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일의 취향 10화

누구도 우리의 가을을 막을 순 없다

코로나19 이후 사라진 것들에 대하여

by M과장

코로나19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 이미 우리 주변에 사라진 것이 세 가지 있다.


온전한 '얼굴',

미지의 세계로의 '여행',

잠시 나를 삶이 아닌 곳으로 데려다주던 '공연'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군분투하는 의료진들이 있기에 누리는 일상에 늘 감사하며...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한 인간의 작은 아쉬움을 적어본다.

수년전 마스크가 속한 카테고리를 담당하던 시절, 거래가 성사되지 않았던 한 협력사 사장님이 이런 말을 했다. "우리나라도 언젠가 전 국민이 마스크를 쓰게 되는 날이 오면, 다시 뵐 수 있겠네요." 그 땐 그저 예의상 "네. 그렇겠네요."라고 대답했지만, 정말 그가 예견한 세상이 오고야 말았다. 불과 5년만이다.


사람이 사람의 표정을 온전히 본다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던 시절을 살아왔다.

삼십여년 동안, 아니 한 생 우리는 서로의 표정을 오롯이 보아왔다.


사람이 말을 할 때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읽을 수 있다. 생기있는 눈빛, 볼에 가끔씩 지어지는 보조개, 확신에 찬 입모양과 미소. 감미로운 목소리와 함께 뇌에 정리되는 이 모든 시각적인 요소들. 사람에 대한 호감은 이 둘이 조합되면서부터 '궁금증'이란 이름으로 시작된다.

"마스크 좀 써주실래요?" 독서모임에서 한 남성분이 열정적인 토론을 시작하기 직전이었다. 마스크가 입에 중간쯤 걸쳐있었고 한 여성이 그런 그의 모습을 지적했다.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난 새삼 현재 우리가 처한 대화의 삭막한 환경을 피부로 느꼈다.


서로의 절반만 보는 시대, 누가 누구를 보고 첫눈에 반하는 일 따윈 일어나기 어렵다.


식사자리가 없다면 우린 나머지 절반을 볼 기회 조차 없다. 당신의 말에 귀기울이고 있음을 어필하고 싶을 땐, 긍정의 눈빛과 함께 차안에 비치된 강아지 방향제처럼 고개를 보다 적극적으로 끄덕여야만한다. 불과 7개월 만이다.


집콕이 미덕이 된 시대, 지인과의 약속도 취소하고, 간간히 나가던 동호회도 모두 접고 핸드폰만 들여다본다. 코로나 사태가 수 많은 연인들의 사랑의 시작도 방해하고 있음을 누가 알까?


행정부처에서는 가임기 여성지도 따위를 그려서 배포할 게 아니라, 이 시국에 어떻게 선남선녀들의 자만추를 도모할 지 고민해야한다. (물론 그 지도는 하루만에 논란에 못이겨 폐기되었다)

위 사진 - ‘2019년 주거실태조사 결과', ‘신혼부부 가구 기준’ 여성만 나이제한(국토부,'19.6.1) / 아래 사진 - 가임기 여성지도 (행정자치부, '16.12.29)


with 코로나의 아쉬움 두번째, 여행


강원도 산골에서 군생활을 마치고 한 회사의 입사 확답을 받 그 때, 내겐 4개월의 인생 공백기가 주어졌다. gap year. 이 시간은 아무도 내 인생에 관여하지 않는 온전한 자유시간이다.


가진 것이라곤 신체건강함만 가지고 있던 스물일곱, 당시 내가 가진 전 재산의 90%를 털어 홀로 세계여행을 떠났다. 미국 횡단하기, 안 가본 유럽국가 많이 가보기. 돈을 상당히 아끼고 모으는 편이었던 나 였기에, 더 어이없고 기가 막힌 선택이었다.


아마 공보상황 대기자로 나름 오지에서 3년간 생활했던 것이 이런 정신나간 지출에 큰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하다. 한국에 돌아오면 앞으로 지낼 곳 조차 처음부터 다시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그 때 난 확신했다. 흙수저 인생에 이런 귀한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앞으로 내가 노동자로 살아가야하는 기간이 얼마가 될지 정확히 알 순 없었지만, 막연히 한 10년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예상은 적중했다.


인생에 가장 강렬한 인상을 준 여행이었기에, 회사에서 허락하는 1년에 1번 열흘간의 휴가기간동안 나는 참 부지런히 다녔다. 가능한 멀리, 시간대가 뒤바뀌는 그런 힘든 먼 여행으로. 진심으로 몸이 힘든 건 사실이었으나 그 때 나를 해외로 등떠민 건 바로 이 문장이다.


지금이 아니면 안된다.


해외여행 할 체력이 있을 땐 돈이 없고, 돈이 있으면 다리에 힘이 없다고 한다. 결국 뭐하나라도 있을 때 떠나는 게 낫다. 인생이 늘 완벽할 수 없으니까.


10여년이 지나 어린 나의 판단을 평가해본다면, 참 기특하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그 때 그 여행의 기억이 없었다면 with 코로나 시대의 난 더 많은 후회를 하고 있을 것이다.


출국자는 앞뒤로 며칠간 격리해야만 하는 요즘, 평범한 직장인의 휴가에 해외여행의 기회는 당분간 없다고 보는 게 현실적이다. 가끔 뇌를 안 거치고 하는 행동도 쓸모가 있다.

세번째 아쉬움, 공연.


매년 초면 LG아트센터 홈페이지를 기웃거렸다. 예매 갯수는 많지 않지만, 결제를 하다보면 해외초청 공연은 거의 1년치를 미리 예매를 해둘 때가 많았다. 오매불망 그들이 내한하기만을 손 꼽아 기다리는 것도 하나의 일상의 작은 설렘이었다.


그러나 코로나사태가 본격화되고, 하나 둘씩 취소 문자가 오더니, 급기야 내가 예매한 모든 공연이 취소되었다. 평생 한 번 볼까말까한 공연들인데 이렇게 무심하게 취소가 되어버리다니.

공연을 기다리는 이유는 나를 삶이 아닌 곳으로 잠시 데려다 주기 때문이다. 와, 여기서 이런 플롯으로 넘어가는구나. 기가막힌 장면전환이나 구성을 접하면 메모하고 싶어진다. 공연을 보는 순간만큼은 극작가를 꿈꾸던 스무살의 나로 돌아가나보다.


다만 평범한 직장인이 감당하기 살짝 부담스러운 공연은 망설이다 지나친 적도 많았다. 다음에 보지, 뭐. 그러나 이제는 돈을 준다해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코로나 바이러스로인해 수많은 생명이 죽고 경제가 무너진 상황에서 얘기하기 조금 민망한 주제이긴 하지만, 공연 생태계 역시 누군가의 직장이고 소득원인데, 이렇게 처참히 무너진 것을 보니 너무나 안타깝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그들의 연극을 역삼에서 편안하게 볼 날이 다시 올까?

사실상 'with 코로나시대'를 맞이하며 확실하게 알 게 된 명제가 하나 있다.


나중은 없다.


이성의 얼굴을 보자마자 반하는 경험도,

버킷리스트에 적힌 여행지를 떠나는 것도,

영화나 공연같은 작은 일상의 즐거움을 보내는 것도,

이제는 나중을 기약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 되어버렸다.


그동안 국내여행을 잘 가지 않았던 이유는 나중에라도 언제든 갈 수 있으리란 생각 때문이었다. 바이러스로 지역과 도시가 폐쇄되는 일도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데, 이 또한 확신할 수 있을까?


지금 가고 싶으면 가라.
지금 하고 싶으면 해라.
지금 만나고 싶으면 만나라.


그러고보면 세상에 나중은 원래부터 없었다.


나중이 있으리라는 생각에 오늘 할 일을 미룬 건, 오늘을 조금 더 안일하게 보내고 싶은 당신과 나의 합리화일뿐이다.

30만명이 내려온다고 난리치던 언론사의 말과 달리 2020년 추석의 제주는 매우 한적합니다, 비행기표 9,900원입니다. 오세요.

추석을 맞아 오게 된 무계획 제주여행에서, 볼 거라곤 파도 밖에 없는 토끼섬과 광치기 해변 앞에 한참을 차를 대고 앉아있었다. 젊은 사람들은 도통 가지 않는다는 섭지코지와 서귀포의 인적 드문 자연을 돌아보면서 여행이 주는 작은 행복을 느꼈다. 볼 것이 없다면 없고, 있다면 정말 많은 곳. 바람, 바다, 하늘, 해외의 어느 것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경치, 날씨도 로스엔젤레스급이다.


이번 추석 연휴에 30만명이 마스크를 안쓰고 제주도를 누비고 다닌다고 난리를 친 기사를 봤는데, 이곳 사람들 마스크 잘 쓰고 다니고 무엇보다 맛집으로 소문난 곳도 한적하다. 기자가 정말 2020년 추석을 와보고 기사를 썼는지 묻고 싶다.


그동안 무언가 할까말까 망설인 것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기약이 없는 바로 그 것이라면, 이번 연휴기간에 한 가지만이라도 시도해보기.


Do remember. They can't cancel spring - David hockney - 코로나 사태 이후 데이비드 호크니가 남긴 희망의 메시지


어두 컴컴한 방에서 보는 넷플릭스도 재미있지만, 지금은 그저 바깥 세상에 눈길을 한번 주는 것도 나쁘지않다.


가을하늘은 너무나 아름답기에...

데이비드 호크니의 말처럼

누구도 우리의 가을을 막을 수 없다.



[에필로그]
- 취미로도 '일 잘하는 법, 잘 지내는 법'을 읽는 당신, 존경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젠 덮으셔도 됩니다. 핸드폰에 고정시킨 눈을 하늘로 옮겨보세요. 주말엔 괜히 떠나도 좋습니다.


-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하는 건, 잘 살기 위함입니다. 일의 취향이 무엇이든 잘 하고, 잘 쉬고, 잘 자는 것부터 시작해보죠. 마지막 글처럼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 공연, 여행은 당신을 더 여유롭고 우아한 삶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당신 인생에 '쉼의 취향'을 더 해보길 바랍니다.


by. 요즘 직장 생존법, M과장


유민미술관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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