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겨져도 소중한 너다.

어떠한 모양의 겨울이 다가와도

by 겨울나기 이코치

양복을 반듯하게 차려입은 남성 강사였습니다.

갑자기 안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더니 마구 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바닥에 던진 뒤 발로 밟고는 다시 주워 들며 청중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 돈 가지실 분? 손을 드시는 분께 드리겠습니다."


여기저기서 손을 드는 사람들이 나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손을 들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돈이 구겨지든 밟히든 그 가치가 변하지 않죠. 그러니 여러분도 손을 드신 거고요."


그 돈이 어떤 이의 손에 쥐어졌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받은 인사이트는 11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이 납니다.



아이는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받게 된 성교육으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Wee센터로 향했습니다. 엄마가 집을 나간 이후 어린 시절부터 아빠와 단둘이살아왔다고 했습니다. 일가친척도 없었습니다.

아이는 아빠와 있었던 일을 Wee센터 상담 선생님께 이야기했고, 상담 선생님의 신고로 아이는 아빠와 분리되어 그룹 홈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아빠가 했던 행동들이 자신을 사랑해서 한 행동이 아님을 알게 된 이후로

함께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아빠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느꼈죠.


제가 아이를 만난 건 그로부터 1년 뒤였습니다.

자립 지원 교육을 진행하며 그룹 홈 아이들과 '밝은 점' 찾기 활동을 했습니다. 잔잔한 미소가 사랑스러웠던 아이는 자신은 "인내와 용서"라는 밝은 점을 가지고 싶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교육이 끝나고 코치님께만 따로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교육이 잘 마무리되고 문으로 향하는 저를 아이가 따라 나왔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저에게만 들릴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코치님, 제가 인내와 용서를 밝은 점으로 가지고 싶다고 했잖아요. 저한테 가족은 아빠뿐이었 거든요. 그런데 아빠가 저한테 한 행동은 저를 너무 슬프게 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많이 흐를 때까지 제가 인내하면 그때는 아빠를 용서해 주고 싶어요.

그런데 이건 코치님만 알고 계세요."



그리고 또 여기, 양발 모두 사고로 족부 절단술(Pedal Amputation)을 받고

후천적 장애인이 된 남학생이 있습니다.


저를 만났던 건 대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그리고 졸업을 하고 1년까지, 총 5년의 기간을 만나온 학생입니다. 공기업 취업을 희망했고, 토익 점수를 받기 위해 인터넷으로 공부했지만 기준이 되는 점수를 얻지 못해 고민에 빠졌습니다. 부모님께 짐이 되고 싶지 않았던 학생은

목발을 짚고 한 시간을 걸어 학원에 다녔다고 합니다. 버스는 흔들거려 타기 힘들었고, 택시는 비용이 감당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렇게 노력한 끝에 원하는 점수에 도달했습니다.

매년 방학마다 필요한 자격증 공부를 안내하고

자기소개서 작성 실습, 스피치 교육, 면접 준비, 이미지 메이킹 등 하나하나 체계적으로 준비했습니다. 긴 시간 함께 열심히 준비한 덕분인지, 채용 단계의 1차 서류 전형은 어렵지 않게 합격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면접이었습니다.


세 번의 불합격을 경험했고,

첫 면접 때는 면접관이 장애 인식 개선이 되어 있지 않아 목발을 짚고 면접장에 들어온 학생을 향해

"그렇게 장애가 심해서 어떻게 일을 하겠어요?"라는 말을 했습니다.

학생은 그 말에 주눅이 들어 한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돌아와 속상해했습니다.


네 번째 도전을 하겠다는 학생에게

저는 더 이상 '희망 고문'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그만하고 다른 곳을 알아보자고 했죠. 그런데 학생이 저를 설득했습니다. "한 번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도전할 테니 도와달라"고요.

그렇게 우리는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도전했고,

1차 합격 소식을 어렵지 않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면접 전날, 저는 이야기했습니다.

"이번에 가면 어떤 질문을 받든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 말 제대로 하고 와요. 쫄지 말고 당당하게. 알았죠?"

"네, 코치님. 꼭 그럴게요."


면접을 마치고 학생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코치님, 이번에는 지난번과 같은 질문은 없었어요.

그런데 마지막에 꼭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해서 용기를 내서 했어요." "어떤 말을 했어요?" 하고 물으니,학생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어린 시절 사고로 두 발을 잃었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휠체어를 타면 제가 스스로 갈 수 있는 곳이 별로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목발로 재활 훈련을 시작했고, 덕분에 제 겨드랑이에는 근육이 생겼습니다.

목발을 끼고 재활 훈련을 하면서 살이 까지고 때론 진물이 났습니다. 그렇게 수없이 새살이 돋기를 반복하며 굳은살이 생겼습니다.

겨드랑이에 근육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고통을 견디고 이기며 저는 그렇게 성장했습니다.

이런 저에게 맡겨지는 일을 어떻게 해나갈지 기대되지 않으시나요? 면접관님, 저의 장애가 아니라 저라는 사람의 역량을 보시고 평가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와~ 멋있다!" 감탄이 나왔습니다.

잘했다고, 정말 잘했다고, 결과에 상관없이 "네가 win"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학생의 어머니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대학생을 지도하고 어머니께 연락을 받은 건 처음이었습니다. 아들에게 들어 저에 대해 잘 알고 계신다고요, 그리고 울먹이시며 제게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셨습니다.


아들이 최종 합격을 했다고요.


저는 도리어 어머니께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아드님을 정말 잘 키우셨어요. 저는 잠시 머물다 가는 사람이지만, 아드님께 어머니가 계셨기에 지금의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거예요."


인생을 살다 보면 이런 사람을 만나서 이렇게 구겨지고 저런 사람을 만나면서 저렇게 구겨지기도 합니다. 이런 환경에 밟히고 저런 환경에 밟히며 차디찬 겨울을 납니다.


그렇다고 해서

누가 감히

인내와 용서의 밝은 점을 찾는 아이에게,

겨드랑이의 근육을 만든 학생에게

존재의 가치가 바래졌다고 할 수 있을까요?


지폐가 아무리 구겨지고 밟혀도 본래의 가치를 잃지 않듯이 당신의 인생에 어떠한 모양의 겨울이 찾아와도 당신의 존재 가치는 변함없이 더욱 의미 있게 빛나고 있음을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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