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순이의 큰딸 지연이는
어린 시절부터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곧잘 들었습니다.
지연이는 옥순이에게 딸이자 친구였죠.
어렸지만 듣는 것으로는 이미
프로 경청러였습니다.
엄마의 마음을 어찌나 잘 이해하는지,
지연이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옥순이의 굳건한 찐편이었습니다.
옥순이는 스물두 살에 엄마를 떠나보냈습니다.
간암으로 투병하다 먼저 간 엄마를 생각하면
지금도 목이 메어옵니다.
엄마의 기일이 다가오자 그리움이 사무칩니다.
사는 날 동안에는 언제나 그렇겠지만,
엄마를 잃은 아픔의 크기는
세월이 지나도 작아지지 않는 듯합니다.
학교에 다녀온 지연이를 앉혀 놓고
간식을 준비합니다.
지연이는 그 동그란 눈으로
엄마를 사랑스럽게 바라봅니다.
"지연아, 할머니 기일이 다가오니까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
엄마의 이 한마디에
지연이 눈에는 벌써 눈물이 그렁그렁합니다.
옥순이는 종종 어린 지연이에게
자신이 살아온 인생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습니다.
"엄마가 말이야, 할아버지한테 그랬거든.
자식들은 줄줄이 낳아 놓고
공부하고 싶다는 자식 말은 들어주지도 않는
아버지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그랬더니 할아버지가 잔뜩 화가 나서 때리겠다고
부지깽이를 들고 쫓아오시는데,
엄마가 그때 얼마나 열심히 뛰었는지 몰라.
나는 그때 맞을 만한 말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거든."
지연이는 할아버지가 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가 그 말을 했을 때가
지금의 자기 나이쯤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어린 아이를 때릴 때가 어디 있나 싶습니다.
옥순이는 말을 이어갑니다.
"그래서 엄마가 말이야,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
서울에 가서 돈을 벌고,
할아버지가 시켜주지 않는 공부를
엄마 스스로 해야겠다고."
옥순이 위로 언니 둘과 오빠가 하나 있었는데,
그들은 이미 집을 떠난 지 몇 해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옥순이는 단단히 마음을 먹고 몇 년에 걸쳐
서울로 갈 채비를 해 두었습니다.
그렇게 엄마 몰래 싸 둔 짐을
어깨에 메고 조심스럽게 도망치듯 나왔다가,
집에 붙들려 오기를 세 번.
옥순이의 엄마,
그러니까 지연이의 외할머니는
옥순이만큼은 오랜 시간 곁에 두고 싶어 했습니다.
제 마음 같던 유일한 딸이었으니까요.
새벽 밭일을 가는 엄마가 힘들까 봐,
열 살도 안 된 옥순이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솥에 밥을 해 두곤 했습니다.
밤이 되면 안 아픈 곳이 없던
엄마의 어깨와 손, 발, 다리를 주물러 주던
하나밖에 없는 딸이었습니다.
가발 장수에게 팔려고 모아 둔
엄마의 머리카락을
오렌지 맛 막대 아이스크림과
몰래 맞바꾸어 먹는
짓궂은 옥순이었지만,
엄마에 대한 사랑만큼은 자식 중 제일이었지요.
하지만 그렇게 엄마를 사랑하는 옥순이에게도
자신의 삶을 잘 살아내고 싶은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게 엄마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네 번째 시도 끝에
옥순이는 서울 상경에 성공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야무졌던
옥순이는 전봇대에 붙어 있는
동성제약 직원 구인 공고를 확인하고,
전화번호를 떼어 공중전화기로 달려갔습니다.
당시에는 인신매매도 성행했던 시기라
정말 조심해야 했습니다.
"거기 동성제약이죠?
직원 구인 공고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야물었던 옥순이는 주변의 혹하는 소리에
뒤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안전한 일자리를 먼저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면접을 보러 동성제약에 도착합니다.
단번에 면접을 통과한 옥순이는
회사에서 제공하는 기숙사로 들어가
일을 시작했습니다.
옥순이는 그렇게 돈을 차곡차곡 저축하고
마침내 적금을 타게 됩니다.
.
.
.
기쁨도 잠시,
회사로 다급하게 걸려온 전화 수화기 너머로
기력이 전부 빠져버린 엄마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옥순아, 엄마가 많이 아프다.
나 좀 병원에 데려가 다오."
잔병치레는 늘 있는 엄마였지만,
느낌이 정말 좋지 않아
옥순이는 그 길로 휴가를 내어
엄마가 있는 용산동으로 달려갔습니다.
문 앞에 간신히 쓰러질 듯 앉아있는 엄마가
아주 힘들게 옥순이를 향해
내게로 와 달라고 손짓을 합니다.
엄마의 이런 모습은 옥순이도 처음이라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오려 했지만
빨리 모시고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마음에
꾹 눌러 참아냅니다.
그 길로 바로 서울로 모시고 와 검사를 받았는데,
간암 말기라고 합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옥순이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
결혼한 큰언니에게 연락을 하고,
마포에 있는 언니 집으로 가기로 합니다.
옥순이는 아픈 엄마를 위해
난생처음 택시라는 것을 탔습니다.
엄마는 옥순이의 전부였습니다.
옥순이가 서울에 와 돈을 벌고 공부를 해서
성장하고 싶었던 건
엄마를 좀 더 행복하게 해 주고 싶다는
마음에서였습니다.
그날 엄마의 얼굴은 볼 수 없을 정도로
새카맣게 변색되어 있었습니다.
옥순이는 그런 엄마의 얼굴을 어루만졌습니다.
옥순이의 마음도 엄마의 얼굴처럼
새카맣게 타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옥순이는
자신의 세상이 무너지고 있음을 직감했습니다.
옥순이와 엄마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마포에 도착하기까지 서럽게 울었습니다.
그런 모녀를 바라보던 택시 기사가 묻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길래 그렇게 서럽게 우세요?"
옥순이와 엄마는 택시 기사의 말에도
대답을 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슬픔에 젖어 있었습니다.
큰 형부와 언니는 바로 엄마를 병원에 입원시켜
더 자세한 검사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서는 마지막을 준비하라고 했지만
엄마를 그대로 보낼 수 없던
옥순이와 형제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안 먹고 안 사 입고 그렇게 악착같이
모았던 옥순이의 첫 적금은
엄마의 병원비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옥순이는 그 돈을 드리며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적금을 타
엄마의 치료비로 쓸 수 있는 돈이
자신에게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옥순이는 두 손을 모아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우리 엄마 좀 살려 주세요."
.
.
.
그러나 옥순이의 간절한 바람에도
병원에 입원한 그 해 ,
엄마는
옥순이에게 긴 이별을 고하고
떠나게 되었습니다.
내 엄마로 와줘서 고마웠어요.
엄마,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