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과 의사소통의 상관성
공단의 소개로 특수교육지원센터가 주최하는 진학 및 취업 강연을 다녀왔습니다. 중·고등 과정 선생님들이 자리를 채워주셨고, 특히 중등 선생님들께서는 공통적으로 "학생들의 성장을 위해 지금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물으셨습니다.
그 질문에 대해 제 답은 언제나 한결같습니다. 바로 ‘의사소통능력’입니다.
발달장애학생들이 대기업 자회사인 장애인 표준사업장이나 근로사업장에 취업할 때 가장 중요한 과정은 면접입니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면접장에는 이런 질문들이 단골처럼 등장했습니다.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할 수 있나요?"
"몸이 아파 출근이 어렵다면 직접 회사로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릴 수 있나요?"
"업무 중 갈등이 생기면 무단이탈하는 대신 상사에게 보고할 수 있나요?"
표준사업장이든 근로사업장이든, 이곳은 엄연한 ‘일의 현장’입니다. 장애 여부와 관계없이 한 사람의 직업인으로서 자기 일을 스스로 감당하는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곳이지요. 위와 같은 질문들이 반복되는 배경에는, 우리 학생들이 의존적인 환경에서 성장해 왔다는 안타까운 현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어른다움의 시작은 자신의 몫을 스스로 감당하는 자립의 모습에서 나타납니다.
사회복지사 시절, 가정 내 케어가 어려워 센터에 입소한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있었습니다. 아이의 어머니는 습관처럼 "우리 아이가 아파서요"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당시 아이는 손으로 밥을 먹고 대변을 가리지 못했으며, 식당 바닥에 대자로 드러눕기 일쑤였습니다. 가족들과 마음 편히 외식 한 번 해보는 것이 소원이라며 눈물짓던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
당시 아이의 진단명은 아스퍼거 증후군(Asperger Syndrome), 즉 오늘날의 '지능이나 언어 지연이 없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였습니다.
여러 날 관찰한 끝에 제가 내린 결론은, '아픈 아이'가 아니라 '학습이 필요한 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근무했던 기관은 식당이 분리되어 있어, 모든 이용인이 정해진 시간에 지정된 자리에서 식사를 해야 했습니다. 먼저 식사 시 수저와 포크를 사용하도록 교육했습니다. 처음에는 수저와 포크를 쥐어주면 집어던지기 일쑤였지요. 저는 허리춤에 수저와 포크가 들어있는 가방을 찼습니다. 아이가 도구를 던질 때마다 새 수저를 꺼내어 사용법을 끈질기게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한 달 남짓 시간이 흐르자 수저와 포크를 더 이상 던지지 않고 식사를 했습니다. 이후 놀랍게도 이틀 만에 젓가락질을 했습니다.
식당 바닥에 대자로 눕는 습관도 나타났습니다. 저는 누워 있는 이호에게 다가가 눈을 맞추며 설명했습니다. "호야, 이곳은 많은 사람이 식사를 하러 오가는 길이야. 이렇게 누워 있다가 누군가에게 밟히면 호야가 많이 아플 거야. 선생님은 그게 가장 걱정돼. 그러니 이제 일어나서 자리에 앉아볼까?" 처음에는 제 목소리가 아이에게 닿지 않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진심을 담아 반복해서 이야기하자, 어느 순간 아이가 제 손을 잡고 일어나 스스로 자신의 자리를 향해 걸어갔습니다. 아직은 어린 탓에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해 자장가를 부르며 아이를 재우곤 했습니다. 이호는 제게 마음의 문을 열어 준 신호로 하교 후 센터로 들어와 제가 있는 것을 보면 중저음의 제 목소리를 흉내 내며 "이지연 호랭이 선생님~"하며 노래를 부르곤 했습니다. 그럼 저는"어흥"하며 화답해 주곤 했었지요.
작은 성공의 경험들이 모여 아이는 일상생활이 가능해졌고, 마침내 성장된 모습으로 센터를 퇴소할 수 있었습니다. 이호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배려보다,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믿음과 반복된 학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호가 고열로 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심하게 저항한다는 어머니의 다급한 연락을 받았습니다. 원장님의 허락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가 보니 어머니는 열 살인 이호를 여전히 "우리 아기"라고 부르며 달래고 계셨습니다. 저는 잠시 어머니께 양해를 구하고 아이와 단둘이 마주 앉았습니다.
"호야, 너는 이제 열한 살이야. 더 이상 아기가 아니지. 지금처럼 하는 건 아기들이나 하는 행동이야. 호야는 주사가 무서워도 충분히 참아낼 수 있는 사람이야." 잠시 침묵이 흐른 뒤, 호야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더 이상의 저항 없이 주사를 맞은 아이에게 "정말 멋진 어린이"라고 격려하며, 어머니께도 조심스레 부탁드렸습니다. 이제는 아이를 '애기'가 아닌 그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말입니다.
평소 존경하는 원장님과 식사 자리가 있었습니다. 성인 발달장애인에게 높임말을 사용하는 것과 영상 시청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20년 전만 해도 성인 발달장애인에게 반말을 하는 것이 당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도 했고, 유아들이 볼법한 영상들을 시청하도록 하는 경우들도 많았습니다. 원장님은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사회복지사의 태도에 따라 그들이 성인이 되기도 하고, 스무 살이 넘어서도 어린아이로 남기도 합니다. 그러니 이 선생과 나는 그들을 성인으로 대하는 사회복지 현장을 만들어 가봅시다"라고요. 그 말은 완벽하지 않더라도 한 사람의 자립을 지원하는 과정이 우리의 역할이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자립은 어떤 사람에게든 준비와 연습이 필요한 과정입니다. 장애인이라서 무조건적인 보호아래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제한받는 것이 사랑은 아닙니다. 어쩌면 배려를 과장한 차별일 수도 있습니다. 작은 부분이라도 스스로 해 볼 수 있는 기회들을 만나고 반복과 연습을 통해 성장할 수 있습니다.
자립의 힘은 결국 의사소통을 통해 드러납니다. 자신의 생각을 말해보고, 상대의 제안을 수용하거나 거절하며, 자신의 선택에 책임져 보는 연습이 반복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작은 경험들이 쌓일 때 비로소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자립의 정체성이 발달하게 됩니다. 대중교통을 혼자 타볼 용기가 생기고, 아플 때 스스로 전화를 걸어 의사를 전달하며, 갈등 상황에서 이탈 대신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힘이 길러집니다.
학교 3학년 시절 만났던 하나(가명)는 제가 ‘씩씩이’라는 애칭으로 부를 만큼 내면이 단단한 학생이었습니다. 하나는 하반신 지체장애인으로 이동시에는 전동 모터를 장착한 수동 휠체어를 사용했습니다. 강의장 이동에 어려움도 있었지만 굴하지 않을 만큼 수업에 대한 의지가 대단했습니다. 전공 수업 중 발표 수업을 위해 사흘 밤을 꼬박 새워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발표 당일, 담당 교수님은 시간이 부족하다며 하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네는 발표하지 않아도 학점을 줄 테니 편하게 생각하게.” 교수님의 제안은 배려가 아닌 기회의 박탈이었습니다. 주변 학생들의 수군거림이 들려왔고 순간 억울한 감정에 눈물이 나려는 것을 간신히 참아내며 교수님께 본인의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교수님, 저는 이 발표를 위해 사흘 밤을 새우며 준비했습니다. 제게도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발표할 기회를 주십시오.” 다음 수업 시작 시 발표를 하기로 협의를 하고 강의장에서 나온 하나는 제게 전화를 걸어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하나의 용기에 마음 다해 격려하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씩씩이 하나는 졸업을 준비하며 장애인 해외 인턴십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멋진 경험의 기회를 만들어 냈습니다. 현재는 국내로 돌아와 공기업 취업을 차분히 해 나가고 있습니다.
장애학생들에게 의사소통 능력을 교육하는 것은 단순히 ‘말하기’를 가르치는 기술적 훈련이 아닙니다. 이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자립의 근육’을 기르는 한 사람이 되는 과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