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오히려 좋아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렇듯 고등학교 3학년의 나는, 대학이 인생의 전부인 줄 알았다.
(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하던 학생도, 잘하던 학생도 아니었지)
대학에 입학한 뒤엔, 그다음 스텝이 ‘취업’이라는 사실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이게 인생의 순리니까.”
나만 그렇게 믿은 건 아니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 믿음은 대학교 1학년이 끝난 겨울,
우연히 다녀온 캐나다에서 깨지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곳에서의 생활은
내게 이상한 용기를 안겨주었다.
“꼭 한국이어야 할까?”
“왜 꼭 한국에서 회사에 다녀야 하지?”
"회사는 꼭 다녀야 할까?"
“꼭 그렇게 살아야만 할까?”
어릴 적부터 모든 일에 ‘왜?’라고 물으며
선생님과 엄마의 속을 뒤집어 놓던 나는,
처음으로 그 질문을 내 삶에 던지기 시작했다.
행복했던 대학생활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고
어느덧 4학년.
주위를 돌아보니,
나는 취업 시장에 맞설 만한 무기를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상태였다.
동기들은 자격증과 포트폴리오, 대외활동까지— 경쟁력 있는 이력서를 채워가고 있었지만,
내게는 그들과 같은 학위와, 평균보다 아주 약간 높은 학점뿐이었다.
그 대신, 나에겐 ‘용기’가 있었다.
친구들이 토익을 준비하고
가능한 많은 회사에 지원할 때,
나는 미국 인턴십을 알아봤고,
예상보다 빠르게 합격해 졸업 직후 미국으로 향했다.
그곳에서의 경험은 내게 큰 의미가 되었다.
운 좋게도 취업 비자 스폰서 제안까지 받았지만,
예상치 못한 코로나로 비자는 무산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기가 내 프리랜서 인생의 시작이었다.
인턴 했던 회사의 소개로 관련 기업의 디자인 외주를 맡게 되었다. 코로나로 미국에선 재택근무가 보편화되던 시점이었고, 그 덕분에 나도 한국 집에서 시작된 프리랜서 디자이너의 삶은 어느 ‘프리랜서의 삶도 좋은 삶은 아닐까?’ 하는 새로운 시각을 내게 심어주었다.
코로나가 잠잠해진 후 출장을 다녀온 뒤에는 다시 ‘회사’라는 구조가 궁금해졌다. 몇 년간의 미국 회사에서의 프리랜서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서 취업을 준비해 보려는 순간,
제대한 동생과 미국 회사를 그만둔 내게 부모님은 “앞으로 너희 둘이 함께할 시간이 없을 것”이라며 여행을 제안하셨고, 그렇게 우리는 2개월간 유럽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여행 중에도 나는 외주를 병행했고,
내 시간을 내가 설계하며 언제든 노동할 수 있는 삶이 얼마나 즐거운지를 실감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계속 자문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그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나는 프리랜서로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지금의 나는 공유오피스를 기반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연결되고, 그 공간의 브랜딩과 커뮤니티 운영도 함께하고 있다. ‘디자이너’라는 타이틀뿐만 아니라, 브랜드를 기획하며 사람들과 함께 ‘일의 방식’을 탐구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회사의 울타리 밖에 있었기에,
나는 더 많은 역할을 시도할 수 있었고,
더 주체적으로 삶과 일을 설계할 수 있었다.
브런치에는 그런 나의 이야기들을 담아갈 것이다.
출근하지 않아도 괜찮은 삶에 대하여.
회사 없이도 매일을 진지하게 살아가는 한 사람의 기록처럼.
그리고,
내가 함께하는 브랜드들의 프로젝트 비하인드까지—
그 이야기들을 나누며, 누군가에겐 다른 방식의 삶도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사는 게 가능해?”
"그렇게 살면 불안하지 않아?"
내 대답은 항상 같다.
“매일 같은 곳으로 출근은 안 하지만,
살아가는 데엔 아무 문제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