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서울
7년 동안 서로를 응원하며 친하게 지내던 언니가 갑자기 내가 살고 있던 캐나다 집주소를 물어봤다.
가끔씩 서로 엽서와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주고받을 때가 있어서 오랜만에 캐나다에 엽서를 보내려나보다 하고 주소를 알려주었다.
한 달쯤 뒤에 택배가 하나 도착했는데, 한국 과자들과 봉투가 하나 들어있었다.
봉투에는 언니의 이야기가 적혀있는 엽서들과 청첩장이 들어있었다. 한국에서 나가서 지낸 지 1년 남짓 된 지라 내가 모르고 있는 이 이렇게 큰 일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엽서에서 읽은 언니의 소식은 이랬다.
2023년 4월 누군가를 만나게 되었고 이 사람이다 싶은 느낌이 강해 일주일 만에 반지를 맞추고 두 달 만에 가족끼리 작은 결혼식을 하고 신혼집에 들어가서 살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2024년 4월에 모두를 초대하는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고 했다. 내가 남달리 사랑하는 언니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 찾았다는 소식에 반가움과 감동이 내 눈물샘을 자극했다. 누군가는 일주일 만에 반지를 맞추고 두 달 만에 살림을 합친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섣부른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사람의 관계의 깊이가 함께한 시간과 필수적으로 비례하지는 않다고 믿는 사람이기에 축복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언니가 미리 소식을 전해준 덕분에 나는 한국 일정을 앞당겨 결혼식을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 결혼식 전 언니는 나를 신혼집에 초대했다. 형부가 해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보고 들은 둘의 사랑은 역시나 내가 믿었던 것보다 더 견고하고 단단해 보였다. 형부가 언니를 처음 만난 날부터의 사진과 이야기를 책처럼 만든 앨범을 보여주었는데 정말 세심한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다. 언니는 형부랑은 뭐가 정말로 잘 통하는 것처럼 많은 것이 잘 맞는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으며 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친구가 있었다. 헤어질 걸 알고도 5년이나 꾸역꾸역 만난 그들은 결국 헤어졌다. 이후 친구는 정말로 잘 맞고 이 사람이다 하는 사람을 만났고 그들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귀게 되었다.
시간은 밀도와 비례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과는 오래오래 함께해도 더 이상 단단해지거나 깊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단단함을 오해해 관계가 깨지기도 한다. 나이가 들수록 만나다 말게 되는 사람들이 생기는데 그래서 그런지 오히려 만나면 만날 수록 관계가 깊어지는 사람들이 정말 소중하고 감사하다. 시간은 공평히 흐르기 때문에 쌓아 올려야 한다. 때로는 놓쳐버린 시간을 후회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 시간을 뛰어넘는 밀도가 강한 사람을 만나면 신기하기도, 감사하기도 하다. 언어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비유를 하자면 시간은 문법이고 밀도는 그 문법에서 꼭 존재하는 '예외'가 아닐까 싶다.
이 브런치 북에 등장하는 존재들도 내가 보고 함께한 시간이 긴 존재들이기보다 잠깐이지만 내 마음에 오래 남은 존재들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믿는다. 우리 모두 잠깐 만난 누군가에게 오래 기억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있다고. 스쳐가지만 의미있는 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사람들도 나를 기억할 거라고 믿으며 그들은 마음 깊숙이 소중한 상자에 넣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