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속도를 존중한다는 건
이 아프리카 속담을 처음 들었을 때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마음에 새기며 이런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던 순간들도 있었죠.
그러나 저의 현실은 '빨리빨리'
할 수만 있다면 '더 빨리'
'빨리빨리'는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라고 합니다.
이제 '빨리빨리'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특징 중 하나가 되었지요. 물론 '빨리빨리' 문화가 무너진 나라를 재건하고 한강의 기적을 이룬 힘이 되어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가 사람들을 소진되게 하고
번아웃을 경험하게 하는 부정적인 영향이
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빨리빨리'가 어떤 이들에게는 인생을 겨울로 가게하는 불안의 기폭제가 되기도 합니다.
세상은 경쟁을 조장하며 속도가 실력이라는 가스라이팅을 합니다. 그러니 그 속도에 맞추지 못하고 따라가지 못하면 패배자라는 의식을 심어주지요. 속도를 쫓다 보면 조급함이 생깁니다. 그리고 조급함은 실수를 만듭니다. 실수가 누적이 되면 결국 실패자라는 스티그마(Stigma), 사회적인 낙인이 새겨집니다.
'스티그마(Stigma) 효과'
남아있는 실낱같은 용기마저 잔인하게 태워버립니다.
"너는 안 되는 인간이야!"
어린 시절의 기억을 돌이켜보면, 저는 달리기 외에는 '빨리빨리' 하는 것을 힘들어하던 아이였습니다. 학교 등교를 준비할 때도 아침에 서두르기 싫어서 항상 전날 밤 가방을 챙겨 두곤 했습니다. 학습에 있어서도 내용이 온전히 이해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어 그 자리에 멈춰 서 있곤 했죠.
"이지연은 버퍼링 중"
컴퓨터가 버퍼링 되면 사람들은 기다립니다.
하지만 저의 '버퍼링'에는 기다려주는 이도
관심을 가져주는 이도 없었습니다.
저의 버퍼링과는 상관없이 학습 진도는 정거장 없이 지나가는 열차처럼 빠르게 지나칠 뿐이었습니다.
공부가 힘들고 싫었던 기억은 아마도 저의 속도를 존중받지 못했던 기억에서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첫 직장에서 상사로부터
"일하는 속도가 너무 빠르니 다른 사람들과 좀 맞추세요."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저를 잘 아는 사람들은 '이게 웬 말인가' 싶었을 거예요. 인정의 욕구가 상상을 초월할만큼 열정을 낸 덕분인지 세상이 원하는 기준을 누구보다 빠르게 파악하여 적응했습니다. 그렇게 사회화의 결과로, 그리도 원하지 않던 '빨리빨리'에 얽매인 사람이 되어 있었지요. 빨리빨리를 잘하면 꽤나 괜찮은 사람이 되는 줄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12년간의 직장 생활이 버겁고 힘들었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지 싶습니다.
제 본래 속도가 아닌, 세상이 기대하는 속도를 억지스럽게 내며 달리고 있었으니까요.
'빨리빨리'는 상대의 속도를 존중하는 배려에는 안중이 없습니다.
오직 속도에만 꽂혀 내달리다 보면 방향도, 그리고 소중한 사람도 잃어버리게 되지요.
추운 겨울을 나는 이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건,
자신의 속도를 들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당신의 속도'를 이해받는 존중입니다.
함께 보폭을 맞추어 걸어주는 다정함은
어떠한 화려한 기술보다도 그들의 겨울을 녹이고
봄을 움트게 하는 용기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