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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덤덤 Jul 12. 2020

2. '처음'이 난 참 싫더라고.

그래도 처음이라 괜찮아.




 처음이란 왜 이리도 떨리고 어색한 걸까. 참 많은 처음을 경험하며 스물여덟 해를 살아온 나는 여전히 처음이 두렵다. 예를 들면 처음 타는 버스, 처음 가본 식당, 처음 만나는 사람 같은 것 들. 어색함 가득 묻힌 채 쭈뼛거리기에는 살아온 해가 짧지 않아서 의연한 척 스며들어 흘려보내곤 하지만, 누가 봐도 '처음'을 경험하는 중임을 들키지 않기 위해 눈에 띄지 않는 법을 터득했을 뿐 나는 여전히 처음이 참 싫다. 행여나 정거장을 지나칠까 이어폰의 음량을 줄인 채 정거장 안내 전광판을 계속해서 확인하는 것, 허둥지둥하는 것이 싫어 처음 가는 식당의 블로그 글들을 몇 번 씩이나 정독하는 것, 처음 보는 사람과의 어색함이 견딜 수 없어 쓸데없는 말까지 내뱉는 것. 그 처음을 맞이하는 일련의 과정들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게 되는 것이다.




 산티아고를 향한 처음도 마찬가지였다. 벌써 세 번째 와보는 파리지만 트렌치코트에 뾰족한 부츠를 신고 한껏 멋을 부린 채 여유롭게 샹젤리제 거리를 걸을 때와는 다른 기분이었다. 10kg에 육박하는 커다란 배낭에 무거운 등산화를 신고 걷는 진짜 첫 '배낭여행'이었으니까. 늘 관광객으로 붐비는 파리에서조차 자기 몸 만한 짐을 짊어진 이방인에게는 시선이 머물기 마련이다. 어색함으로 어리바리한 모습이 이목을 끄는 것이 싫어, 이미 몇 년은 배낭여행 중인 자유로운 히피처럼 당당하고 거침없이 걸어보았지만 헐떡이는 등산화와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배낭이 발목을 잡는다. 아직 순례길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에너지가 고갈된 느낌. 북적이는 파리 몽파르나스 역 계단 위에 배낭을 풀어헤치고 주저앉아버렸다.












 나는 내가 좀 덤덤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언제나 남들은 쉽게 지나치는 일들을 크게 부풀려 느끼고 끝없이 되새김질하며 혼자 오랜 시간을 끙끙 앓아버리는 것이다. 이 예민하고 미련하고 쿨하지 못한 성격을 버릴 수 있으면 좋겠다. 단순하고 무덤덤하게 살아가고 싶다. '처음'이라는 것에 긴장해버리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느끼는 처음이라는 기분이 누군가에게는 설렘으로, 혹은 기쁨으로 느껴질 텐데 나는 그 감정이 주는 행복이 비집고 나올 틈도 주지 않고 이런저런 생각 속에 움츠려버린다.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지금보다 더욱 격한 감정의 쓰나미 속에 살았던 사춘기 시절부터 고향을 떠나 첫 독립을 했던 스무 살, 그 후 이십 대의 대부분을 새로운 자아를 형성하기 위해 애써왔다. 마음에 들지 않는 내 모습을 바꾸기 위해 늘 쿨한 모습으로, 근심 걱정 없이 혼자서도 뭐든 잘 해내는 어른으로, 남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으로 보이려 무던히도 노력해왔다. 두려워도 혼자 여행을 떠나고, 즐겁지도 않은 새로운 만남을 이어가며, SNS에는 내가 바라는 모습의 사람으로 나를 이미지 메이킹했다. 내 나름대로 나를 훈련시키는 과정이었다. 덕분에 나는 행복한'척'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 과정들에서 어쩌면 조금은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행복이 진짜 행복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 나는 이런 사람이야." 하며 나의 찌질한 속사정은 눌러 놓고 행복한 사람인 척하며 살아온 건 아닐까?


 몽파르나스역 앞 계단에서 순례길의 첫 출발지 향하는 기차를 기다리며 생각했다. 이 모든 감정에 진정으로 덤덤해지지 않는다면 나는 변할 수 없어. 처음이란 원래 이런 거야. 어색해도 괜찮아. 길을 잃어도 괜찮아.












산티아고 순례길의 가장 대표적인 프랑스길 루트는 프랑스 남부의 생장 드 피에 드 포르(Saint jean pied de port)에서 시작된다. 파리 몽파르나스역에서는 생장까지의 직행 기차가 없어서 프랑스길을 걷는 사람들은 대부분 바욘(Bayonne)을 거쳐 생장으로 이동한다. 나 역시 바욘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기차역으로 향했다. 배낭을 멘 순례자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하고 누가 봐도 한국인인 순례자들도 여럿 눈에 띈다. 대략 800km의 순례길에서 아주 느리게 걷거나, 아주 빠르게 걷지 않는 이상 평균적으로 20km~25km를 걷는 이 길은 처음 시작을 함께 한 사람들이 완주 때까지 좋든 싫든 계속해서 마주칠 수밖에 없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계속해서 마주칠 사람들이라면 당장 내일부터 시작될 순례길에 익숙해질 때까지라도 함께 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안녕하세요~ 한국인이시죠?"라며 넉살 좋게 인사라도 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그만두기로 한다. 고작 어제 '처음'이라는 이 감정을 떨리는 채로, 어색한 채로, 겁나는 채로 그냥 두기로 결심했으니까.




 역 앞 노천카페에서 커피 한잔 시켜놓고 버스 시간을 기다리던 와중 내 결심이 무색하게 옆 테이블에 앉은 한국인 아주머니가 자연스럽게 말을 건네 온다. 언뜻 봐도 무거워보이는 커다란 카메라를 목에 건 아저씨도 어제 낮에 버스에서 나를 보았다며 빠르게 말을 보탰다. 두번째 순례길이라는 아저씨는 어제 본 내 어깨가 빨갛게 쓸려 있던 것이 배낭을 잘못 멘 탓이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더니, 멀리서 지나가는 한국인 남학생에게 손흔들어 불러놓고 기어코 내 배낭이 놓인 의자에 앉혔다.


 그렇게 의도치 않게, 생장 행 버스에 오르기 전 모인 한국인은 이 모임의 주도자인 아주머니와 아저씨를 포함하여 아직 앳된 얼굴을 한 남학생, 공무원 합격 후 발령이 나기 전에 순례길에 올랐다는 언니와 젊은 목사 부부 그리고 어색하게 섞여있는 나까지 일곱. 얼떨떨하게 그 모임의 일원이 되어 생장에 도착했다.



그래 뭐, 이런 처음도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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