가 뜬금없이 자리하고 있다. 분수를 몰라도 한참이지! 아마도 이 집은 동네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기 전, 멋 좀 아는 부잣집에서 잠시 휴식하러 다닐 용도로 지은 여벌 집이 아니었을까 싶다. 분명 그랬을 것이 벽난로 말고 마당을 봐도 그렇다.

주거용으로는 영 불편한 실내의 면면에 비해 마당은 꽤나 넓었고 이름 모를 나무들로 울창했는데, 그중 압권은 마루에 앉으면 정면으로 보이는 연못이었다. 크지도 앉지만 작지도 않은 연못은 주변을 정원 석으로 가꾸고 작은 분수까지 들여놓아 꽤나 봐 줄만 했겠다 싶었는데 우리가 이사 간 그 시점엔 이미 용도가 폐기된 채 방치된 지 얼마나 지난 건지 그저 좀 깊은 웅덩이에 불과했다. 그래도 뭐라도 있으니 다행이라고 잔잔히 맑은 물에 잉어 한 두 마리 정도 풀어놓고 들여다보면 없던 여유도 생겼겠다 하겠지만 뭐든 가꾸고 즐기는 것도 집안 사정 나름이다. 당시 우리 집 식구 중 어느 누구도 연못 따위로 마음을 달래고 말고 할 정도로 여유를 부릴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들여다보지도 않았으니 하수며 배수 같은 건 짐작도 안 해봤고, 그 덕에 이사간지 두어 달 뒤 밀어닥친 장마에 속수무책으로 물난리를 겪어야 했다. 어지간히 비가 몰아온다 싶으면 곧 연못에 물이 차 넘치기 시작했는데 풀 한 포기 없던 흙 마당은 진창에서 흙탕물 천지로 변해 순식간에 발목까지 차 올랐고 마당은 온통 연못에서 넘쳐난 낙엽에 자잘한 쓰레기들로 가득 찼다. 허나 뭐든 처음이 어설퍼 고달픈 법. 그 후로도 몇 번을 더 장마다 태풍이다 들이닥치는 낌새만 보이면 우리 형제들은 가능한 외출을 자제하고 언제 닥칠지 모르는 마당 물 퍼 나르기 노역에 능숙하게 대처했다. 물론 쏟아지는 빗속에서 대문 밖으로 한창 물을 퍼 나르다 보면, 바로 시멘트라도 한 포대 들이부어 천에 쓸데없는 구덩이를 당장에 막아버리고 말겠다 늘 투덜댔지만, 한 두 번 수고 후면 비는 지나가기 마련이었고, 쨍하고 해가 나면 그런 궁리는 또 모두 잊었다.

잠시 머물고 떠날 집, 뭐 하러.. 했던 거다.


잠시 머물렀다 하기엔 애매한 3년, 그 집에서 연못 다음으로 식구들의 혼을 빼놓았던 건 왕성한 번식활동을 자랑하던 ‘쥐’들이었는데 필시 ‘사람’이 사는 곳에 ‘쥐’가 나타난 게 아니라 ‘쥐’가 사는 곳에 ‘사람’이 살러 들어온 게 분명했다. 어차피 쥐야 바깥에서 사는 거 무슨 문제였을까 싶지만 문제는 바깥에서 사는 건지 집안에서 같이 사는 건지 모를 선명한 존재감. 오밤중 잠시 방을 나서는 순간 ‘쥐’가 아니라고 하기엔 너무나 ‘쥐’스러운 움직임으로 마루를 가로질러 사라지는 걸 시작으로, 한 가족으로 추정되는 ‘떼’의 이동이 밤이면 밤마다 천장에서 벌어지는데 우선 위생 문제로 제대로 비위가 상했고, 비위가 상하는 그 집에서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한다는 현실에 마음이 더 상했다.

이렇게 쥐들이 뛰어난 존재감을 돋보일 수 있었던 건 역시 옛적 잘살던 집의 천에 쓸모없는 액세서리, 벽난로 덕분이었다. 쥐들은 굴뚝을 타고 집 천장은 물론이요, 집안 구석구석을 거칠 것 없이 들락거렸는데 연못이야 일 년에 기껏 한 두 번 차고 넘쳤으니 지나가는 수고로 대신한다 했지만 일 년 내내 수시로 마주치는 ‘쥐’들은 반드시 때려잡아야 할 존재였다. 벽난로 구멍을 막고, 쥐 덫에, 끈끈이는 기본이요, 심지어 키우던 개들도 쥐를 잡아 주인 앞에 가져다 놓고 자랑스러워할 정도로 온 식구가 쥐 잡기 운동에 매진했다.


보통 ‘우리 집’이라 부르며 살기를 작정하면 그 집이 전세냐, 월세냐, 자가냐 그 소유 여부와 상관없이 집에 정을 붙이고 살려는 노력들을 한다. 쓸고 닦는 정성이야 기본이고 크고 작은 치장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시간 따라 마음이 쓰이면서 켜켜이 정이 쌓이는구나.. 하게 된다. 그런데, 연못 집에서 살았던 3년 동안, 우리 식구는 어느 누구도 집에 정을 붙이지 못했다. 하찮은 물건도 정을 주고 쓰다듬다 보면 소중한 물건으로 변한다는데 온 식구를 담아내는 ‘집’이야 오죽한가. 하지만 애당초 잠시 스치고 떠버릴 집, 대접도 딱 그 수준이었다. 마치 연못 집은 이런 식구들의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우리가 거주하는 내내 쉴 새 없이, 안팎 구석구석에서 온갖 문제들을 일으켰다. 지붕에서 물이 새는 건 기본이었고, 해마다 넘치는 연못에, 연탄 구들이 내려앉아 방이 얼어붙더니, 수도가 얼었네, 녹았네 결국 터졌고, 조용하다 싶으면 마루가 꺼지질 앉나 나중엔 싱크대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다. 다만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어차피 헐릴 집, 올해만 견디면 된다, 곧 떠난다.’ 주문 같은 희망을 머릿속에 구겨 넣으면서..

아니다. 욕을 했다.

'거지 같은 집. 아주 제대로 고물이니 아예 주저앉아 버려라. 빌어먹을.. 망할..'

한참 죄 없는 집을 욕하다 보면 욕의 반은 한탄, 나머지 반은 절망 정도로 채워졌다.

‘아.. 대체 언제쯤 나갈 수 있을까, 과연 집다운 집에서 살아 볼 수나 있을까. 이러다 여기서 평생 살게 되는 거 아닌가’..

아득하고 불안해서 지긋지긋했다.


그렇게 흡사 집과 사람이 싸우는 모양새로 시간은 흘렀고 우린 드디어 연못 집을 떠났다.

다행히 연못 집보다는 훨씬 살만한 작은 빌라였다. 그리고 훨씬 살 만한 곳에서 좀 나아질까 기대했던 건 아마 살림살이보다 집안 분위기였다. 그런데, 아마도 연못 집에서 보낸 3년 동안 우리 가족은 집을 챙기는 방법과 함께 가족을 챙기는 방법도 잃어버렸던 모양이다.

더 이상 집만 문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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