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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꾹이누나 Mar 03. 2024

뭐 하나는 얻어서 가야 하지 않겠어?

타지살이의 유일한 친구는 #운동

작년 여름 어느 주말이었다. 그나마 아는 지인들 모두 서울로 떠나버리는 외로운 주말 아침, 아이보리색 방에서 곤히 낮잠을 자다 깬 나는 생각했다.


운동을 해야겠다!


부산 와서 운동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원체 몸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고, 집에 있는 걸 답답해해서 부산 오자마자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매일 밤 러닝을 했고, 덕분에 온 지 4개월 차쯤에는 10k 마라톤까지 뛰었던 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라톤이 끝나니 자연스럽게 러닝을 멈추고 부산의 맛집에 슬슬(아니 술술) 눈이 뜨게 되어 순식간에 몸무게가 원상 복귀되는 것이 여간 억울한 게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한여름 주말 오후, 주르륵 흐르는 땀에 눈을 딱 떴을 때 눈앞에 펼쳐진 포근한 아이보리빛 방 전경 속에 축 퍼져있는 뜨뜻한 몸뚱이가 문득 한심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눈 뜨자마자 헬스장을 검색해서 (나름) 제일 가성비 좋은 곳을 찾아 바로 움직였다. 이 모든 게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음을, 그날의 충동적이고 동시에 긴박했음을 여전히 기억한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웨이트라는 단어 앞에만 서면 핑계가 길어진달까. 당시 나는 테니스 레슨을 받고 있었지만 모든 운동루틴은 그야말로 유산소에 초점이 맞추어진 상태였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기구를 사용하는 근력운동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고백하건대 시커멓게 생긴 그 기계들만 보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진짜다. 살면서 별의별 경험을 다채롭게 겪어왔지만 무시무시하게 생긴 웨이트 기계들만 보면 괜스레 움츠려드는 마음이었다. 두려움에 열과 성의를 다해 최대한 근력운동을 피해왔으나 결국 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느낌이었다. 더 이상 운동으로 인한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눈물을 머금고 충동적으로 헬스장을 찾아간 나는 덜컥 PT를 등록했다.




추진력 하나는 1등이라 자부하기에 그날부터 미친 듯이 운동을 갔다. 테니스와 헬스를 병행하면서 월화수목금 운동을 하고 주말에는 테니스 보강을 하거나 헬스장 개인운동을 나갔다. 살이 제법 빠졌고 이는 커진 옷과 함께 주변사람들의 칭찬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살 빠진 거 아냐?


짜릿했다.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동시에 아주 조금의 운동강박이 생겼다. 사정이 있어 운동할 수 없는 날에는 살이 덕지덕지 붙는 것만 같았다. 운동을 한 다음 날 근육통이 없거든 제대로운동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유산소를 더 과하게 그리고 오래 했다. 곧이어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월화수목금토일 운동을 했지만 유튜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10~20kg!' '44되기가 제일 쉬웠어요!' 정도의 톡톡한 다이어트 효과는 볼 수 없었다. 이것이 정녕 내 뼈와 근육의 무게인 것일까... 생각하며 PT선생님께 물었다.


쌤, 저 왜 더 이상 안 빠지는 거예요?


"혹시 식단 하세요? 유튜브처럼 빼려면 진짜 식단 확실하게 하셔야 해요 회원님~"

? 부족해. 그간 어렴풋이나마 식단을 하겠다고 요거트와 샐러드와 양배추부침 따위를 도시락으로 싸서 아침, 저녁으로 때우곤 했는데 부족했다고?


그때부터 다이어트 광기가 시작되었다.


부지런했던 광기의 추억...jpg




갓생을 사는 커리어 우먼 뽕에 제대로 취했었다. 출&퇴근 직후 운동을 하고서 9시쯤 돌아오거든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도시락을 싸고 기록용 음식사진을 찍고 겨우겨우 샤워하고 다시 운동 가방을 챙기고... 헥헥헥...


미친 스케줄로 몇 달을 지내다 보니 아주 조금의 득근과 함께 극심한 피로와 강박을 얻었다. 피로는 테니스를 잠깐 쉬는 것으로 겨우 시간과 체력안배를 했지만, 여전히 '생각만큼' 확 빠지지 않는 살 때문에 다이어트 강박이 커져만 갔다. 왜 나는 날씬쟁이가 될 수 없는가, 원인을 찾아 이런저런 가능성을 고민해 보았다.


1. 식단에 단백질이 부족한 건 아닐까

 - 단백질 보조제 바로 사서 먹음

2. 3끼 다 먹어서 그런 거 아님? 간헐적 단식 ㄱㄱ

 - 3끼 다 먹긴 하지만 아침은 거의 그릭요거트나 오트밀이었던 상황. 간헐적 단식은 몇 번 시도 끝에 실패..(3끼 다 안 먹으면 너무 배고파짐)

3. 운동이 부족한 거 아님? 혹은 웨이트유산소 불균형?

 - 이제 빨래통에 운동복만 가득한 상태. 웨이트가 부족할 수도 있으니 개인운동 때 웨이트 추가..


고백하건대 술을 끊지 못해서도 맞다. 서울에서만큼 많지는 않았지만 이런저런 술자리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인데, 서울에서는 과음+운동 0이었지만 부산에서는 절주+운동 100인데도 비슷한 결과인 것이 서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물론 내 몸뚱이에게...


그러다 PT쌤이 조심스레 한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

"혹시 회원님 특별한 계기가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요? 다른 회원님들은 뭐 결혼이다 바디프로필이다 해서 목표가 있는데 사실 회원님은 목표가 없어서 지금도 행복해 보이시긴 해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사실 운동의 목적이 엄청난 체중감량도 아니었고 다만 푸근해지는 몸뚱이에 대한 경각심 정도였는데 사실 그렇다면 목적을 어느 정도 이룬 셈이었다. 덧붙여 반년이 넘게 꾸준히 이어온 운동 덕분에 체력 자체가 좋아진 게 느껴졌으며(왜 때문인지 주량이.. 특히.. 늘었답니다..ㅎㅎ) 생전 느껴보지 못한 탄력이 몸 곳곳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하체운동에 주력하다 보니 허벅지 근육이 생긴 것이 변화라면 변화였다. 지구력도 제법 좋아져서 러닝을 뛰거든 느린 속도지만 30분은 거뜬히 쉬지 않고 뛰어도 크게 힘들지 않은 정도가 되었다!


식단 또한 습관 자체가 바뀌었다. 예전에는 삘 꽂히면 무조건 만들어먹고 마는 요리부심이 있었는데, 지금은 고칼로리 요리부심보다 건강식부심(?)이 생겼다. 냉동만두를 참 사랑했었는데 n년간의 짝사랑을 끝내고 요즘 냉동식품 자체를 잘 사지 않게 되었다. 스트레스가 턱 끝까지 치미는 날에는 여전히 감자칩 한 봉지에 맥주 한 캔을 까곤 하지만, 주로 건강식을 먹다 보니 속이 편해지고 피부가 좋아졌다.




PT의 끝이 보이는 요즘, 날씨도 제법 풀려 운동 루틴을 조금 바꿀까 고민 중이다. 일단 작년과 마찬가지로 4월에 있을 벤츠런을 신청했는데 이를 계기로 해운대 바닷길을 따라 저녁마다 달리기를 해볼 심산이다. 한 달 여 달리기가 끝나면 잠깐 쉬고 있는 테니스를 다시 재개하고 동시에 PT가 아닌 헬스장 회원권을 끊어 개인운동으로 꾸준히 체력관리를 이어 나가보겠다는 것이 일단의 각오다. 물론 부산살이가 끝나갈 즈음에는 지금 몸무게보다 조금은 더 빠져있기를 바라는 욕심은 여전히 품고 있다. 하지만 그 목표는 서울행이 임박했을 때에 다시 펼쳐보기로 하고, 지금은 건강한 매일에 집중하기로 한다.


해변요가(ㅋㅋ)부터 테니스 서핑 달리기.. 부산에서 몸뚱아리로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있습니데이


혹시 자의든 타의든 타지살이를 시작하게 되는 당신이 이 글을 읽는다면 운동하고 건강하게 먹기를 추천해 본다. 울하지만 타지생활은 만날 지인도 얼마 없어 퇴근 후 시간이 비교적 여유로운 것이 팩트다. 남아도는 시간을 얼마나 잘 쓰고 가냐가 관건인데, 내 몸에 투자하는 운동이야말로 시간 보내는 꽤 괜찮은 방법인 것 같다. 타지에서 아프면 서러우니깐 우리 모두 내 몸뚱이 알뜰살뜰 챙겨서 타지살이 잘 버텨보았으면..!


운동 끝나고 시원한 맥주 한 캔은... 못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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