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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새롬 Jul 20. 2017

제4차 산업혁명: 코딩교육이 답일까


  십자군 전쟁에서 언어학자들이 주목하는 특별한 현상이 있다. 바로 링구아 프랑카(Lingua Franca)이다. 십자군과 상인들이 유럽 대륙을 가로질러 이동하면서 서로 다른 언어 사용자 사이에 존재하는 의사소통의 공백을 메꾸고자 특수한 언어를 발달시킨 것이다. 일종의 타협 언어다. 프랑크 족의 언어를 바탕으로 변형된 언어이기에 프랑크 족의 말(Frankish Language)이라는 뜻의 '링구아 프랑카'라고 불렸다. 링구아 프랑카의 중요성은 단지 서로의 말을 그럭저럭 알아듣게 해주는 데 있지 않다. 보다 근본적으로, 링구아 프랑카는 다른 세계를 이해하고 적응해 나가는 데 필요한 수단이었다.

  

  세계을 이해하고 적응하는 데는 어떤 능력들이 필요하다. 주목받는 개념 중 하나는 리터러시(Literacy)이다. '리터러시'란 용어가 등장한 것은 문자 언어의 인쇄가 가능해진 19세기 중반이었는데, 당시에는 문자 기록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획득하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 단어나 철자들을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을 일컬었다. 그런 의미에서 문맹(illiteracy)이란 문자를 읽고 쓸 줄 모르는 상태일 뿐이었다. 그러나 사회변화와 더불어 리터러시는, 다양하고 구체적인 사회적 상황에 대응하고 의사소통 하고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기능으로 그 개념이 확장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현대사회의 의사소통 환경, 문맹(文盲)아닌 '문맹'의 성립을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이다.

  

  새로운 세계은 늘 새로운 리터러시를 요구한다. 우리는 이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다른 나라의 사회와 문화의 작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언어와 일상적 규범 등을 알고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또, 한 사회 내에도 미디어, 과학, 기술, 농업 등 다층적인 세계가 중첩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에게는 상당히 많은 리터러시가 동시에 요구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더해 우는 '제4차 산업혁명'이란 거대한 사회변화를 선고받기까지 했다. 앞으로 이해해야 할 세계, 이를 위해 필요한 리터러시는 무엇인가?



  「프로그램하라, 그렇지 않으면 프로그램당한다」(Program or Be Programmed)의 저자 더글라스 러시코프는 디지털 사회의 가장 기본적이고 강력 요구로서 프로그래밍 능력을 주장했다. 프로그래밍을 배워야 디지털 기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고, 디지털 생활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세계 각국에서는 프로그래밍 교육, 코딩 교육이 '붐'이다. 미국에서는 2012년부터 코드카데미(Codecademy)라는 온라인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프로그래밍 학습을 장려하고 있으며, 2013년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나서서 모든 미국인의 코딩 교육을 강조했다. 유럽도 비슷한 상황이며, 한국은 2015년부터 초등 및 중학교의 소프트웨어 교육 의무화를 추진하고 교원 연수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의 Hour of Code (이미지출처: http://seokjun.kr/)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사회변화가 예고된(또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을) 지금, 프로그램이 미래 디지털 사회의 링구아 프랑카라는 사실, 프로그램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프로그램 교육이 반드시 프로그래밍 교육, 그보다 단순화된 코딩 교육이어야만 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디지털 프로그램, 기술의 생산자이자 소비자가 될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은 코딩이나 프로그래밍 능력을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디지털 기술에 대한 우리의 (의식하지 못할 수도 있는) 의존성과 기술이 우리에게 미치는 막대한 영향을 고려하며 프로그래밍 하고 반성할 줄 알아야 한다. 디지털 프로그램의 구조와 사회적 영향을 조사, 검증할 수도 있어야 한다.


  미래사회를 위한 프로그램 교육이 프로그램의 원리와 기술 교육에 치우친다면 교육부에서 만전을 기하고 있는 "미래 사회 핵심 인재"는 결국 프로그램의 작동방식을 아는 전문가로 좁혀진다. 그리고 그 전문가가 권력과 부를 독점하고 디지털 세계를 마음껏 주무를 가능성을 교육계가 용인하고 오히려 장려하는 셈이다. 최근 디지털 프로그램 전문가들이 주도한 각종 실험과 조작 사건은 교육에서 어떠한 미래 인재 육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2012년 페이스북 감정조작 실험은 정교한 프로그래밍 기술을 이용하여 이루어 졌다. 약 70만명의 페이스북 뉴스피드에서 긍정적 또는 부정적 감정과 연관되는 단어가 있는 콘텐츠가 삭제되도록 프로그래밍한 후, 사용자의 반응을 살피는 실험이었다. 2015년 폭로된 폭스바겐 자동차의 배출가스 조작 사건도 프로그래밍 기술 전문가가 개입되어 있었는데, 설계된 자동차는 기준의 최고 40배가 넘는 오염물질을 배출하지만 연비 테스트 시에는 가스 저감장치가 작동되었다.


  컴퓨터실 설치, 노후 컴퓨터 교체, 코딩교육 전문 교사 양성, 지속적인 예산 확보 등 코딩 교육에 투자하는 정부의 노력이 상당하다. 그러나 그 노력이 지향하는 목표나 비전은 과학기술 전문가 혹은 산업예비군 양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듯 하고,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기술의 사회적 영향을 검증하고 평가할 전문가 양성에는 거의 관심이 없어 보인다.


영국의 코딩교육 (이미지 출처: 교육개발웹진)


  제4차 산업혁명은 그동안의 산업혁명과 다르게 미리 예고된 혁명이라는 점이 특징적이다. 변화의 속도와 범위가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되어 불안감이 조성된 것은 사실이나 한편으로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긍정적, 부정적 영향에 대한 통찰이 교육에 주는 시사점도 많다. 우리사회가 길러내야할 인재에는 디지털 세계의 언어에 통달한 전문가뿐만 아니다. 그 세계의 작동 원리와 규범을 알고, 다양한 사회적 상황에 대응할 줄 아는 인재, 디지털 리터러시가 요구되는 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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