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선물 같은 공간이 있다. 전혀 기대하지 않은 공간에서 골목 하나를 우연히 돌았을 때 뜻밖의 행운처럼 새로운 광경을 목격하는 것이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찾은 영도의 어느 골목에서 마주한 생각지도 못한 공간, 아레아식스(AREA6)의 이야기다.
흔히 영도하면 저 섬 깊숙이 위치한 태종대나 언덕 따라 카페들이 즐비한 흰여울문화마을 정도를 떠올린다. 부산대교나 영도대교와 같이 다리 하나로 부산역으로 이어지는 영도 초입에 봉래동에 눈길을 주는 이는 많지 않다. 봉래동에는 키 작고 오래된 건물 사이에 베이지색 삼진어묵 본점이 때깔 좋게 솟아있다. 부산역-영도-해운대로 이어지는 그 길목을 수차례 오고 가면서도 삼진어묵 본점에 들어갈 생각조차 못했는데, 인근에 볼일볼 겸 봉래동을 찾았다가 삼진어묵 본점을 기웃거리게 되었다.
배불러서 어묵은 못샀습니데이
- 헐 여기 좀 와봐
- 뭔데 뭔데
동행한 지인이 삼진어묵 본점 주변을 어슬렁 거리다가 골목길을 가리키며 황급히 손짓하길래 가보니 웬걸, 건물 뒤편에 별천지처럼 복합문화공간이 숨겨져 있었다.
아레아식스는 삼진어묵이 봉래시장 폐가옥 6채를 허물어 만든 3층짜리 지역문화공간(aka 로컬컬처플랫폼)이다. 부산 향토기업인 삼진어묵이 지역 상생을 위해 건물을 올리고 크고 작은 로컬브랜드를 입점시켰다. 관심이 생겨 삼진어묵 대표의 인터뷰를 읽어보니 삼진어묵이 1953년부터 영도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성장한 만큼 앞으로는 지역 전체가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구상한 공간이라고 한다. 높은 건물을 세워 돈을 벌 생각보다 '같이의 가치'를 실현한 덕분에 건물상도 여러 번 받았다고 하니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트렌디 못참지 또!
2021년 2월 오픈과 함께 입점한 로컬브랜드는 크고 작게 바뀐 모양이지만 지금도 다양한 '부산 브랜드'로 가득하다. 타지인으로서 부산을 보면 이런 로컬브랜드에 대한 관심과 나아가 고향에 대한 애정이 물씬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부러울 다름. 굵직하게는 수건과 함께 캐릭터 '타월쿤'으로도 유명한 '송월타월'과 술자리에서 빠지지 않는 술안주 스테디셀러로 익숙한 '머거본'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제야 왜 광안리 민락더마켓에 타월쿤 팝업스토어가 들어오게 되었는지, 또 영도 지날 때마다 머거본 트럭이 왜 이리 자주 보였던 건지 슬슬 퍼즐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나 제법 부산 애정하는지도?
중간에는 부산블루스라는 힙한 공간이 눈길을 끌었다. 단순히 인스타 사진을 위한 힙한 공간이 아니라 부산명품수산물협회라는, 이른바 부산을 대표하는 수산물 업체들이 한데 모여 바다도시 부산의 대표적인 수산물을 홍보하는 일종의 홍보관이었다. 삼진어묵은 물론이고 일전에도 언급한 적 있는 부산의 명란과 기장 미역, 다시마 등 익숙한 수산물들이 감각적인 LP판의 모양으로 재해석되어있었다. 비릿한 수산물을 LP판으로 탈바꿈해서 이 힙찔이의 시선을 사로잡는 걸 보니 '이런 게 홍보지'싶었달까.
힙 못참지!!
기분 좋게 한 바퀴 돌고 나오면 건물 사이에 총총총 박힌 알전구가 보인다. 밤이면 불이 꺼져 어두운 오래된 골목을 밝힌다는 취지로 알전구들이 일렬로 나란히 서있다. 골목을 살린다는 마음도 예쁘고, 곳곳을 야무지게 채운 로컬브랜드들의 재치도 엿보이고, 무엇보다도 아무 기대 없이 찾은 막다른 골목 뒤편에서 이런 숨겨진 공간을 마주했다는 두근거림이 두고두고 남아 한번쯤은 더 아레아식스를 찾을 듯하다.
불빛이 총총총 있는게 예쁘데이
크고 작은, 혹은 이미 알려졌거나 새롭게 뜨는 부산의 면면을 찾을 때마다 부산사람들의 도시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가끔 부산에서 나고 자란 이들에게 부산이 어떠냐고 물어보면 다들 처음에는 '그래도 서울이 놀거리도 많고 맛집도 많아서 더 낫지 않습니꺼' 하다가 '근데 뭐 서울에 있으면 부산에 다 있기도 하고 부산은 바다가 있으니깐, 부산 머 좋은 거 같습니더' 한다. 물론 부산은 대표적인 관광 도시니깐 도시의 볼거리와 즐길거리에 대한 투자가 필연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고 그래서인지 체감상 기존의 관광지 유지보수도 꾸준히 이어지고 새로운 관광지와 관광상품 역시 계속 개발되는 듯하다. 허나 그보다도 부산을 빛나게 하는 것은 부산사람들의 고향에 대한 애정인 것 같다. 왜, 뭐든 사랑을 받으면 빛이 난다고 하지 않는가!
도시마다 매력이 다 다르니 비교할 수는 없지만, 어쩌다 팔자에도 없는 부산살이를 하는 나에게도 부산은 여느 도시에 견줄 만큼 매력적인 도시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이렇게 나 부산에 스며.. 부며드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