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에 쓰고 오늘 옮기는 글)
변태 같을 발언이지만, 겨울 금요일의 당번 근무는 낭만적이다. *당번: 새벽 6시 반 출근하여 저녁 8시 퇴근
평소 아니 평일의 당번이라면 다음날 출근 걱정과 몰려올 피로에 낭만은 얼어죽을. 시계 보며 발 동동 구르는 것이 일쑤지만 금요일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다음날이 무려 토요일 아니던가. 적어도 출근의 부담에서만큼은 한없이 자유로운 날. 거기다, 겨울이라 해까지 짧아져 나 있는 곳만 환하고 창밖은 캄캄하다면? 금요일답게 모두 칼퇴를 했다면?
그렇게 맞이하는 저녁의 당번이란, 흡사 우주에 혼자 남겨진 느낌 같기도 한 것이. 여하튼 여느 날의 그것과는 달리 고요하고 축축하며 나른하니, 내가 퍽 즐길 줄 아는 시공간으로 세팅되는 것이다.
오늘 역시 그 변태적 낭만에 한껏 취해 정신이 아득해지려는데, 피곤해선지 외로워선지 배고파선지. 종일 잘 버텨놓곤 별안간 훅. 당이 떨어진다.
겨우 이런 상황에 꺼내기엔 너무 거창한 말이지만. 죽으란 법은 없다더니, 때마침 눈앞. 노트북 옆에서 피어나는 영롱한 빛이 내게 윙크하니. 회사 언니가 아침에 준 초콜릿이다.
작고 소중한 이것은 무려 오늘 나의 첫 음식. 귀하다. 조심조심 아껴 먹어야지는 개뿔. 입에 털어 넣기 무섭게 난 초코고 이건 당분 덩어리야! 외치는 맛이니, 정신이 번쩍 드는 동시에 불쑥 드는 생각. 아 오늘 밸런타인이지 참.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밸런타인을 다 까먹고! 나도 나이가 왕창 들었구나! 사는 게 바쁘구나! 이런 낭만 한 쪽을 새까맣게 잊다니… 하는 전개가 나와줘야 자연스러울테지만 나는 예측불가의 캐릭터.
밸런타인 데이를 별안간 인지한 순간 든 생각은, 이런 기분은 처음이다라는 것이었다. 왜냐, 이런 날 회사 사람들을 안 챙기는 나 자신이라니. 세상 낯설었기 때문.
그도 그럴게 매년 밸런타인, 빼빼로데이 그중 하나는 잊지 않고 손수 포장에, 손글씨로 쓴 쪽지에 마음을 다해 챙겨 왔더랬다. 누가 바란 적 없고 시킨 적 없고, 순전히 내가 좋아서 하던 일. 언제 해도 설렜고 짜릿했고 행복했다.
헌데 그런 내가 올해. 오늘. 처음. 나의 기쁨인 그 의식을 자의로 거른 것이니. 어찌 내게 빅뉴스가 아닐까. 그런데 그렇다면 대체 왜? 변하기라도 한 거냐고?
놉, 전혀.
나는 여전히 사람 챙기기 좋아하고 주는 것이 즐겁다. 달라진 거라면 한 가지 차이가 생겼다는 것인데. 전엔 몰랐던, 내가 좋아하고 즐기는 그 일들을 ‘더’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버렸다는 것 되시겠다.
나이 들며 알았다. 사람 사이 일은 행위일 때보다 작용일 때, 의미가 있다는 걸. 마음, 대화, 감정. 모든 게 다 일방적 보다는 쌍방일 때, 보다 가치를 지닌다는 걸. 조금만 생각해 보면 진부할 만큼 당연한 일. 상호 작용이어야 에너지를 낼 수도, 얻을 수도 있는 법.
그걸 알자, 그동안에 니의 그것들은 작용이 아니라 혼자만의 행위였다는 깨달음? 아니 외로움에 생각이 이르자, 이번엔 멈춰졌다. 다르게 말한다면, 해맑게 내 마음을 전하고 그걸로 용건 끝! 해버릴 용기가 없어진 것 같기도 하다. 나도 사람인지라, 한 번쯤은 내가 주는 마음에 대한 고마움을, 같은 관심을, 성의를 돌려받고 싶었던 것도 같고.
지난날 내가 나눠온 것들이 대개 그러했듯, 회사 언니가 나눠준 아침의 초콜릿 두 알도 아마 받은 이들에겐 일상적인 것으로 여겨지리라. 그러니 언니가 줬다고 어느 날엔 언니가 받게 되는 일. 그런 상호 작용은 없다기보단 드물 것이다. 생각보다 세상은 그렇게 세심하거나 정확하지 않으므로.
그러나. 여기서 꺼내기엔 또 거창한 말이지만 그거 하나 더 하자면, 인생 살아봐야 아는 일이랬으니. 언니의 행위가 행위로 끝나는 일은 이제 과거의 일일 뿐. 언니의 행위를 쿵짝쿵짝 달큰할 작용으로 손뼉쳐 줄 나를 만났으니 말이다. 이제 그녀의 세상 1m 정도는 스무스하게 달라지리라. 세상의 평균보다 세심하고 정확하며 무엇보다 따뜻한 내가 여기 있는 이상, 확실하다.
회사 언니가 준 달달한 초콜릿으로 시작한 하루. 언니의 두 꼬마 신사에게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보내며, 이만 퇴근한다. 언니네 집의 또 다른 남성 한 분이 고민인데, 형부는 언니의 남자니까 언니가 맡으시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