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쌀 밥과 올케 언니]

by 겨울나기 이코치

입 짧은 지연이를 위한 칼제비


옥순이의 큰딸 지연이는 입이 짧습니다.

밥을 먹기 싫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사니

옥순이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나마 잘 먹는 음식이 칼제비라,

밀가루 반죽을 밀어

절반은 얇게 칼국수 면으로 만들고,

남은 반죽은 손으로 얇게 뜯어 육수에 넣습니다.


지연이는 밥은 싫어해도

칼국수와 수제비만큼은

콧구멍이 벌렁거릴 정도로

맛있게 먹었습니다.



흰 쌀밥 한 그릇


옥순이는 칼국수를 만들 때면

문득 옛날 생각이 납니다.

옥순이네 집은 논은 없고 밭만 있었습니다.

만만하게 심을 수 있는 것이 밀이라,

옥순이네는 주로 밀과 옥수수를 심어 거두었습니다.

수확기가 되어 밀이 자루 가득 담겨 쌓일 때마다

옥순이는 내심 신경질이 났습니다.

쌀밥은 늘 아버지와 오빠의 몫뿐이었으니까요.


옥순이의 엄마는 마음씨가 넓고 베풀기를 좋아해

밀을 수확하고 나면 온 동네 사람들을 초대해

국수 잔치를 벌이곤 했습니다.


온 마을 사람들을 모셔오고,

박을 긁어 말리고,

국수를 담을 그릇을 만드는 것은

늘 옥순이의 몫이었지요.

옥순이도 마음 좋은 엄마가

싫은 건 아니었습니다.

다만 지겹도록 먹게 되는

국수에 화가 나는 것이었지요.


동네 사람들을 모셔오고 국수를 준비하는

엄마를 가장 잘 돕는 건 옥순이었기에,

아무것도 먹지 않고 토라져 있는

옥순이를 보는 엄마의 마음은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었습니다.


옥순이 엄마는 국수 꼬댕이를 잘라

"이것이라도 구워 먹고 자렴" 하며

옥순이에게 다정하게 건넸습니다.


엄마의 말에 그래도 국수보다는 낫다 싶어

몸을 어렵게 일으켜 아궁이 구멍에

긴 나뭇가지를 꽂은

국수 꼬댕이를 구워봅니다.



국수 꼬댕이는 생각보다

구수한 맛을 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하루 이틀이었지요.

밀을 수확하고 나면 생각보다

긴 시간 동안

삼시 세끼 국수를 먹어야 했습니다.


옥순이는 가만히 생각했습니다.

국수 말고 다른 것을 먹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곰곰이 생각하다

'아!' 하며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다리 하나 건너에

올케 언니네가 이사를 왔는데,


그 집은 논만 있어 밀이 없다는

사실이 생각난 것이지요.

옥순이는 한달음에

올케 언니네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언니를 다급하게 불렀지요.

사실 오빠하고는 대면대면하는 사이였지만,

올케 언니는 오빠와 달리 다정한 사람이었습니다.


"애기 아가씨 웬일이에요?"


"언니, 나 부탁이 있어요.

제가 국수를 끓여다 가져다 드릴게요.

쌀밥이랑 바꾸어 먹으면 안 될까요?"


마음이 비단결 같은 언니는

"아가씨, 저희 집에는 쌀만 있어서

저는 국수가 더 좋아요.

언제든 쌀밥 먹고 싶으면

국수 가지고 오세요"라고 답했습니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집은 옥순이 집보다 살림이

넉넉했던 터라 밀을 사다 국수를 해 먹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지요.


어디까지나 올케 언니의 배려였다는 사실을

키가 다 자란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어찌 되었든 옥순이는

그날부터 국수를 삶으면

엄마 몰래 올케 언니 집으로 쪼르르 달려가

쌀밥과 바꾸어 먹기 시작했습니다.


반찬도 없이

가족들 몰래 숨어 먹는 밥이었지만,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올케 언니가 무극으로

다시 이사를 갈 때까지

옥순이는 그렇게 바라고 원하던 쌀밥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습니다.


언니가 무극으로 이사를 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옥순이는 고마움이 사무쳤습니다.


이제 막 국민학교를 졸업한 옥순이는

그 마음을 전하고 싶어

옥수수를 바리바리 싸 들고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무극의 올케 언니네로 향합니다.


겁이 많던 옥순이었지만

언니에 대한 고마움이

그 겁마저 넘어서게 했던 모양입니다.


찾아온 옥순이를 보고

놀란 올케 언니는

"애기 아가씨,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왔어요"라며 반겨주었고,

옥순이는 제 이름을 닮은

옥수수 한 보따리를

언니의 가슴팍에 안겨주었지요.


언니는 별것도 아닌 옥수수를 귀한 선물이라며

그렇게 환하게 웃어주었습니다.

언니는 그날 뽀얀 쌀밥에

고깃국을 끓여 옥순이를 대접했습니다.

.

.

.


올케 언니와의 재회


어린 손님에게 잘하라는

옛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른이 된 옥순이는 서울에서 살고 있었지만,

언니가 지인의 결혼식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득달같이 결혼식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보고 싶던 올케 언니를 만났습니다.


언니와 옥순이는 두 손을 꼬옥 맞잡았습니다.

비단결처럼 곱던 올케 언니의 얼굴에

세월의 손님인 주름이 찾아왔지만,

옥순이의 눈에는 여전히 곱디고운 언니였습니다.


그날 저녁,

옥순이는 고마운 마음을 담아

올케 언니에게 근사한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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