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칼퇴 천사

야근으로 무엇을 얻을 것인가? 밀레니얼 세대의 칼퇴론

by M과장

제 사수는 집에 갈 생각이 없는 것 같아요. 한 신입사원이 질문 메일을 보내왔다. 일을 다 마친 퇴근시간. 사수가 집에 가지 않자, 신입사원의 고민은 시작된다.


야근이란 내 일이 남아 있으면 하고, 아니면 안 하면 된다.

이 심플한 명제를 누군가는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멘토링은 재능기부와 같은 개념의 비경제적 활동이지만, 그들의 진심어린 질문을 마주할 때면, 나도 다른 차원의 가르침을 얻기도 한다. 어정쩡한 위치의 개구리에게 너에게도 올챙이적 시절이 있었음을 상기시켜주는 존재랄까.


회사의 리더도 막내도 아닌 중간자가 된지 오래인지라 내겐 잊혀진 고민이었다. 그녀의 고민을 마주한 오늘, 밤 늦게까지 이 글을 작성하는 달빛 칼퇴 천사의 칼퇴론을 풀어본다.



칼퇴를 방해하는 요소는 3가지이다.

무능한 나, 못난 상사, 더 못난 회사.


업무에는 절대 양이 있고, 그를 쳐내는 속도도 개인마다 다르다. 업무가 익숙해지고 나서도 야근을 하는 사람은 본인이 무능한 것이 아닌지, 정말 업무가 1인분 이상이라 버거운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둘 중 어느 쪽이라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


꼭 무능하지 않더라도 새로운 직무를 받게 되면 야근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새로운 업무를 보다 빠르게 습득하기 위한 야근은 '나를 위한 야근'이자 '생산적인 야근'이다. 언제까지 인수인계를 못받았는데요?라고 둘러댈 것인가? 전임자 핑계는 2주면 충분하다. 상황이 어떻든 야근을 해서라도 빨리 새 업무는 내 손에 쥐는 게 낫다.


애초에 인수인계라는 건 바라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걔중에는 잘 정리해서 전달해주고 가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핵심은 빼고 형식적으로 알려주거나,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정말 단 1개의 파일도 넘겨주지 않고 자기 카테고리를 인수인계한 선배도 겪어봤다. 바로 아랫 층으로 가면서도, 난 파일 원래 다 지워서 하나도 없는데?라고 말하던 그.


극단적이지만 그날부터 전임자는 '돌연사'했다고 생각했다.


급작스런 죽음 앞에 인수인계와 같은 지리한 인간 세계의 잡무를 할 시간은 없었으리라.


그의 처지를 이해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고, 차근차근 조금 오래걸려도 내 스타일대로 업무의 체계를 잡아갔다. 사실 전임자로부터 그 어떤 유용한 파일을 많이 받아도 결국 내가 만들지 않은 파일은 잘 안보게 된다. 핵심 파일을 안 주고가는 자의 인성을 그저 불쌍히 여기고 내가 안 그러면 된다.


그렇게 데여서인지, 퇴사할 때 하루이상 꼬박 투자해 후임자가 찾기 쉽도록 폴더정리를 하고, 주마다 시즌마다 해야하는 업무를 정리했다. 넌 내일 모레 퇴사하는 애가 뭘 그렇게 열심히 하냐며, 궁금한 듯 지켜보는 사람들. 한 선배는 꼼꼼히 인수인계를 준비하는 나의 모습이 아름다웠다고한다. 진심인지 농담인?


후임자는 내게 고맙다고 했다. 이 회사 다시 올 것도 아니고, 그 후임자가 나와 친한 사람도 아니지만, 내가 그 돌연사 선배와 같은 사람은 되지 않았다는 사실 정도면 충분하다.




사회 초년생으로 돌아간다면, 퇴근은 타의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야근을 권하지 않는 회사 분위기, 퇴근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선임과 팀장이 있는 곳이라면, 이 문제는 고민거리도 아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어떤, 아니 많은 직장은 칼퇴를 곱게 보지 않는다. 가라고 하는 눈빛에서 뭔가 꺼림찍함이 느껴지거나, 퇴근시간으로부터 몇 십분, 한 시간이 지나도 가라는 말을 안하거나. 눈치껏 앉아있는 게 왠지 맞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온다.


퇴근시간, 엉덩이가 들썩이는 초년생들의 고민을 끝낼 단 하나의 질문은 바로 이 문장이다.




"야근으로 무엇을 얻고 싶은가?"


나 역시 퇴근을 고민하던 꼬꼬마시절이 있었다. 회사 연차는 꽤 되었는데, 현장직만 하다가 사무직으로 발령나고 보니 그 몇 주간 난 참 쓸모없는 인간이었다. 니가 일을 잘 해서 여기 왔니? 어 그래, 어디 한번 해봐! 일 좀 한다는 평판은 내게 업무를 알려주는 사람은 없는 현상을 만들었다. 배움이 절실한 시기였지만, 날 가르쳐주기에는 다들 너무 바쁘기도 했다.


내 사수는 말도 별로 안했다. 내게 시키는 것도 딱히 없었고, 뭘 해야하는 지, 질문에 답도 잘 안했다. 난 그날부터 사수가 퇴근할 때까지 무한 기다리며 이것 저것 만지작거리고 뒤적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5년치 서류에 도장만 몇시간 찍은 적도 있다. 도장찍는 소리 크다고 혼나면서 미련한 야근을 했다.


퇴근을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그 사수를 기다리는 게 내가 업무를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밤 10시경, 선배는 자신의 일이 모두 끝나고 주변에 다른 팀 사람들도 거의 자취를 감출 때즈음, 노하우랄 것도 별로 없는 몇 가지 업무 팁들을 알려주었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일반적인 것들이었지만, 그 마저도 몰랐던 난 열심히 받아적고 숙지했다.


그 때 내가 야근으로 얻고 싶었던 건, 업무지식이었다.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데, 야근이라는 도구가 필수였다. 회사에 충성하고, 비난을 혼자 삭히고, 같은 야근러를 기다리는 게 의리라고 생각한 세대의 선배였다. 그렇게 6개월의 고난의 시간을 겪고, 업무가 조금 손에 익었다. 그동안 정말 싫었던 야근을 하지 않기 위해 업무를 빠르게 쳐내기 시작했다.




- 달빛 칼퇴 천사의 칼퇴론 -


점심 길게 먹느니 그 시간에 미리 일 끝내고 칼퇴하자.

야근을 위한 야근, 사내 정치를 위한 야근은 하지 않는다.

내가 필요하면 한다.


ps. 연차휴무는 단 하루도 남기지 않고 소진한다.


부문장님 퇴근 안 하실때마다 자리에 앉아있는 모 선배, 주변에서 모를 것 같지만 모두가 안다. 재밌는 건 내가 필요할 때 일하는 걸 본 팀장과 주변사람들은 나를 워커홀릭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난 매년 휴무를 단 1일도 남기지 않고 다 쓰는 연차 소진론자였으며, 누구보다 정확한 칼퇴러였다.


비록 업무는 미련한 야근으로 습득해야 했지만, 나의 성향은 프로 칼퇴러였던 것.


야근으로 얻을 게 없다면, 당당히 일어나라. 회사도 팀원도 팀장도 영원한 것 아닌데, 당신의 할 도리를 다 했다면 꿀릴 것 없다.




회사에 남아있는 사람중에 누군가는 정말 일이 있어서 야근하고,

누군가는 야근하는 자신을 봐주길 바라며 야근을 한다.


일이 없어도 남아있는 것은 미덕도 의리도 아니다. 지금부터 이런 야근을 '미련한 야근'이라고 부르자. 모두 그런 것은 아니나, 대체로 근무 년수가 오래되고 조직에서 실력없이 버티기로 유명한 사람들 중에 미련한 야근러가 많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비결이 이것이다 보니, 딱히 하지 마라 말릴 수도 없다.


물론 그런 자가 당신의 선임, 팀장이라면, 이제 선택해야한다. 미련한 야근을 같이해서 무언가를 얻을 것인가, 아님 그들과의 1년을 버릴 것인가? 회사가 무능한 사람을 안고 가는 건 길어야 1~2년이다. 버티면 그는 없을 확률이 높다. 사회초년생이라면 전자가 현명하다.


현재를 버티자! 영원한 고통은 없다고 믿으며! 그리고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 내가 되자!


못난 자들이 모여 '더 못난 회사'를 만든다. 요새는 칼퇴권장하는 회사가 많지만, 회사의 칼퇴 권장이 진심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시대적 분위기가 있고, 정부의 권고도 있으며, 좋은 회사라는 타이틀도 하나 달고 싶어서, 큰 회사일 수록 진심인지 모를 칼퇴 권장을 하긴 한다. PC-OFF제도 만들고 인사팀을 동원해 퇴근 점검을 하기도 한다. 늘 당연한 야근에 시달리던 우리같은 N세대(추억돋음)가 볼때에도 이런 분위기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시대에 빗말이라도 칼퇴하라고 말하지 않는 회사에 다닌다면, 이직 준비를 차근차근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 회사, 참 못난 회사이다.




당분간 못난 회사에 계속 다닐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칼퇴 문화라는 우물에 짱돌을 던져보자. 내가 대단한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나, 난 내 스스로 에게도, 후배들에게도 야근을 권하지 않는다. 깔끔하게 자기 근무시간에 일 다 끝내고 칼퇴하는 사람이 일을 더 잘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매번 담배피우러 나가서 자리에 없고, 밥 1시간 이상 먹는 사람치고 일 잘하는 사람이 없다. 낮에 그렇게 놀고 야근계를 올린다. 참 잘 하는 짓이다.


눈치보지 않고 퇴근하고 휴무를 하는 건 나부터 할 수 있다. 물론 리더가 움직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중간 급인 한 두 사람이 그 팀과 부문의 퇴근 문화를 만들 수 있다.


다람쥐 쳇바퀴는 야근과 칼퇴라는 두 개의 통이 서로 다른 위치에서 다르게 움직인다. 깔끔한 업무처리와 칼퇴의 선순환 구조에 과감히 들어서야한다. 그러기 위해선 야근의 쳇바퀴에서 내려와야한다.




다시 질문해보자. 칼퇴를 해서 얻는 것과 야근으로 얻는 것,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미련한 야근으로 누군가의 호감을 사고, 그것이 진급이나 업무 지식과 연관이 된다면 일정기간은 할 수도 있다. 개인의 선택이다. 생산적인 야근으로 나를 발전시키겠다, 역시 좋은 선택이다. 모든 야근은 하지 않으며, 오늘 저녁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역시 매우 가치있는 선택이다.


고민의 중심은 '내가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이다.


최근에 텀블*에서 달빛천사 OST가 26억 딜을 모아 화제가 되었다. 추억의 노래 한방으로 일주일만에 26억을 버는 시대이다. 생산적이든 미련하든 야근이란 건 모두 다 집어치우고, 퇴근 이후에는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게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퇴근시간 후의 인생을 어떤 방향으로 살 것인지는 나의 선택이다. 그 선택이 무엇이든 내가 중심이 되면, 엉덩이 들썩이며 느끼는 짜증이 조금 줄어들 것이다.


이건 달빛 칼퇴 천사가 주는 진짜 조언이다.

나의 마음을 담아




[회사생활 꿀팁]

-. 밉지 않은 칼퇴요정 되는 꿀팁1, 자기 맡은 업무는 빈틈없이 꼼꼼히 다 끝내고 가자! 쟤는 매번 칼퇴하는데, 업무가 다 밀려있고 엉망이다 싶으면 누구도 예쁘게 볼 수가 없다. 권리는 의무를 다 할 때 찾아먹을 수 있다. (일 다 안하고 도망가는 사람한테 뭐라고 하는 거는 꼰대 아닙니다. - N세대 중간자 대표)


-. 밉지 않은 칼퇴요정되는 꿀팁2, 내 일을 다 끝냈다. 퇴근 시간이 다 되었다. 그런데 사수가 가지 않는다. 그럴 때 그냥 무표정으로 "내일 뵙겠습니다" 꾸벅하고 가는 것보다는 훨씬 예쁜 말이 있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제가 도울 게 있을까요?" 보통은 없다고 할 것이다. 사실 선임은 너의 도움이 거의 필요없다. 그게 핵심이다.


-. 가끔 퇴근무렵에 도움을 요청하면 흔쾌히 적극적으로 도와라. 도움이라기 보다는 당신이 배우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날 함께한 야근은 인간관계든 업무능력이든 너의 자산으로 되돌아온다. 내 선임이 그 회사 오너의 딸, 아들이 아니라면 잘 생각해보라. 그도 역시 일 빨리 끝내고 퇴근하고 싶은 직장인이다.


by. 요즘 직장 생존법, M과장


[이 글은 '요즘직장생존법'에 수록된 매거진 원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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