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간 철수 형]

by 겨울나기 이코치

7남매 중 서울에 상경한 사람은 성학이 하나뿐이었습니다. 성학이의 세상에는 겁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보이는 모든 것들이 흥미로웠고, 두려움보다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도전이 항상 한 발 앞에 있었기에 코를 베어 간다는 서울 상경이 성학이에게는 그다지 겁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성학이었지만 사실 서울 상경이 그리 쉽게 이루어진 일은 아니었습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사촌 형인 철수 형은 섬에서 나고 자랐지만,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시고 작은집으로 와 온갖 일을 돕고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철수 형을 작은집 머슴이라고도 했습니다. 어떤 일이든 군말 없이 하던 성실한 형이었지만 표정은 그리 편안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철수 형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서울 사는 어떤 지인의 도움으로 형은 작은집 머슴살이에서 벗어나게 된 것 같았습니다.


동네에서 알아주는 불주먹 성학이었지만, 위의 형들과 아래 동생들 사이에 낀 자신의 처지가 늘 한탄스러웠습니다. 형들은 형이라고 공부를 가르치고, 동생들은 중간에 낀 형들에게 비비며 공부를 시켜 달라고 조릅니다. 성학이는 누구보다 호기심이 많았던 아이라 배움에도 열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늘 성학이에게 아침 댓바람부터 빌린 돈을 받아오게 하거나, 소를 끌고 산에 가게 하거나 하는 온갖 궂은 집안일들을 시켰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성학이의 일머리를 일찍이 아버지가 아셨던 것이겠지만, 집에서 공부를 시켜주지 않을 바에야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에 맞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늘 마음속에 있었습니다.


이런 성학이의 마음을 헤아려 주던 건 다름 아닌 철수 형이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붙인 형이었기에 갑작스럽게 사라진 형의 부재는 성학이의 가슴에 구멍이 되었습니다.


형의 빈자리에 생긴 가슴의 구멍으로 들어오는 바람들은 서늘했고 성학이는 형이 그리웠습니다. 그렇게 여러 달이 지나갔습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성학이는 산감이 되어 산을 이리저리 돌아보며 소를 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서 익숙했던 그리운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성학아, 성학아~" 고개를 돌려보니 저만치서 그렇게 그리워하던 철수 형이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철수 형은 더는 성학이가 이전의 알던 형이 아니었습니다. 8 대 2의 기름진 가르마에 멋진 깃이 달린 셔츠,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있었습니다.


"아따~~형~" 성학이는 형의 모습에 감탄사만 나왔습니다. "성학아 잘 지냈어?" 마봉리를 떠난 형의 말씨는 너무도 세련되었습니다. "아따, 형아 으째스까이?"


성학이의 눈에 비친 형의 모습은 너무도 멋진 서울 남자였습니다. 형은 서울에서 공수해 온 맛난 과자들을 성학이에게 선물로 건네며 서울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말이 태어나면 제주도로, 사람이 태어나면 서울로' 나도 형처럼 서울로 가야겠다는 마음의 소리가 성학이의 정신세계에 천둥처럼 울렸습니다.


형이 떠난 후 성학이는 오로지 서울에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나 같은 놈을 이 째깐한 마봉리가 담을 수 없다'며 적어도 서울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직은 당장 혼자 서울로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철수 형이 다녀간 후 마봉리에는 이상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성학이보다 두세 살 위인 형들이 집에 소들을 몰래 팔고 서울로 야반도주를 하는 일들이 연달아 발생하며 온 마을에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성학이는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러다 어른들이 야단이면 나도 서울을 못 갈 텐데.


성학이는 마을에서 가장 친한 친구인 천수를 서울로 가자며 꼬드겼습니다. 그리고 장롱에 숨겨둔 어머니의 쌈짓돈을 훔쳐 천수와 함께 목포로 향하는 연락선에 몸을 실었습니다.


일단 목포에 도착하면 천수의 사촌 집을 찾아 하룻밤을 묵고 서울로 가는 차편을 찾아보자고 머리를 맞대어 나름의 방법을 찾았습니다. 목포에 도착한 철 모르는 두십 대 아이들은 서울로 가겠다는 꿈에 젖어 현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두 아이는 목포도 마봉리마냥 저들이 다 아는 길이며 사람일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목포에 도착해 사촌의 집을 찾는 일은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와 같은 격이었습니다.


성학이와 천수는 적잖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낯선 항구 도시를 이리저리 돌다 쫄쫄이 배를 곪고는 선착장에 깔아 둔 나무판자 위에 잠이 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빈대에 물려 여기저기가 울긋불긋했고 가렵기 시작했습니다. 둘은 그제야 알았습니다. 서울 가는 길이 그리 녹록지 않다는 사실을.


그렇게 둘은 풀이 잔뜩 죽어 다시금 해남군 마봉리로 가는 연락선에 몸을 실었습니다. 천수는 그날 하루의 경험이 몹시 고단했는지 "나능 그냥 서울 안 갈라니께, 가고 잡으믄 성학이 너나 가랑께."


하지만 성학이는 천수와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그 좋은 머리를 요리조리 굴리기 시작했습니다. 연락선이 출항하며 바닷물이 갈려 물 위에 길을 냅니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성학이는 자신도 힘차게 길을 만들어 보리라 입을 앙다물고 다짐해 봅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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