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난 가슴을 채우는 위로의 조각들

by 겨울나기 이코치

구멍난 가슴을 채우는 다정한 사람들


2025년 11월,

장애청년직무교육

마지막 기수였습니다.


첫날 대면으로

청년들과 안전한 관계망을 형성하고 돌아온 터라,

오늘 2차 교육도 학생들이 마음 문을 열고

참여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S강사님이

감정을 주제로 장애 청년들의

마음을 묻기 시작합니다.


참가자들은 단어 시트를 통해

자신의 감정 상태를 찾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중 J의 이야기가 유독 생각 속에

남아 가장 가슴 아릿하게 기억됩니다.

J의 겨울이 너무도 시렸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지금껏 만나 온 청년들 중

가장 걱정스러웠던 이야기를 듣게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J가 선택한 감정 단어는 단 하나,

바로 '끔찍하다'였습니다.


J는 사는 내내 자신의 삶이

끔찍함의 연속이었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자살 충동을

느낀다고 고백했습니다.


비장애인인 두 동생과 본인,

삼 남매 모두가 삶을 정리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아주 자주 나눈다고 하니,

짐작건대 가정환경의 영향도

있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청년이 차마 말하지 않는 부분을

굳이 묻는 것이 실례라는 것을 아는지

누구도 더는 묻지 않았습니다.


회사에 입사해 마케팅 직무를 맡았지만,

다른 부서에서는 본인을

'마케팅 팀 직원'이 아닌

'장애인 직원'이라 불렀답니다.


성과를 내면 "장애인이 어떻게

이렇게 성과를 냈느냐" 하고,

성과가 나지 않을 때는

"장애인이라 장애 때문에

성과를 못 내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면전에

대고 했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소소한 담소 중에도

자신의 장애를 묻고,

사실과는 전혀 다른 장애인들에 대한

추측과 편견으로 난무하는 이야기 속에서

J는 괴로웠다고 합니다.


'왜 나는 한 사람이 아닌,

번번이 장애로 평가를 받고

존중을 받지 못하는가'라는

고통의 자리에 머물다,

결국 환경을 바꾸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이직을 결심하게 됩니다.


회복을 원했던 간절한 마음으로

다음 직장을 향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상사의 성희롱으로

또다시 괴로움은 극에 달했습니다.


부당함에 용기를 내어 목소리를 내어 보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장애인이 갈 수 있는

일자리가 얼마나 있느냐"며

감사하게 생각하고 다니라는

냉담한 말이 돌아올 뿐이었다고 합니다.


결국 J는 극도의 불안에 시달리다

우울과 공황 장애가 찾아와

지속적인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아픔을 안고 오는 사람들을

11년째 만나고 있지만,

J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시 배우게 됩니다.


어떤 말로 이 깊은 슬픔을 공감할 수 있을까요?

무어라 말해주어야 할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J는 또다시 살아보고자

스스로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리고

'나 외의 다른 장애인들은 어떻게 사는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어

장애 청년 직무 교육을 신청했다고 합니다.


내향적인 J는 자신의 성향을 뚫고

참여자들에게 서로 연락처를 공유하자며

먼저 손을 내밀었습니다.


J는 교육이 진행되는 내내

다른 이들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하며

따스한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삶을 정리하고 싶다는 엄청나게 무거운 충동이

있었지만 J는 고통에만 매몰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묵혀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여기 모인 우리,

서로 격려하고 손잡고 살아보자"라고,

두려움과 아픔 속에서도 먼저 용기 내어

사람들에게 손을 내밉니다.


그런 J의 진심은

다른 참여자들의 마음에도 깊이 닿았습니다.

누구에게도 들려주지 못했던

자신들의 이야기를

과감 없이 꺼내 놓습니다.


저는

어쭙잖은 공감을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서로 이미 충분한 공감과 위로를

공유하고 있었으니까요.


안전하고 단단하게 손을 맞잡는 대화들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어우러집니다.


상처로 구멍 난 우리의 가슴은

사실 약해서 생긴 홈이 아니라,

다른 이의 아픔을 위로하고 공감하게 하는

하늘이 내어준 창이었을지 모릅니다.


구멍이 난 가슴 만이

깊은 곳에 이르게 됩니다.


구멍 난 가슴에

작은 위로의 조각들이

채워지며


세상에는

구멍을 내는 사람만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내 가슴의 구멍을

따스한 온기로 채우는

사람들도 존재함을

알게 하고

깨닫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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