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헤어지잔 말은 네가 먼저, 헤어지는 건 내가 먼저

by 씀씀

[전 편에서 이어짐]


| 이럴 줄 알았으면 수학 공부 좀 해둘걸. 수포자 출신인 게 이런 데서 가 날 줄이야.


아무리 계산을 해도 답이 안 나왔다. 언감생심 내가 받은 상처만큼 돌려주겠다는 야무진 꿈은 꾸지도 않았다. 그저 꼭 목구멍에 걸린 생선 가시 같은 그런 걸, 그 여자 인생에도 하나 걸리게 하고 싶은 맘었다.


"오빠도 힘들겠다. 어떻게 그런 사람이랑 한 집에 살아? 언제고 오빠 결혼할 때, 그런 여자가 오빠 엄마랍시고 혼주석에 앉는다는 거 아니야. 나한테는 무슨 년 어떤 년, 너를 죽이네 어쩌네 한 입으로 어떤 여자한텐 우리 아가 하면서 세상 인자한 시어머니 코스프레 할... 소름 끼쳐. 내가 하는 말 오빠 혼자 들으라고 하는 거 아야. 큰엄마한테 전할 수 있으면 전해줘. 팔자는 나보다 거기가 더 센 거 같은데 자기 객관화가 너무 안되 있으시더라"


집 앞 슈퍼에서 계산이나 하라는 말에 이 자리가 어떤 자리고 하는 건 까맣게 잊고 모든 신경이 큰엄마를 향했다.


그러고 보면 큰엄마한테 안 들어본 말이 없었다.


"딸만 둘이면 어? 양자를 들여서라도 아들이 있어야지. 왜 너네 부모님은 딸 둘 낳으시고 마신 거라니? 집엔 아들이 있어야 해. 알겠니?"


"난 5남매거든? 오빠 둘에 언니 둘. 그래서 봐라, 지금도 친정에 아무것도 안 해. 이 나이 먹었어도 다 오빠들이 해. 아직도 정~정하시니까"

"너 결혼해서 어디 아들 낳을 수 있겠니? 그것도 유전 무시 못 하는 걸 텐데"


원래 어딘가를 너무 심하게 다칠 때, 당장 그 순간의 아픔은 미미한 법. 놀라서인지 실감을 못 해서인지 그 무덤덤하니 대수롭지 않던 아픔이 통증으로 느껴지는 건 얼마 후부터다. 욱신거리는 빈도가 늘어나고, 어디 스치기라도 할 낯이면 소스라치게 되고 상처는 파이고 덧나고, 멍은 점점 더 커지고.


근데 내가 몰랐던 게 있었다. 그게 몸의 일만이 아니라는 거. 몸이 그럴진대 마음라고 다르겠냐는 거.


큰엄마에게 직접이든 오늘처럼 그 통해서든 날 두고 모진 말들을 게 돼도 한하게 아무렇지 않았다. 그냥 읭? 싶길래 기분은 나쁜데 아프진 않길래, 그것들이 다 너무 억지고 생떼고 트집이라, 말 같질 않아 그런가 보다 하고 내버려 뒀랬다.


근데 그게 괜찮아서가 아니라 사실은 몸과 똑같은 과정이 필요했던 라니. 단지 그 순간 실감이 안 났고, 이게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말과 아닌 말 중 후자에 속는 내용이라는 과 얼마나 야만적인 언사였는지를 인지하는데 시간이 걸던 것이라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게 좋을 말들이니 그러고자 부단히 노력했는데, 가슴까진 안 보내려고 무던히 애썼는데, 별 탈 없길래 다행히도 떨쳤나보다 했는데 웬걸.


결국 큰엄마는 날 죽이겠다던 그 말을 지킨 셈이었다. 그것도 칼 한 번 안 들고, 본인 손엔 피 한 방울 안 묻면서 말이다.




그럼 난 이제 어떡해야할까. 다친 게 언젠데 아픈 건 이제 알았고늘 헤어지기까지 했으니, 이거 낫게 하려면 무슨 약을 먹고 어떤 연고를 발라줘야 할까. 머리가 지끈지끈한 게 취기나 얻으면 될 술집에서 엄한 두통만 얻어가게 생구나.


술집의 술을 다 먹겠단 아까의 패기는 온데간데 없었다. 그 빛나던 얼굴에 자꾸만 그 여자 얼굴이 포개져 더는 앉아있기가 힘들었다.


큰엄마한테 그 꼴을 당했으면 더는 못 하겠다는 말은 그가 아니라 내가 먼저 해야 하거늘, 그러지도 못 해 거기다 헤어지기 싫어 울기까지 하고. 사람이 이렇게 대책 없이 한심하고 한계를 모르고 쪽팔리는 짓만 할 수도 있는 걸까.


안 되겠다. 먼저 일어나기라도 자.


"잘 지내라는 말은 죽어도 못 하겠어. 내가 그렇게까지 착하면 말이 안 되잖아. 살면서 벌 받아. 내가 이 한 몸 갈아 넣어서 모자지간에 영화 같은 스토리도 하나 만들어줬겠다, 어디 한 번 당신들이 받은 것도 상처랍시고 안쓰러워하면서 서로 보듬고 잘 살아봐. 끼리끼리 만나야 되는 건데, 나 만나기엔 오빠네가 너무 후졌다. 특히 그 엄마가 너무 수준 미달이야. 다신 보지 말자"




보도블록아 너도 술 마셨어? 왜 이렇게 일렁거려. 너가 안 그래도 걷기 힘드니까 가만히 좀 있어주라. 그리고 네온사인! 너네들도 오늘은 좀 적당히 빛나고. 아무리 실연한 여자여도 이 거리에서 지금은 내가 제일 반짝여야 되거든? 뒤에 그 사람이 보고 있단 말이야. 마지막 뒷모습이어도 나 그거까지 예쁘고 싶어. 그니까 힘 좀 빼래?


나를 부르며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고, 쳐다보는 시선들이 느껴졌지만 멈출 생각도 돌아설 자신도 없었다. 그의 마지막 말을 들어선 안 될 것 같았다. 지 그랬다 다 큰 여자가 길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운다는, 속 모르는 사람들의 수군거림까지 듣게 될 것 같아서였다.


보도블록도 네온사인도 외면한 그 밤, 나를 도운 건 택시였다. 그 택시 잡기 힘들다는 종로의 밤 한가운데서,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마냥 내 앞에 서주다니. 이거 혹시 김연우가 탔던 그 이별택시인 걸까.


그럼 나도 이제 "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 물으면 되는 건가. 그렇게 달리고 달리다 이 택시에서 내리면 이 이별도 다 끝나 있었으면, 그런 거면 진짜 좋겠다. 그쵸 아저씨?


[다음 편에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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