짭짤이토마토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극강의 자극적인 단맛에 절여진 스테비아 토마토 류가 시장을 장악하는 요즘, 단맛이 아닌 짠맛이 히든카드인 토마토가 있다. 바로 부산 강서구 대저 지역의 특산물인 대저 짭짤이토마토다.
대저 짭짤이토마토는 봄이 빨리 오는 부산에서 매화가 슬슬 꽃봉오리를 터트리기 시작하는 2월 즈음 수확을 시작한다. 부산에 살면 곳곳에서 대저 짭짤이토마토를 파는 트럭이나 좌판이 보이거든 봄이 성큼 다가온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매화와 함께 시작되는 대저 토마토의 수확시기는 봄의 대표주자인 벚꽃이 만개를 거쳐 길바닥에 핑크빛을 뿌려대는 봄의 끝자락까지 이어진다. 매년 부산 강서구에서는 '대저 토마토 축제'가 개최되는데, 올해 토마토 축제 기간인 3.23~24와 벚꽃으로 유명한 진해 군항제가 3.23~4.1으로 겹치는 것을 보면 대저토마토 역시 봄의 대표주자로 꼽을 수도 있을 터다, 물론 부산에서는 말이다.
이렇게 추운데 매화 니 정신 안차리나!!
부산 강서구 대저동은 생소한 지명일 수 있으니 외지인에게 간단히 설명하자면 바로 김해공항 근처다. 김해공항 근처를 지나면 '토마토'라는 현수막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더러 토마토 조형물 따위를 본 기억도 난다. 여기까지 왜 가본것이냐고? 나 역시 작년 봄, 그러니깐 부산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즈음에 이 동네를 지나다가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ㅋㅋ) 토마토 동네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일전에 언급했듯이 이른바짭짤이(혹은 짭짜리)로 불리는 '짠맛'은 도통 토마토에 어울리지 않는 느낌마저 든다. 마트에만 가도 단마토,토망고 등등 온갖 종류의 달콤한 이름의 토마토들이 즐비하다. 이런 토마토들은 재배과정에서 흙이나 잎 뿌리 등에 스테비아 농축액을 뿌려 재배하거나 혹은 토마토 과육에 스테비아를 주입하는 방법으로 가공한다. 달콤한 토마토가 주가 시장에서 짭짤이토마토는 이단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자극적인 단맛이 거북한 이들에게 짭짤이토마토의 맛은 매력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짭짤이의 짠맛의 비결은 지역적 특성에 있다. 부산 강서구는 낙동강과 다대포 바닷물이 만나는 곳이다. 다대포 바다의 짠 물이 낙동강 인근 토양을 말 그대로 짭짤하게 만들어 토마토에 은근한 짠맛을 선사한다. 그렇다고 해서 토마토를 베어 물면 '아우 짜!' 하는 정도가 아니라, 씹을수록 짭짤 달콤한 것이 말 그대로 단짠단짠 한 맛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작년 초에 대저 짭짤이토마토를 처음 먹어보고 속으로 이게 뭐람? 하고 실망한 기억이 있다. 나 역시 단맛, 그것도 자극적으로 짜릿하게 달콤한 스테비아 토마토에 길들여져 단마토는 쌓아놓고 먹곤 했지만 그에 반해 짭짤이 녀석은 왠지 모르게 심심한 느낌까지 들었다. 푸르스름하고 과육이 단단한 비주얼 역시 내가 알고 있는 '맛있는 토마토'의 모습과는 달랐다. 찰토마토처럼 쫠깃쫀듯한 것도 아니요, 뭔가 달콤한 듯 짭짤한 듯 입안에서 감도는 강렬한 한방이 없어 한 입 먹고 더 이상 손을 대지 않았었다.
올해는 무슨 일인지 짭짤이토마토를 산지에서 직접 사서 제대로 먹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무작정 강서구 대저로 향했다. 부산에서의 마지막 봄이라는 생각으로 한 번쯤은 제대로 먹어보고픈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대저동에 도착해 플래카드에 보이는 아무 토마토 농장으로 찾아가 문을 두드리니, 오늘 수확한 옆집 농장을 소개해주어 그곳으로 향했다.
아직 수확한 지 얼마 안돼서 맛없으면 우야노
내심 걱정하는 사장님께 그럼 맛난 걸로 야무지게 골라달라고 너스레를 떨면서 내친김에 허락을 받고 비닐하우스 안까지 실컷 구경을 했다. 바깥은 아직 꽃샘추위로 냉랭한데, 따뜻한 공기로 가득한 하우스 안에서는 초록색 이파리 색 가득한 토마토 가지 사이에서 같은 초록빛을 띤 토마토가 주렁주렁 열려있었다. 어쩐지 생그러운 느낌에 기분까지 좋아졌다.
서비스로 받은 토마토즙ㅋㅋ 고맙습니데이~
'꼭 후숙 해서 드이소' 하는 전문가의 고견을 받들어 하루 푹 후숙한 다음 박스를 열어보니 토마토에 제법 붉은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잘 익어 보이는 놈으로 몇 개 잘라먹어보니, 아니 이게 왠 걸, 너무 맛있는 게 아닌가! 그 맛은 자극적이지도 그러나 심심하지도 않은 달콤 짭짤하게 입맛을 돋우는어른의 맛이었다.
입맛이 조금씩 변할 때 내가 나이가 드나 아니면 철이 드나 생각하게 된다. 작년까지만 해도 자극적인 스테비아 토마토나 잔뜩 시켜놓고 먹었는데 어느새 은근한 짠맛이 매력적인 짭짤이토마토에 손이 간다. 자극적인 사람들, 자극적인 관계 그리고 이야기에 먼저 시선이 갔더라면 이제는 별 탈 없이 흘러가는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이 더 끌린다. 한참 '더글로리' 같은 매운맛이 당길 때가 있는가 하면, 이제는 '웰컴투삼달리'가 재미있게 느껴질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부산에서 1년 조금 넘게 지내면서 입맛도 취향도 조금씩 변해가는 것이 새삼 와닿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