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마음인지 조차 모를 만큼

by 겨울나기 이코치

그녀의 사연


인생의 겨울을 겪는 이들에겐 저마다 가슴 아픈 사연이 있습니다. 비단 겨울나기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이의 삶에 사연이 담겨 있을 테지요.


얼마 전, 여자 청년이 제게 긴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과거의 트라우마가 다시금 떠올라 혼란스럽고 힘든 감정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내용이었어요. 코칭 전공자인 저는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이 청년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깊이 고민했습니다. 제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에 솔직히 두렵기도 했습니다.


우선 상담 연계를 돕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하여, 상담소를 운영하는 지인을 통해 전문가를 연결해주려 했습니다. 하지만 청년이 상담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마저도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청년에게 제 솔직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전문 상담사가 아니기에, 겪고 있는 트라우마에 대해 제가 어떤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 깊은 고민이 된다고요. 하지만 청년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 아픔에 공감하는 일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렇게라도 괜찮다면 함께 대화를 나눠보자고요. 청년은 흔쾌히 그러한 대화라도 간절히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저희는 비대면으로 만났습니다. 화면 너머의 청년은 아무 말 없이 그저 눈물만 흘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조용히 물었습니다.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


교차로의 혼잡한 교통 체증처럼 얽히고설킨 혼란스러움.


"정리가 되지 않아 무슨 마음인지 저 자신도 모르겠어요."

청년은 울먹이며 답했습니다.


저는 묵묵히 청년의 눈을 바라보았습니다. 우리는 가까이 있는 듯했지만, 동시에 먼 거리에 있었습니다. 제 눈앞에 청년의 모습은 선명했지만, 눈물 한 방울도 닦아줄 수 없는 거리였으니까요. 그러나 마음의 거리만큼은 청년에게 닿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눈으로, 마음으로 청년의 어깨를 토닥였습니다.


울고 싶을 땐 울어야 살아갈 수 있기에, 괜찮으니 편안하게 울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렇게 20분의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아동학대가 남기는 것


교육을 통해 만났던 청년이라 모든 사연을 알지는 못해도,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는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아빠의 학대로 사고를 당하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자신은 엄마의 '사연팔이'가 되었다는 청년의 이야기 속에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어린아이가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사고 이후 그녀는 장애를 가지게 되었고, 장애 판정을 받은 이후에는 더욱 혹독한 세상의 냉대가 어린 소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 어린 시절만 해도 매를 안 맞고 자라는 아이들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훈육의 문화에 체벌은 말이 필요 없이 당연한 교육의 도구로 자리 잡았습니다.


2015년부터 작년까지 아동의 복지와 인권, 아동학대예방교육을 진행해 왔었습니다. 어린이집 아동들, 초등학생, 부모, 보육교사, 교사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며 공통적으로 했던 질문이 있습니다.


"자라면서 매 한대도 안 맞고 자라신 분 계신가요?"


100여 명이 넘는 교육장에서도 이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하는 분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질문의 엄청난 무게를 알아차리고 살았습니다. 저를 훈육하는 엄마의 시작은 한결같이 질문이었으니까요. 그 질문은 심오했고 어떤 답을 내놓아야 하는지 저로 하여금 깊은 생각에 빠지게 했습니다. 여러분도 들어 본 적이 있는 질문일 수 있습니다.


"몇 대 맞을래?"


이 질문에 "안 맞을래요."라는 답변은 열외입니다. 한 대를 이야기하자니 더 맞을 것 같고, 결국 저는 항상 세 대를 이야기했습니다. 일흔을 바라보시는 저희 엄마는 지금도 수영을 다니십니다. 어깨에 힘은 예나 지금이나 엄청난 분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 매 세대가 저에게 엄청난 위력이 되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으실 겁니다.


그렇게 훈육의 이름으로 매를 맞아야 했지만 맞을 때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보다는 그저 '아프다'와 '빨리 커서 더는 못 때리게 해야지'라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이러한 체벌이 과거에는 훈육의 방법이었을지 모르지만 현재는 신체학대와 정서학대입니다. 체벌은 신체학대로만 규정지을 수 없습니다.


현재 법적으로 아동학대는 정서학대, 신체학대, 성학대, 방임과 유기로 정의합니다. 그러나 어떠한 학대 상황도 하나의 학대로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학대는 늘 중복적이며 복합적으로 일어납니다.


그러니 어린 시절의 학대는 기억 안에서 지워내기가 그리도 어려운지 모르겠습니다. 가장 슬픈 건 어린아이의 그 기억이 "나는 쓸모없는 사람인가, 이런 대우를 받는 것이 당연한 존재인가"라는 평생을 안고 살게 되는 정체성이 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물론 망가진 정체성도 다시 회복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를 예상할 수 없기에 우리 아이들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신체까지 모두 안전하게 지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대 중반이 된 여자 청년의 삶에 불행과 우울은 일상이 되어 있었습니다. 한참을 울고 난 청년은 이제야 조금 말을 하고 싶어 졌는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들려준 불행한 일상과는 달리, 목소리는 참으로 부드럽고 고았습니다.


어쩌면 청년의 깊은 내면에는, 그녀의 목소리처럼 부드럽고 다정한 본연의 모습이 무수히 감추어져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청년은 자신과 같은 장애를 가진 이들을 만나면 그 안에서 안전함을 느끼고 공허한 마음이 채워질 것이라 기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기대와는 달리 공허함은 더욱 짙어질 뿐이었다고요. 짙은 외로움은 깊은 슬픔이 되었습니다.


세상에 자신과 같은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정서적인 고립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물어주고 조금 더 들어보기를


저와의 교육을 마치고 다음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사진 300장을 촬영해 오는 과제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거리에 나가 300장의 다양한 사진을 촬영하는 것은 자신에게 넘을 수 없는 장벽 같았다고요.


사고 이후 다리에 지체 장애를 가지게 되어 이동에 어려움이 있고, 불안과 우울이 심해져 밖에 나가 활동하는 것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공포 그 자체였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담당 강사에게 너무 어려운 과제라고 조심스럽게 의사를 전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강사는 이유도 묻지 않고 그녀의 이야기를 더 들으려 하지 않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더랍니다. "앞선 기수 분들 모두 했던 활동이고 어려운 과제가 아니니 반드시 해 오세요." 단호한 태도에 '이 분은 나의 상황과 입장에는 관심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교육을 수료하기는 힘들겠다는 판단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교육이 진행될수록 마음과 생각은 더욱 엉망이 되어가고 있다고요.


청년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장애 인식 개선이 부족한 강사님의 상황이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과제 수행을 통해 청년의 성장을 돕고자 하는 의도가 있으셨겠지만, 강사님의 말과 태도에는 판단과 평가가 앞섰고, 움츠러들었던 그녀의 마음을 다시금 뒷걸음치게 만드는 대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러한 형태의 상호작용이 단 한 번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청년이 단지 과거의 아픔 때문에 지금의 어려움을 겪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듣고 또 듣다 보니 억지로 공감하려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청년의 마음과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이 이해되었습니다. 진심을 다해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고, "충분히 그럴 수 있었겠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자신이 어떤 마음인지조차 모를 만큼 힘들었는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가 지금 힘들 만한 상황이었구나. 그래서 이런 마음들 속에서 혼란스러웠구나' 하고 인정하게 되고 정리가 되어간다고 청년은 말했습니다.


아프고 힘든 마음의 무게가 전부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조금씩 가벼워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했습니다. 문득문득 올라오는 불안과 우울에 대해 혼자 끙끙 앓지 말고, 그럴 때마다 제게 메일을 쓰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했습니다.


제 인생의 아픈 사연들도 글을 쓰며 위로를 받았었거든요. 청년도 평소 글쓰기를 좋아했던 터라 제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그렇게 해나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혼자 감당하기 힘든 날엔 이렇게 비대면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습니다.


청년에게 트라우마를 해결할 답을 주어야 할 것 같다는 저의 무거움도 오늘의 대화를 통해 한결 가벼워질 수 있었습니다.


그녀가 스스로 답을 찾아낼 힘을 기르기까지, 홀로 있지 않음을, 곁에 머무는 사람이 있음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안녕을 위해 기도하는 한 사람이 있음에 오늘을 살아내는 힘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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