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첩장에 담지 못한, 담을 수 없던 글

익스큐즈미, 신혼여행 왔습니다 11

by 씀씀


제게 결혼은 그랬습니다.


철 없이 따라 하던 소꿉놀이이자 빨리 어른이 되고 싶던 이유였습니다.


나의 만남이라면 누구와의 것이든 제일 먼저 출석부터 하는 성실한 결말이었으나, 번번이 빈 손으로 돌아가게 만듦에 아픈 손가락이기도 했죠.


결혼은 나를, 옛날로 치면 슈퍼스타K, 요즘으로는 싱어게인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으로도 만들어 줬습니다. 내 남편으로 데뷔 시키기에 이 사람 괜찮겠다 싶은 연애도 있었고. 얘랑 부부가 될 바에야 혼자 살고 말지 하는 마음고생도 있었습니다.


제 또래라면 누구의 옛날이든 비슷했을 겁니다. 초등학생 중학생일 때. 서른이면 아내가 되었겠지. 엄마일 지도 몰라. 남편은 어떤 사람이고 아이는 누구를 닮았을까 하는 상상이 자연스러웠습니다.


그 시절은 학교 숙제도 '10년, 20년 후의 내 모습'을 써보란 것이 많았습니다. 베끼거나 돌려본 것도 아닌데, 반 친구들 내용이 대개 비슷했으니 '가정을 이뤘다'란 예상과 추측이 꼭 모범답안과 같았습니다.


세월 덧없다더니. 까마득한 미래 같던 서른이 급기야 왔고, 또 지금에서는 한참 전에 간 것이 됐습니다.


왕년에 허구헌 날 시뮬레이션 해야 했던 서른이 진짜 됐을 때. 나는 어땠냐면요. 3년 만난 남자와 장엄히 헤어졌으니 결혼은 무슨. 엄마? 웃기네. 거기서 열 발은 더 물러서 버렸고. 타이밍도 기가 막히니. 그즈음 내 나잇대를 가리켜 '삼포세대‘라 불렀던 것 같습니다.


그 옛날, 본인의 서른을 점쳐보라한 과제의 채점기준이, 과제 내용과 진짜 서른의 모습이 얼마나 부합하는가였다면 나는 우리 반 최하점을 맞았을 겁니다.


당시의 내가 더 부지런하고 이벤트를 좋아하는 학생이라 타임머신 놀이 하겠다며, 그 과제를 묻어놓기라도 했다면, 그래서 서른에 짜잔! 확인이라도 했다면 그걸 본 나는 웃었을까요 울었을까요.


결혼서 멀어졌어도 모름지기 여자에게 웨딩이란, 생각만 해도 콧구멍 간질거리는 이벤트. 드레스는 이런 스타일이 좋겠다가 한 살마다 달라졌고 신부 입장곡 후보 정하는 일은 늘 치열했습니다. 물론 어디에도 말 않는 혼자만의 전쟁이었지만요.


서른의 이별 후 다음 사람을 만나기까지 4년. 내가 가장 예쁘고 생기로웠다 자평하는 나이인 그 네 번의 해 동안 나는 오는 인연을 굳이 막았습니다. 온 사람이 없으니 잡고 말고 할 가는 사람 역시 있을 수 없는 일.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나 싶은, 그때는 혼자가 좋아 그랬던 허송세월을 거쳐. 드디어 서른넷에, 결혼 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이 생겼으나. 결혼이 아닌 결혼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 이건, 회고록이 아니라 결혼을 알리는 글임을 분명히 하는 바입니다.


그쯤 되니, 그 나이쯤 되니, 그 경험을 하니. 결혼은 이제 환상도 동화도 현실도 아니어졌습니다.


남녀 만남의 결실과, 연인 교감의 결말이 결혼이면. 암만 딴딴한 만났고 손 끝만 닿아도 통했기로서니 ‘딴따라라’ 못 하면 다 끝이 돼뻐리는 거니까. 연애란 거에 너무 동기 부여가 안 되더라고요. 소모적이잖아요. 인풋 대비 아웃풋이 그럼 안 되는 거잖아요.


근데 나도 대단한 가스나인 게, 그 난리통을 겪고도 사랑에 회의적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이왕? 아니 귀하게 태어났고. 모나지도 못나지도 않았는데, 웬만하면 내 삶도 남들 하는 건 해보고 가자는 마음이 그걸 지탱해줬습니다.


또 한 해는 고사하고 한 달, 하루가 다르게 연로하시는 나의 두 어르신을 보고 있자니. 건강하실 때 다른 집 딸들처럼 결혼하면 오죽 좋냐는 장녀로서의 효심도 강했기 땜시롱 그 굴곡에도 딱 하나. 비혼의 길로는 발이 가질 않았습니다. 아마 그게 잘한 모양입니다.


그 결혼을 제가 이제, 이리 하려 하니 말입니다.


저 결혼합니다.


이 사람과 하려고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는 너무 합리화겠죠?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게 퍽 잘했다 생각할 정도의 선한 인연입니다.


결혼이 제게 어떤 것이었다는 이야기를 길게 가져왔습니다만, 그와중에도 아직 고백 안 한 것이 있으니.


제가 드레스보다 예식장보다 신부 입장곡보다 더 오래전부터 궁금했고 무조건 최고의 것이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 있습니다. 결혼을 알리는 글입니다.


결혼을 하게 되면, 내가 쓸 수 있는 가장 고운 말로 귀하고 환하게 인사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지도, 감히 연습해보지도 못했습니다.


청첩장을 받을 때면 아무 상관없는 내 호흡을 늘 다듬고 읽었습니다. 이 글은 누가 썼을까. 쓰는 때의 마음이란 어땠을까.


청첩장에서 읽힘이 행해지는 건 대부분 일시와 장소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니 제가 지금 기행을 하고 있다는 것 역시 죄송하게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요점만 간략히 용건만 간단히. 그러면서도 근사히. 얼마든 쓸 수 있으나, 굳이 아무도 가지 않은 이 길을 저는 왔습니다. 아무도 하지 않는 데에는 역시 이유가 있다는 건, 이 기회로 다시금 새기겠습니다.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제 결혼은 동화 같지 않고 축제이지도 않습니다. 단출하고 소박하며 고즈넉할 것입니다. 앞으로 사는 일 또한 그렇겠지요.


그리 살고 싶었는데, 그리 살 수 있는 그리 살겠다는 사람을 만났음에 귀합니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사람됨과 다 여물지 않은 사랑과 다 보이지 못한 신뢰를 부부로 살며 채우고자 합니다.

서로에게 아낌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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