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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꾹이누나 Feb 12. 2024

꼼장어 싫었다가 좋아질 수도 있지

혈육과 함께한 #부산곰장어 한 끼

남동생이 부산을 방문했다. 고작 일박이일뿐인 짧은 시간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짧은 시간이기에 메뉴 선정에 꽤나 고심했다. 동생에게 몇 개의 선택지를, 그것도 곰장어라는 함정 아닌 함정을 담아 내밀었더니 곰장어(참고로 꼼장어는 부산 사투리다)를 덜컥 선택하는 것이었다. 서로의 취향을 이 정도도 몰랐다는 사실에 다시금 놀라며 짚불곰장어로 유명한 기장으로 향했다.


소금구이(나는 소금구이에 한표!)


송정바다를 지나 막 기장군에 발을 내디디면 기장곰장어촌이 나온다. 이곳에 가장 유명한 메뉴는 짚불에 살아있는 곰장어를 올려 껍질을 새까맣게 태운 뒤 그 자리에서 껍질을 죽죽 벗겨주는 이른바 '짚불 곰장어구이'다. 새까만 겉껍질을 목장갑으로 쭉 밀어내기만 하면 뽀얗고 징그러운(?) 속살이 철판에 담겨 나온다. 짚불의 향에 특유의 흙내가 날아간, 그러나 여전히 충격적 비주얼의 곰장어 구이를 기름소금에 콕 찍어 먹으면 고단백 생선의 고소함이 배가되어 곧바로 소주 한 잔이 절실해다.


양념구이


비주얼 쇼크는 양념구이가 조금 더하다. 소금구이는 우리가 상상하는 곰장어 모습 그대로라면, 양념구이는 토막이 난 채 내장이 드러나 보다 충격적인 비주얼로 상에 오른다. 또르르 말려있는 내장을 마주하자니 함께 볶아진 야채 밑에 숨겨서 애써 시선을 외면하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또 맛은 매콤한 양념과 함께 구워 소금구이보다 한결 자극적이라 입맛을 확 돋운다.


- 곰장어는 둥근 입(이자 항문)으로 다른 생물의 살과 내장을 파먹는 기생어류래~ 내장 쭉쭉~

- 아 왜 그걸 알려주냐고!

- (굳이 굳이 곰장어 입을 찾아서) 여기 보이지? 여기가 입 정도 되겠네 먹어보실?

- 아 미쳤나고!!!


누나의 은밀한 취미가 이렇게 부산의 먹거리를 집요하게 찾아 글까지 는 것임을 꽁꽁 숨긴 채 미리 찾아본 곰장어의 이모저모를 찾아 알려주자 동생이 기겁했다. 장난기가 도져 입이며 꼬리 눈앞에 보여주며 기생한다느니 가죽을 쓰네 버리네 하는 잡설을 늘어놓으며 그 맛이 입 안에서 한결 풍성해지는 것 같지 않냐고 놀리다 보니 소주 한 병이 금세 바닥을 보였다.


- 근데 곰장어를 원래 먹을 줄 알았? 이런 건 못 먹는 줄 알았는데?

- 사실 못 먹었어ㅋㅋ 부산 와서 처음 먹어본 거임


예리한 놈. 역시 혈육은 혈육이라 이런 비주얼 쇼크 부류(?) 원래 잘 못 먹는다는 사실을 용케 기억해 냈다. 사실... 나는 부산 와서 곰장어를 처음 만나 이제 갓 친해지기 시작한 곰장어 극초보자다.




부산에 오기 전까지 곰장어를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먹을 기회도 없었지만 곰장어의 압도적 생김새 때문에 먹을 엄두조차 내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가 부산에 오고 나서 친한 언니가 곧 방문할 테니 만나면 무조건 곰장어를 먹어야 된다고 으름장을 놓길래 연습 삼아 술자리에서 곰장어를 한 번 먹어본 것이 인생 첫 경험이었다. 비주얼은 영화 '듄'의 모래벌레를 연상케 했는데 매콤한 양념 덕분인지 맛이 나쁘진 않았다. 그렇게 한 번의 연습까지 거친 뒤, 그녀의 부산방문에 곰장어를 소금+양념구이 풀코스로 먹었는데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것이 자꾸 젓가락이 가는 맛이었다. 특히 고단백이라 깔끔하게 소주 한 잔까지 곁들이니 그야말로 어른의 맛이 할 수 있었다.


그래도 계속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 나 사실...

- 또 왜!

- 곰장어 싫어했는데 이제 좋아졌어ㅋㅋ


매일매일 생각나는 익숙한 맛은 아니지만, 기장 짚불곰장어 거리를 지날 때면 한 씩 그 고소함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특히 서울의 지인들이 한 번씩 '붓싼 하면 꼼장어 아잉교!' 하며 곰장어가 생각난다고 할 때면 어느새 함께 침을 꼴깍 삼키게 된 것이. 싫었는데 좋아진 게 하나 더 늘어버렸다. 사심 담아 인터넷을 뒤져보니 곰장어가 글쎄 부산의 맛이란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부산 앞바다에서 잡은 곰장어의 가죽을 쓰고 남은 속살을 버리곤 했는데 이를 구워 먹던 게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슬픈 역사를 거름 삼아 악착같이 남은 곰장어는 이제 부산의 맛으로 자리 잡았다. 아마 그때의 곰장어 속살을 버리던 이들도 오늘날 곰장어구이를 한 입 먹어보면 마음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근 몇 년향이며 치관 따위가 이제 막 살얼음처럼 굳어지기 시작했던 시간이었다. 솔직함이 장점이자 단점인 사람이라 '좋아요'라는 말이 어렵지 않게 나왔다. 그러다 상황이 조금 바뀌어 '좋아요'가 더 이상 좋지 않아졌을 때에도 때론 좋은 척 거짓말하기도 하고 옳았다고 여기던 나 자신이 틀렸음을(혹은 달라졌음을) 용납할 수 없어 '싫을 수도 있죠!' 하며 괜시리 버럭 화를 내기도 했다. 영화 제목도 있지 않느냐며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릴 수도 있다'며 언성을 높면서도 돌아서서 나란 인간은 왜 이토록 이랬다 저랬다 할까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겼다.


- 언제는 좋다면서요!

- 그때는 싫다면서요!


시간이 조금 흘러 귀퉁이에만 살짝살짝 생기다 깨지다 반복하던 살얼음이 이제얕게나마 호수 전반에 깔리는 느낌이다. 이런저런 시행착오 끝에 취향을 찾아가고, 가치관을 세웠다가 조금 고쳐나가곤 한다. 싫은 줄 알았다가 좋아지기도 하고, 좋아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애정이 생기지 않기도 한다. 뭐 좋아하는 마음뿐이겠는가. 요즘은 엎치락뒤치락하는 스스로 숨기지도 않고 누군가 변화를 알아차리더라도 괜히 날 세우는 날이 적어졌다. 그러려고 노력 중이다.


나아가 어떤 이는 가치판단의 무게중심이 자기 안에 있는 게 중요하다고 말. 누구나 자기만의 세계가 있다고 할 때 우리는 만나는 사람의 수만큼의 세계와 충돌한다. 충돌하면 또 깨지고 마는 불안한 개개인 세계지만 그 중심이 자기 자신이면 깨진 조각이 언제든 또 엉겨 붙기 마련이다. 지금은 맞지만 그때는 틀릴 수도 있고, 그때는 싫었지만 지금은 좋을 수도 있다. 그게 나의 진심이라면 인정하면 그만이고, 그렇게라도 나의 솔직한 마음을 알아가면 될 일이다. 불판 위의 뒤틀리는 곰장어가 해괴망측해 보일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 모습에 군침이 돌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n번째 새해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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