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신발과 검정고무신]

by 겨울나기 이코치

엄마가 남기고 간

허름하고 작은 신발 한 켤레



옥순이는 엄마를 떠나보내며

남겨진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허름하고 작은 신발 한 켤레를 보았습니다.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기 전

신고 계시던 신발이었습니다.

옥순이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엄마 발이 이렇게 작았나?

새 신 한 켤레 사 드릴 걸.'


엄마를 떠나보내고 나니

아쉬운 것 투성입니다.


그렇게 엄마의 신발을 한참 바라보다

어린 시절의 기억 저편으로

잠시 말을 건넵니다.



하얀 운동화


어린 옥순이가 보입니다.

옥순이는 커다란 돌덩이 위에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돌의 거친 부분이

어디인지를 더듬거립니다.

"아! 여기다."

옥순이는 신이 나

신고 있던 오른쪽 고무신을 벗습니다.


그리고 고무신을 돌덩이의

거친 부분에 마구 문대기 시작합니다.

"고무신에 구멍이 나게 해 주세요"

기도문을 읽듯

간절한 마음으로 중얼거립니다.


얼마 전

동네에 장돌뱅이 아저씨가 왔습니다.


일주일에 두어 번은

마을에 들어와 장사를 합니다.

그런데

바로 어제

옥순이는 보게 되었습니다.


옥구슬 같은 때깔의 하얀 운동화를 말입니다.


'저거 한 번만 신어보면 소원이 없겠다'

싶었습니다.


옥순이의 마음이 이렇게

간절해진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단 한 켤레뿐인 그 운동화를

사 간 사람이 부잣집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제 집 앞 길로는 다니지 말라며

심술을 부려 옥순이를 복수의 화신으로

만들었던 그 친구 말입니다.


옥순이는 그 길로

엄마에게 달려갔습니다.

엄마는 막 남의 집 밭에서 품을 팔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엄마~~ 엄마~~"


집 앞으로 가는 엄마를 본 옥순이는

큰 소리로 엄마를 불러봅니다.

밭일에 피곤이 서렸지만

옥순이의 엄마는 딸에게

자상한 미소를 지어줍니다.


"우리 딸, 옥순이~

왜 그렇게 엄마를 불러?"


"엄마, 엄마 나 소원이 있어.

이번 딱 한 번만 내 소원 들어주라."


사실 옥순이는 평소 엄마에게

무언가를 해 달라고 조르는 딸이 아니었기에

엄마는 옥순이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소원이 뭔데 그래?"


"말하면 들어줄 거야?

아니, 아니 꼭 들어줘야 해."


"그러니까 소원이 뭔데 그래?"


"응, 엄마 장돌뱅이 아저씨가 말이야.

진짜 옥처럼 뽀얀 운동화를 팔더라고.

나 그 운동화 꼭 한번 신어보고 싶어."


엄마는 한숨이 나옵니다.


"옥순아, 엄마도 옥순이가

이렇게 소원이라는데 사주고 싶지.

그런데 언니들이랑 오빠가

서울로 다 떠나고 돈이 없어."


돈이 없다는 말에 옥순이는 뿔이 납니다.


"엄마가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처음으로, 내가 이렇게 처음으로

소원이라고 하는데!"


그리고는 획 토라져 밖으로 나가버립니다.

옥순이는 짚가리 속으로 몰래 숨어들고는

씩씩거리다 잠이 듭니다.


좀 마음이 풀리면 옥순이가

들어오려나 싶었지만,

밤이 깊도록 보이 지를 않습니다.


걱정이 된 옥순이 엄마는 여기저기

"옥순아~" 하고 이름을 부르며 찾아보지만

어디에서도 옥순이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밤새 문 앞에 앉아

엄마는 뜬 눈으로 옥순이를 기다려봅니다.


동이 트고 닭이 울어도

옥순이가 보이지 않아

어머니는 걱정이 태산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뒤

볏짚이 여기저기 뒤섞여

엉망이 된 머리를 긁적거리며

옥순이가 들어옵니다.


토라진 옥순이는

엄마의 걱정 어린 눈에도

고개를 휙 돌리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이 지났지만,

학교를 다녀오는 길에도

옥순이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하얀 운동화에

대한 생각뿐이었습니다.


'한다면 한다'는 성격이

이렇게 어릴 때부터

작동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옥순이는 물이 흐르는 냇가로

걸음을 향합니다.


그곳에 가면 커다란 돌덩이들이

여기저기 있으니까요.


꽤 거칠어 보이는 돌덩이를 바라보며

"너로 정했어"라고 합니다.

옥순이는 있는 힘껏

고무신을 문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목적대로 드디어 고무신에

구멍을 내고 맙니다.


"해냈다!"


한껏 즐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향한

옥순이는 엄마에게 구멍 난 고무신을 보여줍니다.

"나 고무신에 구멍 나서 못 신어."


엄마는 옥순이의 말과 행동에

피식 웃음이 나옵니다.


멀쩡하던 고무신의 밑창에

'뻥'하고 구멍이 났으니

엄마가 옥순이의 의도를 모를 리가

없었겠지요.


"옥순아, 이리 와 봐."


"아니 엄마,

나 고무신에 구멍 났다고,

못 신는다니까!"


볼멘 목소리로

엄마의 뒤꽁무니를 쫓아갑니다.


"짠~"


옥순이 엄마의 손에는

옥순이가 그렇게 바라던

하얀 운동화가 들려 있습니다.


"엄마, 돈 없다며?"


"엄마가 그동안 가발장수 아저씨 오면

팔려고 모아둔 머리카락 뭉치가

제법 양이되더라. 그거 팔았지."


옥순이는 팔짝팔짝 뛰기 시작합니다.


"아~~ 엄마 고마워요, 고마워요."


평소 하지도 않던 존댓말에

고개는 90도로 숙이며

연신 인사를 합니다.


옥순이가 저리도 행복한 얼굴을 보여주니

엄마는 돈이 아깝지가 않습니다.

있다면야 원하는 무엇이든 해주고 싶은 게

엄마마음인 게지요.

.

.

.

이제 그렇게 다정했던 엄마는

옥순이의 기억 속에 살아갑니다.


어머니의 신발을 바라보던

옥순이는

후회와 서러움에 목이 멥니다.


왜 그렇게 악착같이

돈 만 벌었을까 싶습니다.


'엄마는 곱게 모아둔 머리카락을 팔아

내 하얀 운동화를 사주셨는데,

나는 엄마 신 한 켤레도 못 신겨 드리고

이렇게 보내드리는구나.'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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