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가 주는 위안
겨울을 나는 이들에게는 환경적,
그리고 심리적인 안전이 필수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오랜 시간 고립을 경험하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차단되었던 이들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세상 어디에도 완벽한 안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요.
다만 당장 겨울에 휘몰아치는 고통의 감정에 기울어진 마음의 무게를 봄으로 데려가기 위해서는 온기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감정이 '나는 안전하다'는 느낌을 간직하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 '회복탄력성'을 싹 틔울 수 있게 됩니다.
혹독한 겨울에 있는 이들에게는
통제되지 않는 관계와 환경의 자극이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동반하기도 합니다.
그런 그들이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는 순간을 저는 보았습니다.
바로 같은 상처를 지닌 사람들이 모인 공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탁을 하고 싶습니다.
아플 만큼 아프고,
이제 온전히 바닥을 쳐서 더는 내려갈 곳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면 충분히 그런 시간을 나에게 허락했다면 이제는 나와 같은 상처를 지닌 이들의 용기가 모인 공간으로
잠시 바람을 쐬러 나오라고요.
무겁지 않게 산책하듯이,
무엇을 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잠시 그 공간에 머물다가 가라고요.
내 방, 내 집의 문을 열고 나오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지만
당신의 손이 문을 열고 그 발이 걸음을 따라 나온다면 자연스레 마음도 문을 열고 밖으로 이끌리게 되니까요.
'나만 아픈 게 아니라, 나도 아팠구나'라는 사실은
생각보다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그 위로는
다시 내가 나를 안아주고
다시 내가 나를 사랑해도 되는
다시 내가 나를 믿어줄 수 있는
어둠 속에 있던 내면에 스위치 ON이 되어 줍니다.
'나만 아팠구나' 생각되면 루저가 되었다는 상념에 빠지게 되지만
'나도 아팠구나' 생각되면 내 아픔이 '그럴 수도 있지'라며 안전한 마음이 듭니다.
겨울의 문은 잠금장치가 안에 있기에 외부에서는 열 수가 없습니다.
밖에서 억지로 열려하면 오히려 더 굳게 닫히는 법이지요.
그러니 안에서 문을 열어 주지 않으면,
안에 있는 이도 밖으로 나올 수 없고
밖에 있는 이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어느 날 문득,
문을 열고 싶은 마음이 드는 날이 있거든,
스스로 한 번쯤 겨울의 문을 열고 나와
'나도 아팠구나'라는 사실을 만나러 오기를 조심스레 청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