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잘것없는 저의 이야기를 가치 있다, 소중하다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2025년 6월 24일은 K를 처음 만난 날입니다. 1:1 코칭을 진행하며 만나게 된 졸업생이었습니다. 워낙 성실하고 학업 관리를 잘했던 학생이라 학교 측에서 잘 부탁한다며 저에게 코칭을 매칭해 주었습니다.
첫 만남은 사실 그리 유쾌한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저를 경계하는 K의 표정, 질문에도 단답식으로 끝나는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이대로 코칭 진행이 괜찮을지 염려가 되었지만, 어쩌면 학생의 태도가 '나'라는 사람에 대한 반응이 아닐 수 있다는 짐작이 어슴푸레 들었습니다.
'어떤 상황이 K로 하여금 사람을 경계의 대상이 되게 했을까? K에게 내가 모르는 어떤 겨울이 있었을까?' 하는 질문들이 마음속에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첫날은 K의 기본적인 정보만 확인하는 과정으로 생각하고, 앞으로 원하는 취업 방향을 이야기하며 경력직 중증 장애인 경력직 공무원과 공공기관 취업에 대해 안내했습니다.
그런데 순간, K의 표정에서 냉소적인 느낌이 들었습니다. K는 제게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왜요? 왜 장애인은 공무원 아니면 공공기관을 지원해야 하는데요? 왜요?" K의 목소리가 커졌고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공격적으로 느껴지는 질문에 사실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놀라기도 했습니다. 순간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숨을 한번 가다듬고 차분히 물었습니다. "혹시 예전에 공공기관에서 어떤 경험이 있었나요?"라고요. 그래도 다행히 이 질문에 K는 진지하게 답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K는 학교 소개로 공공기관에 아르바이트 형태의 일을 하러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재택근무를 하던 중, 업무 담당 대리님이 일을 잘한다며 현장으로 직접 와서 같이 일해 보자고 제안했답니다. 감사한 마음에 한걸음에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인정을 받았다는 생각에 기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K는 지체 장애로 평소 휠체어를 사용하지만, 기관의 복도가 휠체어가 다니기에 협소해 보행 도구를 활용해 걸음을 걸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모습을 보던 과장님이 자신을 현장으로 불렀던 대리님에게 호통을 치더라던 겁니다.
"저렇게 걷다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할 거예요?"라며 당장 K를 돌려보내라고요. 그 모습을 전부 지켜보던 K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고 합니다. '나로 인해 누군가가 피해를 입고 있다'는 생각과, '내가 여기를 왜 왔지? 내가 문제인가 보다'라는 생각이 순식간에 몰아쳤다고 합니다. 대리님은 K를 보고 어쩔 줄 몰라했고, K는 그 자리에서 인사를 후다닥 건네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날 경험한 수치심은 K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내면의 울렁거림은 멈추질 않았습니다.
K는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온통 얼어붙은 강바닥을 맨발로 걷는 기분이었다며, "다들 나를 보고 살지 말라는 것 같다"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재택근무만 고집하다 답답한 마음에 저를 만나러 왔다고 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청년의 태도가 충분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물론 현재 많은 공공기관이 장애 인식 개선에 힘쓰고 있고, 개선된 문화 속에서 장애인들이 일하기 좋은 일터를 만들어 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 이 기류에 합류하지 못하는 기관과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기에, K가 겪은 현실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얼어붙은 강바닥을 맨발로 거니는 그 발은 또 얼마나 시리고 아렸을까요?
양털 부츠, 어그 부츠(Ugg Boots)라고도 합니다. 주로 호주와 뉴질랜드의 서퍼들이 신으며 오늘날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사실 어그 부츠는 파도타기를 마친 서퍼들이 차가워진 발의 체온을 빠르게 회복하고, 해변의 뜨거운 모래나 찬 기후로부터 발을 보호하기 위해 신었다고 합니다. 양털의 온도 조절 능력은 탁월했고 이제는 여름뿐 아니라 겨울 그리고 사계절 모두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놀라우리만큼 계절마다 스스로를 지키는 방안을 지혜롭게 찾아내며 살아내는 것 같습니다. 시린 강바닥을 맨 발고 거닐고 있는 K에게도 어그 부츠 한 켤레를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좀 더 걸어내는 것에 힘이 되지 않을까 하고요.
다음 코칭을 준비하며 K의 시린 발을 덮는 질문으로 시작해야겠다 싶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삶을 살아낼 수 있었던 나만의 능력은?"이라고 묻자, K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포기하지 않는 끈기"라고 이야기했습니다.
K는 2020년 수능을 치르며 아마 전국에서 가장 오랜 시간 시험을 본 학생 중 한 명일 것이라 이야기했습니다. 밤 8시가 되어서야 수능 시험을 마쳤고, "그 과정이 힘들고 어렵다기보다는 시험을 치르는 자신을 기다려준 선생님들이 힘드셨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라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통 장애인들이 자신의 장애 이외의 다른 장애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생각에, 학교를 다니며 장애학생지원센터에서 적극적으로 활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와 다른 장애를 가진 학생들을 알아가고 이해하고자 노력했다고 합니다.
장애학생지원센터에서 행정복지학과 1학년인 시각장애(전맹) 후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후배는 학교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한소네(점자 정보 단말기) 기기가 없어 수업 참여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더욱이 후배는 대학교에 큰 뜻이 없었고 어머니의 강권적인 제안으로 입학한 터라 적응할 의지 또한 부족했습니다. 학업이 이루어지지 않아 시험을 제대로 치르지 못하는 상황에 좌절감이 깊어졌다고 합니다.
성장하는 동안 늘 부모님에게 의존했던 후배는 대학에 와서 갑작스럽게 자립을 해야 했고, 혼자서 밖을 나가 본 적이 없어 강의실을 찾아가거나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장소를 찾아가는 것도 두려워했습니다. K는 비슷한 경험이 있던 자신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들려주며 후배를 설득했습니다. 이제는 힘들더라도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 적응하고 자립도 해나가 보자고요. K는 후배에게 인생은 부모님이 아닌 '나 자신'이 살아가는 것이므로 자립의 중요성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학교 내 보행 훈련을 도왔습니다. 처음에는 화장실을 혼자 다녀오는 것조차 힘들어했기에, 화장실을 시작으로 앞 건물까지 다녀오는 과정을 하나씩 스스로 해보도록 도우며 노력했습니다. 후배는 K의 휠체어 손잡이를 잡고 교내를 거닐었고, K는 몇 걸음마다 어떤 건물이 있는지 위치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해주어 후배가 교내 필요한 지점들을 인식하도록 도왔습니다.
반복적인 노력 끝에 후배는 지팡이를 들고 홀로 교내를 다니기 시작했고, 2학기부터 부모님께 간곡히 요청해 개인용 한소네를 사용하기로 결정하는 등 스스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후 K는 이미 졸업한 상태였지만, 후배를 위해 일부러 학교를 찾아가 함께 식사를 나누며 안부를 묻고 토닥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실 후배와 함께한 시간은 K 자신에게 더 의미가 있었다고 합니다. 후배를 도왔던 경험은 K가 삶에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살아가는 날 동안 세상을 통째로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내가 살고 있는 작은 세상 안에서 한 사람을 돕는 일로 변화를 이룰 수 있음을 보았다고요.
다른 사람을 돕고 싶다는 의도보다는, 그저 돕는 과정 자체가 K에게는 즐거움이었습니다. 결국, 누군가를 도울 때 느껴지는 긍정적인 존재감. K에게는 가장 소중한 의미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말을 이어가던 K는 한결 자기 자신에 대한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저는 K가 자신의 삶에 소중한 의미들을 꺼내 놓을 수 있도록 마음을 다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2025년 11월, 저는 K에게 장애 청년 직무 교육을 신청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는 연습을 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우리는 교육을 통해 다시 만났습니다.
제가 맡은 마지막 강의시간, K는 제게 따스한 미소를 건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잘것없는 저의 이야기를 가치 있다, 소중하다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K의 말은 제게도 이 일에 대한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따스함이 되었습니다.
K는 직무 교육에 참여하며 다른 장애 청년들과 적극적으로 소통을 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시린 공기로 가득했던 자신의 삶이 다시금 온기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조금씩이지만 다시 밖으로 걸음을 걸어 볼 용기가 채워지고 있다고요.
K는 이제 맨발이 아닙니다. 그녀의 발에는 따뜻한 어그 부츠가 신기어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