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카에 실린 싱싱한 과일과 채소들,
무화과의 달큼한 향이 성학이의 코끝을 휘저었습니다.
성학이가 처음으로 세상 구경을 한 곳은 두 고개를 넘어 이웃 마을에서 열리는 오일장이었습니다.
어느 날부터는 "뻥이요." 하는 우렁찬 아저씨의 목소리를 듣고 나면 정말 귀청이 떨어질 듯한 "뻥~"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런데 정말 환상적인 것은 바로 뻥 소리와 함께 불에 튀겨진 튀밥의 고소한 향이었습니다.
'한 번만 먹어보면 소원이 없겠다.'
그렇게 성학이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 몰래 뒤를 졸졸 따라가기를 여러 번.
환상적인 첫 경험을 했더랬습니다.
얼마 뒤면 성학이가 제일 좋아하는 오일장이 열리는 날입니다.
마을 아이들은 오일장을 혼자 몰래 다녀온 성학이의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듣고 있습니다.
"오일장 가고 싶은 넘들은 여기에 붙어!" 성학이가 엄지손가락을 내밀자
이야기를 듣던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성학이의 엄지손가락을 잡으려고 달려듭니다.
그런데 저만치서 사촌에게 까불다가 눈총 좀 쏘아주었다고 냅다 일러바친 그 녀석의 쭈뼛쭈뼛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느도 가고 잡은 게지?' 그동안 벼르고 있던 성학이는 드디어 때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고개를 넘어가야 만날 수 있는 오일장이라 고봉리 마을 아이들 중 성학이 없이 갈 수 있는 아이는 없었습니다. 고봉리에서 오일장을 가는 길을 아는 건 성학이뿐이었으니까요.
어린 성학이는 남들은 겁이 나서 가지 못하는 길을 뚫는 불도저 같은 깡이 있었지요.
성학이는 큰 목소리로 "느도 가고 잡냐?" 하고 녀석에게 물었습니다.
저만치 쭈뼛거리던 녀석이 잽싸게 달려와 성학이의 엄지손가락을 잡습니다.
"니는 갈라믄 조건이라는 게 있응께 쪼까 있다 나 좀 보자잉~"
엄지손가락을 잡은 녀석들 중 데리고 갔다가 부모님께 벼락 맞을 놈들은 추려내야 했습니다.
그렇게 성학이 자신을 포함하여 다섯 명의 아이들은 오일장을 가기 위해 두 고개를 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성학이를 일러바쳤던 녀석은 성학이와 잠시 후 둘만의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성학이는 이야기했습니다.
"니는 말이여, 일러바친 괘씸죄를 지서부렀어야. 그란께 장에 따러 가고 잡으믄, 요번 학기 내내 아침마다 우리 집으로 와서 내 가방을 들어 가져가. 그라믄 델꼬 가 줄 것이여. 근디 말이제, 이번에도 또 일러바치고 그런 야비한 짓을 혔다간 내도 안 참어야, 니 내 불주먹 알제?"
이야기를 듣던 녀석은 울상이 되어 있었지만 오일장을 보러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라 성학이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알았응께, 요번 오일장에 꼭 나 델꼬 가야 써잉!"
성학이는 억울했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기다리던 오일장에 가는 날이 되었습니다.
함께 가기로 한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해가 져서 길을 잃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똘똘한 성학이는 아이들에게 일찍 채비를 해야 한다고 일렀습니다.
이럴 때만큼은 단합이 잘 되는 고봉리 아이들입니다.
성학이는 오늘 유독 설레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가족들 누구도 일어나지 않은,
아직 아득한 새벽녘 성학이는 가만히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마치 새색시가 된 것마냥 깨끔발로 집에서 가장 바깥쪽에 있는 부엌으로 향합니다.
그러고는 엄니의 부뚜막 옆 찬장에 있던 밥그릇 뚜껑을 슬그머니 열었습니다.
그곳에 엄니가 모아 둔 쌈짓돈이 있다는 걸 눈썰미가 좋은 성학이는 알고 있었지요.
"엄니 미안혀유~" 그러고는 엄니의 쌈짓돈 얼마를 슬쩍 훔쳤습니다.
오늘만큼은 그 고소한 튀밥을 꼭 먹겠다는 다짐을 했으니까요.
성학이는 튀밥을 한 주먹 쥐고 입에 넣는 상상만으로도 침이 꼴깍 넘어갔습니다.
대장 성학이와 친구들은 잔뜩 들뜬 걸음으로 당차게 고개를 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