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욕탕에서의 흥정 ]

바나나 우유 정도는 돼야~

by 겨울나기 이코치

목욕탕과 바나나 우유



성학이와 옥순이는 어려움 중에도 바지런히 돈을 모아 드디어 내 집 마련에 성공했습니다.

그렇게 아등바등 애를 썼던 건 성학이와 옥순이에게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프리만큼 사랑하는 9살 지연이, 7살 지혜 두 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오고 어린 두 딸은 각자의 방이 생겼다며 방방 뛰며 그렇게 좋아했습니다. 옥순이는 그간의 고생스러운 시간들이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 뒤편으로 흐려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집으로 오는 길목, 가고파 슈퍼 옆에는 작은 목욕탕이 하나 있었습니다.

옥순이는 두 딸에게 따순 물이 펑펑 나오는 목욕탕에 데리고 가 때를 푸욱 불리고는

깨끗한 새집마냥 아이들도 새것처럼 반질반질하게 씻기고 싶었습니다.


지연이와 지혜는 그 귀한 요구르트를 사준다는 엄마의 말만 듣고 양 쪽에 한쪽씩 엄마의 손을 맞잡고는 토끼뜀으로 목욕탕으로 향합니다. 지연이와 지혜는 태어나 처음으로 목욕탕이라는 곳을 가게 된 것입니다.

여탕의 문을 열고 들어선 지연이와 지혜는 놀란 토끼 눈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가족도 아닌 사람들이 옷을 훌렁훌렁 벗고 돌아다니는 모습이 어린 눈에도 몹시 부끄러웠던 것이지요.

"얼른 벗어." 옥순이는 마음이 급합니다.

본인뿐 아니라 두 딸의 때를 밀어야하기에 두 딸을 얼른 온탕에 담가야 했습니다.

오래 담가둔 만큼 때도 잘 밀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첫 째 지연이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나는 속았다. 이 부끄러움의 값은 요구르트로 될 일이 아니다.'

옥순이는 우두커니 서서 멍을 때리는 지연이가 못마땅합니다. "뭐 해? 얼른 벗으라니까."

더 버티다가는 등짝 스매싱을 당할 수 있음을 알기에 잔뜩 찌푸린 얼굴로 나무늘보마냥 윗 옷부터 스멀스멀 벗습니다. 둘째 지혜는 언니보다 제법 눈치가 빠릅니다. 언니를 따라 우두커니 서 있다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자 재빠르게 후다닥 옷을 벗습니다.


그렇게 옥순이와 두 딸은 온탕에 몸을 푸욱 담급니다.

찌푸리던 지연이와 지혜도 따뜻한 물의 온기에 한 껏 긴장이 풀어지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부끄러움도 이내 따순 물속에 녹아든 모양인지 지연이와 지혜는 바가지를 물 위에 띄우기도 하고 어푸어푸 물놀이 시늉도 합니다. 두 딸은 신이 났습니다. 옥순이의 입가에도 옅은 미소가 번집니다.


그렇게 즐겁게 놀던 지연이는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을 곧 맞이하게 됩니다.


"지연이 이리 와." 영문도 모른 채 엄마가 부르니 갑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옥순이는 새신사 아주머니들이 쉬는 틈을 타 손님을 맞이하는 때밀이 침대에 지연이를 눕힙니다.

벌렁 드러누워있는 자기를 목욕탕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만 같아 지연이는 눈조차 뜰 수가 없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얼굴이 불덩이가 되는 것 같습니다. 때를 밀다 말고 결국 엉엉 울게 되었습니다.

옥순이는 우는 지연이를 보며 영문을 몰라 당황스럽습니다.

"아니 얘가 갑자기 왜 울어? 왜~그래?"

지연이는 부끄러워 목소리도 나오지 않고 눈물만 납니다.

하도 울어대니 하는 수 없이 침대에서 지연이를 내려 한쪽 자리로 데리고 갑니다.

"왜 그래?"하고 엄마 옥순이가 묻자 지연이는 그제야 울음을 조금 다스리고 목이 멘 상태로 이야기합니다.

"엄마, 이건 아닌 거 같아요, 진짜 나 너무 부끄러워요. 이건 진짜 아닌 거 같아요." 평소 순둥한 지연이지만 한 번 고집을 부리면 꺽지 않는 것을 알기에 옥순이도 그만 포기하고 자리에서 때를 밀기 시작합니다.


한바탕 언니의 울음 소동 덕분에 동생 지혜는 때밀이 침대에 올라가지 않아도 되는 혜택이 주어졌지만, 정작 본인은 물놀이에 빠져 쟤 언니가 운지도 모르고 신이 나 있습니다.


그렇게 때를 밀고 옥순이와 두 딸은 깨끗한 새몸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습니다.


옷을 다 입은 지연이는 엄마를 흘긴 눈으로 바라봅니다.

옥순이는 왠지 불안해집니다.

지연이는 오늘 때밀이 침대 건은 흥정하기에 충분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엄마, 나는 오늘 요구르트로는 안 되겠어요. 그리고 앞으로 때밀이 침대에 또 올라가라고 하면 절대 목욕탕에 오지 않을 거예요." 온 힘을 다해 두 딸의 때를 밀고 나온 터라 옥순이는 기진맥진합니다. 지혜는 가만히 언니와 엄마의 대화를 살핍니다. 건성으로 "알았어."하고 대답하니 지연이는 그치지 않고 말을 이어갑니다. "나는 오늘 요구르트로는 안 돼요. 배뚱땡이 바나나 우유 사주세요." 언니의 요구에 지혜는 입꼬리가 귀를 잡으로 갑니다. 말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지혜의 표정은 "아싸라비아 콜롬비아"입니다.

옥순이는 딸 지연이와 밀땅을 할 기력이 없어 오늘은 져주기로 합니다.


그렇게 옥순이는 두 딸 지연이, 지혜와 함께 바나나 우유에 빨대를 꽂아 물어봅니다. 혀끝에 닿은 바나나 우유 맛은 꿀맛을 넘어 천상의 맛을 느끼게 해 줍니다.


그렇게 아까 목욕탕에 오던 것 마냥 양 쪽에 한쪽씩 엄마의 손을 맞잡은 지연이와 지혜는 새 집을 향해 토끼뜀을 뜁니다.


옥순이는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의 행복한 모습에서 바나나 우유의 달큼한 향이 난다고요.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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