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순이의 못 말리는 학교사랑 ]

by 겨울나기 이코치


"학교가 제일 좋아"


한 시간 남짓 걸어야만 도착할 수 있는 학교였지만,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은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습니다.

글자를 배우는 것도 여간 재미있지 않았습니다.

옥순이는 학교가 그리 신기하고 즐거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매일 학교에만 다닐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 싶었습니다.

옥순이에게 학교는 그토록 소중하고 멋진 곳이었습니다.


그런 지독한 학교 사랑 때문인지,

엄마가 된 옥순이에게는 학교 교육에 대한 남다른 철학이 있었습니다.

'아파도 학교는 가야 하고, 아파도 배워야 한다.'

8살 된 큰딸 지연이가 볼거리에 걸려 단단히 아파도 학교에서 아파야 한다며 등교를 시켰다가,

선생님께 한 소리를 듣고서야 조퇴를 하고 데려갔더랬죠.

(볼거리는 유행성 이하선염이라 불리며 급성 전염이 되는 질병이었거든요.)


여하튼 옥순이는 그렇게 학교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부모님이 밭일을 나가면 막내 동생을 돌볼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위로 두 언니가 있었지만 언니들은 집 안일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시골을 벗어나 꿈의 도시 '서울'로 갈 수 있을까만 고민이었습니다.

결국 여러모로 야무졌던 옥순이에게 막내 동생의 양육이 떠밀렸습니다.

학교에 가야 한다며 밤새 엄마에게 눈물로 호소해 보았지만,

이를 듣던 아버지께 된통 혼만 날 뿐이었습니다.


"여자가 공부는 해서 뭐 하려고?"


날 선 아버지의 말씀에 그만 울음이 꾹 하고 억눌러졌습니다.

서러움에 소리 없이 잠이 든 밤, 귀뚜라미는 나를 대신해 열심히 울어주었습니다.


해가 떴습니다.

옥순이는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학교에는 정말 정말 가고 싶은데, 막내 동생을 어찌해야 하나. '방에 고이 눕혀두고 나가야 하나?'



쌀 한 가마니, 동생


째깍째깍.

집에 있는 하나뿐인 시계의 초침 소리가 다급하게 들렸습니다.

'아아, 이러다 지각인데….' 옥순이는 결심했습니다.

보자기에 교과서와 연필, 그리고 점심으로 먹을 끼니를 챙겨 어깨에 단단히 맸습니다.

그리고는 막내 동생을 등에 업고 포대기로 감쌌습니다.

옥순이는 개선장군처럼 단단한 걸음으로 학교로 향했습니다.

등은 무거웠지만 마음은 날아갈 듯 가벼웠습니다.

그렇게 막내 동생을 업고 한 시간 남짓 땀을 뻘뻘 흘리며 학교로 향했습니다.


정말 다행인 건, 평소 학교 공부를 좋아했던 옥순이의 행실을 잘 알고 계신

선생님 덕분에 막내 동생을 안고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끼니로 싸 간 고구마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짜부라져 있었습니다.

옥순이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고구마를 막내 동생에게 먼저 먹인 후 남은 것을 제 입에 넣고는,

배는 곯아도 학교에 올 수 있는 오늘이 정말 행복한 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가만히 선생님이 부르셨습니다.

"옥순아, 내일은 안 된다." 선생님의 너그러운 미소가 좋았지만,

내일부터 동생 때문에 학교를 나오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에

오늘의 행복이 순식간에 날아가고 말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발이 천근만근이었습니다.

등에 업은 것이 동생이 아니라 무겁고 버거운 쌀 한 가마니 같았습니다.


밭에 나갔다 돌아온 엄마는 두 딸이 보이지 않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방 저 방을 살펴보다 볏짚 문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봅니다.

그 작은 눈이 동그래져서는,

옥순이에게 어딜 다녀온 것이냐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그칩니다.

서러움이 폭발한 옥순이는 바닥에 주저앉아

"나도 학교 가고 싶다고~!" 하며 어제 꾸욱 눌러두었던 눈물 보따리를 풀었습니다.


아버지는 울음소리를 듣자마자 부지깽이를 들고 나왔습니다.

"누가 울어? 맞아야 그칠 것이냐?"


옥순이는 이제 아버지께 맞아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귀뚜라미들을 대신해 옥순이가 울어주는 밤이 되었습니다.

엄마는 급히 다가와 아버지를 말려 방으로 들여보냈습니다.


옥순이의 엄마는 꽤나 고운 마음결을 가진 사람이었지요.

그 먼 거리의 학교를 동생을 업고 다녀온 옥순이의 책임감이 얼마나 무거웠을지 알고 계셨고요.

힘들었을 옥순이의 어깨를 토닥이며 "학교가 그렇게 좋더냐?" 하고 다정하게 물으십니다.

울먹이며 옥순이는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네~" 합니다.

"알았다."

짧은 엄마의 한 마디가 그렇게 부드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떠 보니 저 멀리 막내를 등에 업고

밭일을 하러 가는 엄마의 뒷모습이 보였습니다.

엄마를 너무도 사랑했던 옥순이는

무거워진 엄마의 어깨를 보며 미안해졌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준 멀리 보이는 엄마의 등 뒤로

고마움과 미안함을 가득 담아 인사를 건 냅니다.


"엄마, 학교 잘 다녀오겠습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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