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겨울이었습니다.
"코치님,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때 장애 극복 사례를 어떻게 써야 할까요?"
장애 학생 대상 첫 취업 특강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학생에게 이 질문을 받고 바로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장애를 극복한다?'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장애 학생을 대상으로 강의하거나 코칭할 때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질문이었기 때문입니다.
"왜 장애 극복 사례를 작성해야 하나요?"
오히려 학생이 더 놀라는 표정입니다.
"저희는 취업할 때 필수로 작성해야 해요."
학생은 그런 것도 모르고 특강을 왔느냐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장애 학생 대상 특강은 처음이었지만, 취업 특강을 한 지는 3년 차였고, 사회복지사로 현장에서 10년을 근무했으면서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라 매우 당혹스러웠습니다.
학생의 이야기에도 장애 극복 사례를 작성해야 한다는 요구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비장애 학생들은 지원하는 직무에 어떤 역량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는데,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일의 역량보다 장애를 극복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그 이야기를 작성하라고 하니 기가 막혔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생들에게 "우리는 일을 하러 가는 것이니, 일을 잘할 수 있는 나의 능력을 더 보여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며 강점을 먼저 찾는 활동을 제안하고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이후로도 학생들에게 꾸준히 장애가 아닌, 내가 가진 일에 대한 지식, 능력, 태도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해 보자고 거듭 강조하곤 했습니다.
과거를 돌아보면 그 당시 제 교육은 엉터리였던 것 같습니다. 직무 강점을 찾는 교육은 선택할 직무가 있어야 효용이 있는 교육인데 제 교육은 현실을 반영할 수 없었으니까요.
저시력장애를 가진 여학생은 전공 서적을 통으로 외울 정도로 학업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취업이 가능한 직무는 매우 제한적이었지요. 장애인고용정책의 일환으로 안마사가 있었고 교정사 그리고 전화로 하는 고객 상담원 정도였습니다. 답답한 현실에 교육을 마치고 돌아올 때면 허탈감에 젖어 있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래도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우리 학생들이 장애가 아닌 역량으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작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 성장을 함께 이루어 나가고 싶었습니다. 물론 이런 제 꿈에 손뼉을 쳐주거나 그다지 관심을 가지는 이는 없었습니다. 외로웠지만 장애학생들의 취업을 전문적으로 돕는 코치가 되는 일은 포기하지 않기로 스스로 다짐을 했습니다. 저 같은 사람도 세상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애학생들의 취업을 돕는 컨설턴트나 코치가 전무하던 때였으니까요. (제가 1호는 아닙니다.) 당장에 현실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 일은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진정성 있는 마음에도 취업이 가능한 영역을 학생들에게 교육할 때면 저도 모르게 의기소침해졌습니다. 학생들이 지원할 수 있는 취업처가 손가락 10개를 넘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제 마음 안에는 좀 더 나은 세상이 올 것이라는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었기에, 어려워도 버티고 견디어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도대체 왜 장애 극복 사례를 요구했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제 생각을 좀 정리해 보았습니다.
1. 비장애인 중심적 사고를 가지고 사회 시스템 안에 장애인 취업 준비생을 끼워 맞추고자 한 것임.
2. '정상' 범주로의 편입 강요: 사회가 '정상'의 범주를 만들어 놓고, 장애를 극복해야 비로소 업무 수행이 가능한 '정상의 범주'에 도달했다고 평가하고자 함.
1960년대 북유럽(덴마크, 스웨덴)에서 시작된 장애인 복지 이념인 정상화 원리도 비장애인 중심적으로 장애인에게도 그들의 생활방식을 맞추도록 유도했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3. 장애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 장애를 개인의 부족함이나 문제로 바라보고, "네가 가진 부족함을 개선하고 극복하여 업무에 적응할 수 있는지"를 스스로 입증하도록 함.
4. 직무 적합성 판단 기준 부재: 무엇보다 기업들이 장애인 채용에 있어 직무 적합성을 판단할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할 생각을 하지 않았고, 대신 극복 의지라는 모호한 잣대로 지원자를 평가하려 한 것.
이런 이유들로 장애 학생들에게 장애 극복 사례를 요구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시소의 중심축은 한결같이 비장애인의 방향으로 치우쳐 있었습니다. 시소가 잃은 균형에 흔들리는 건 언제나 장애인이었습니다. 몸도 마음도 균형이 깨지면 붕괴가 일어납니다. 세상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2017년 서울 강서구 서진학교 설립 당시, 장애 학생 부모들은 주민들의 반대에 맞서 무릎을 꿇고 학교 설립을 간절히 호소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서울 성동구에 성진학교 설립을 추진하는 중 '무릎 호소'가 되풀이되었습니다. "명품 동네엔 명품 학교"를 외치는 지역 이기주의(님비 현상)로 인해 장애 학생들의 교육권이 가로막혀, 학부모들은 다시 서울시의회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학교 개교를 요청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성진학교는 2029년에 문을 열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교육을 받을 권리는 모든 국민에게 있다는 대한민국에서 장애인도 열외의 대상일 수는 없습니다. 지금껏 기울어져 있던 시소가 언제쯤이면 좀 더 균형을 갖출 수 있을까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PD)에 따른 장애인의 정의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제2조에서는 장애인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장애인은 다양한 장벽과의 상호 작용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과 동등한 완전하고 효과적인 사회 참여를 저해하는 장기간의 신체적, 정신적, 지적, 또는 감각적인 손상을 가진 사람을 포함한다."
(Persons with disabilities include those who have long-term physical, mental, intellectual or sensory impairments which in interaction with various barriers may hinder their full and effective participation in society on an equal basis with others.)
한국 「장애인복지법」 상 장애인의 정의
「장애인복지법」 제2조(장애인의 정의 등) 제1항에 장애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이란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를 말한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의 정의와 한국의 장애인복지법상의 장애인의 정의에 있어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느껴지시나요?
유엔(UN)과 한국의 장애인 정의는 여러 부분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장애 발생 책임에 대한 관점입니다. 한국은 오랫동안 장애를 개인의 문제로 보는 경향이 강했던 반면, 유엔은 그 책임을 사회 환경에 두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나라가 처음부터 장애의 책임을 유엔처럼 사회 환경에 두었다면, 취업 현장에서 오랜 기간 '장애 극복 사례'를 요구하는 차별적인 태도는 나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디어 8년의 시간이 흐른 2025년 현재는 이러한 '장애 극복 사례' 요구가 차별적이며 부적절하다는 비판적인 시각이 지배적인 세상이 되었습니다. 특히, 2023년 12월 대법원 판결(대법원 2023. 12. 28. 선고 2023두 50127 판결 등)은 채용 면접에서 직무와 무관한 장애에 관한 질문을 하는 것을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에서 금지하는 차별행위로 명시하며 중요한 법적 기준을 확립했습니다.
이 판결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장애인 채용이 더 이상 장애 극복 서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직무 역량에 초점을 맞추고 장애를 가진 직원들이 정당한 편의 제공을 통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사회적·법적 기준을 세운 중요한 계기가 된 것입니다.
물론 여전히 변화를 따라오지 못하는 영역이 사회에 존재하며, 변화조차 되지 않은 부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더디더라도 저는 희망을 가져보고 싶습니다. 8년 전의 취업 교육 내용과 지금의 교육 내용이 사실에 근거하여 많은 부분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어떤 부분이 달라졌는지는 앞으로도 자세히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학생들에게 '장애 극복 사례'가 아니라 '너의 직무 강점을 찾는 것'에 초점을 두자고 제안하지 않아도 될 만큼, 학생들은 스스로 자신의 역량을 향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채용의 문화가 그렇게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속으로 그리고 염원하던 현실의 문이 조금씩이지만 열리고 있습니다.
중증장애학생들을 위한 직무개발을 이루어 가는 것도 저희에게 남겨진 과제이지만, 바뀌지 않을 것 같은 세상의 작은 변화들이 모여 장애인 취업에 변곡점을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여전히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는 장애 학생들입니다. 저의 글들이 그들에게도 닿아, 언제고 세상 문을 여는 용기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