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너는 엄마가 있어 좋겠다.

자립준비청년 이야기

by 겨울나기 이코치




"코치님, 저는 연애는 해도 결혼은 못 할 것 같아요.

결혼식장에 함께 있어 줄 어른도 없고,

이런 저를 어떤 가정에서 받아 주겠어요?"


저희끼리는 소이(가명)를 연예인이라고 불렀습니다. 뽀얀 피부에 동그랗고 큰 눈망울이 참 예뻤습니다. 한국형 백설공주를 제작한다면 소이가 제격이라고 농담반 진담반 그랬더랬죠.

소이는 어린 시절 시설에 맡겨졌습니다.

엄마가 계시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상황에

소이에 대한 친권을 포기하고 시설에 보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엄마는 자립의 준비를 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소이는 엄마를 무척이나 그리워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소이에게 엄마가 자신의 보호자가 될 수 없다는 확신이 들게 된 상황이 생기고야 말았습니다. 얼마 전 엄마가 찾아온 것입니다.

'그래도 엄마인데 내가 보고 싶어서 오셨겠지.'라는 기대를 가지고 시설의 회의 공간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사를 나누자마자 엄마의 첫마디는 “너 돈 얼마 가지고 있어? 엄마가 돈이 필요한데 자립 지원금 받은 거 있지? 그거 엄마한테 좀 줘.”였습니다.

실망과 서러움의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는 것을

간신히 억누르고 참으며 입을 떼었다고 합니다.

"다시는 저 찾아오지 마세요." 그 일 이후 소이는 엄마가 그저 어디서든 잘 지내셨으면 할 뿐

그리워하지도 보고 싶어 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진심이 아닌 것을 압니다. 긴 시간 기다렸고 기대했기에 엄마와의 만남이 소이에게 더욱 아팠을 겁니다. 그런 말들로 시리도록 아픈 바람을 잠시 막아보려 한 것일 뿐.




우리나라에서는 소이와 같은 상황을 경험하는 청년들을 자립준비청년이라고 합니다. 보호자가 없거나 보호자인 대상으로부터 방임, 유기, 폭력으로부터 분리하여 양육되어야 할 아동을 '보호대상아동'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 아동들이 성장하여 만 18세가 되면 자립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만 18세가 되었다고 아이들이 갑자기 스스로의 인생을 책임지고 살아갈 어른이 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반강제적으로 이루어지는 자립이 아이들을 사회에서 더욱 소외되게 만들고 극심한 외로움과 고립을 경험하게 합니다. 외로운 인생에 갑자기 다가온 친절한 사람들에게 마음을 빼앗겨 자립을 위해 준비해 둔 자립지원금을 사기당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자립이 상처가 되어 겨울에 갇힌 인생을 살아가기도 합니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우리나라의 정책은 청년들의 고통의 아우성을

오랜 시간 외면해 오다 몇 해 전 법률을 개정했습니다. 시설이나 그룹홈에 머무를 수 있는 연령을 만 18세에서 25세로 연장한 것입니다.

청년들은 좋아했고 안심했습니다. 자립을 위한 준비를 할 시간이 주어졌다고요. 자립의 적정한 시기조차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그놈의 법.





소이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호수(가명)는

따뜻한 얼굴로 소이를 다독입니다. "소이야 그래도 나는 네가 부럽다. 나는 나를 낳아준 엄마 얼굴도 몰라. 내 돈 좀 떼가도 되니까 얼굴이라도 알았으면 좋겠다" 피식 웃으며 건네는 호수의 말에 소이도 따라 피식 웃습니다. 아무나 함부로 따라 할 수 없는 저들끼리만 가능한 위로입니다. 자립준비청년들을 만나며 가장 훈훈해지는 시간이 바로 이런 상황입니다. 청년들은 서로의 겨울을 잘 알았고 그래서 그 겨울에 온기를 불어넣는 다정함이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월, 수, 금,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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