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에서는 원래 싸우는 거라면서요

익스큐즈미, 신혼여행 왔습니다 4

by 씀씀


서른아홉 9월. 결혼을 했다. 마치 새 신부 타이틀은 30대에 쟁취해야만 한다는 듯. 마흔 되기 전 부랴부랴.


신혼여행을 위해 지난 여름 아껴둔 휴가에 결혼 휴가를 붙였고, 그 뒤는 연휴가 받쳐주는 덕에 나는 지금 무려, 18박 19일의 허니문 중이다.


그 19일의 여정을 앞둔 어느 날. 누군가 한 말이 있으니. 신혼여행을 3주 가까이 간다기에 놀랐단다. 걱정인형인 나에게는 그 말이, 회사 자리를 그리 오래 비워? 하는 뉘앙스로 받아들여졌고, 그 순간. 아무렴 월급이 중요하지 한때일 위약금이 대수랴. 일정을 좀 줄여야 하나? 판단의 기로에 서려는데, 그 사람이 바로 이어 말했다.


나는 신혼여행 첫날부터 싸웠는데.


말 끝나기 무섭게 그 옆 사람도 거드니,

나는 도착하자마자…


그러니까 그 둘이 한뜻으로 한 말이란,

“그런 걸 3주씩이나?(괜찮겠어?)”


-


애니웨이. 나는 내 평생 가장 멀리 날아와 지금은 그 허니문 5일 차로, 지금부터는 어제의 일이다.


남자친구… 로 4년을 불리고 지금은 남편인 남자는 첫 나라, 첫 도시의 마지막 날 한국에서도 한 번 안 걸리던 지독한 감기몸살에 넋을 내주고 말았다.


어제 당시 겨우 결혼 7일 차. 결혼이 실감 난다기엔 너어무 시기상조. 그럴 만한 에피소드도 없었거니와 아직은 부부로서 겪은 게 없는 상황에서 예기치 못한 그의 아픔이 내게는 첫 계기가 됐으니.


나는 빠르게 내 상황과 역할, 도리에 몰입했다. 아, 내 가족이 아프구나. 내 남편이 힘들구나. 나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책임감과 무게로써 이 사람을 보살펴야 한다. 그게 내 의무고 내겐 그럴 이유가 충분하구나.


하지만 줄곧, 곧잘 하던 내조와 배려도, 신혼여행을 온 새신부라는, 아주 고리타분한 역할이 내 발목을 잡았다. 이를테면 더 설레야 하는데 이게 뭐람! 더 즐겨야 하는 마당에 나 왜 병수발이람이랄까?


사실 간호며 수발이랄 게 뭐 있겠는가. 걱정하고 살피고 하는 게 전부일 뿐. 하물며 남편인 남자는 온몸이 불덩이로 밤새 앓으면서도 본인보다, 아니 웬만한 사람보다 영어 앞에 한참을 기죽는 나를 생각해 펄펄 끓는 몸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고 말이다.


뭐 그런 차원에서라면 그건 나도 마찬가지일 거다. 최대한의 배려와 관용. 한편으론 어떤 식의 포기?를 기꺼이 했으니까. 이 도시에서는 마지막 날이지만 허니문은 내게, 우리에게 아직 이주가 남았다는 사실이 위안이잖아. 남편은 그 안에 반드시 나을 거잖아. 곱씹으며 한 번 왈칵 서운할 때마다 내 딴엔 참았단 얘기.


가 끝까지 이어졌다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은 늘 마음보다 그릇이 작으니. 어제 결국 팡파르가 팡팡 퐈르르 터지고 말았다. 이건 뭐 대판 대판, 대환장 파티로 싸워버렸고. 나는 호기롭게도 먼저 등을 지고 숙소를 나서기까지 했…


대체 이 겁 많은 강원도 촌년. 대한민국 타지도 혼자의 여백을 즐기기보단 함께를 즐거워하는 애가. 이역만리, 아니 그 이상? 날아온 타국에서 혼자 걷고 보고 한다니. 말이야 소야 싶은 일이, 구글맵 아니면 가능이나 했겠냐고. 파파고 아니었으면 무슨 자신감으로 싸웠겠냐고.


그렇게 나선 길. 마흔을 낼모레 앞두고 처음 하는 경험에 참 생각이 많을 줄 알았으나. 그 생각이란 게 엄청나다가도 일순간 명료해지니. 결론은 재미없다. 얼른 들어가야겠다. 아, 근데 저 친구(남편) 이제 감기가 코까지 갔던데 그거 약은 사가야겠다.


구글맵에서 약국을 찾으며; 가본 적은 없지만 참 중국만큼이나 외국인 입장에서는 보수적인 것 같은 이 나라에서 약국을 ‘에자네’라고 부른다는 걸 알게 될 만큼 남편 된 사람의 약을 사려 돌아친 것은 사랑? 책임? 의리? 그중 무얼까. 생각해 봤는데. 이건 말이지. 이제 한 남자의 아내가 된 나의 본능으로 마무리.


디스원 디스원. 하우머치. 땡큐. 그렇게 콧물약과 해열제를 사들고 이럴 거면 뭐 하러 싸웠나. 이제 우리도 물을 베는 기술자들이 되는 건가 생각하며,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홀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하필이면 남편을 보고 말았는데 그게 글쎄.


그 친구 손에 꽃이 들려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춰서 울었다.


그치만, 그러면서도 달려가 와락 안기거나 안지는 않았은 것은 너무 괘씸해서. 너나 나나 이럴 거면 뭐 하러 싸웠냐. 왜 안 꺼내도 될 칼을 들고 물을 벴냐. 블라블라 하는. 누구를 향한 원망일지 모를 자조가 눈을 자꾸만 시큰하게 했다. 저 바보, 저 웬수.


그렇게 어젯밤의 끝. 내가 사 온 약은 호텔 화장대 위, 청록색 불투명한 봉투에 존재를 감춘 채 무심하게 던져져 있었고, 그가 사 온 꽃은 내 머리맡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나는 그 꽃에 가진 힘을 다해 무심했고 내가 사 온 약은 최선을 다해 숨기었다.


그러는 밤새. 당연하지만 불행히도 꽃은 시들었고 다행히 그의 콧물은 덜해졌다.


잘 잤어? 그 말로 모든 것이 상쇄. 우리 부부의 싸움은 약도 꽃도 거들 것 없이 스스로 힘을 잃었다.


꽃 고마워라고 하면 좋을 일을. 꽃은 왜 샀어?라는 정직하지 못한 말로 시작한 내 이야기는 꽃을 들고 가는 네 뒷모습을 봤다, 너도 참. 근데 나도 참. 나는 그러고 나와 간 곳이 너 코 훌쩍 거리길래 그 약 사겠다며 향한 약국이었거든? 등으로 이어졌고. 그때부턴 더이상은 다른 도리가 있을리 없었다. 다툰 끝이 서로 생채기는 언감생심. 나는 약, 너는 꽃이지 않던가.



산다는 게. 부부라는 게 이런 일상의 드문드문한 반복이고 기적 같은 보살핌의 연속인 거겠지?


드라마였으면 차라리 말이 됐을. 근데 또 드라마였으면 으, 너무 뻔해 작위적이야 역시 드라마라 했을 그런 일이, 나의 어제에 생겼다.


행복하자 잘 살자 그런 흔하고도 어려운 다짐과 각오는 안 할란다. 그저, 남자와 여자. 사람과 사람보다도, 그 바깥을 좀 더 아우르는 두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겁나 어렵고 무겁고 깊은 것임을 알지만, 일단 도전은 해볼란다. 패기와 광기와, 신혼이라는 치기로!


-


지금은 신행 5일 차. 다신 없을 나의 젊음을, 가난한 신혼부부에게 당분간은 없을 조금의 호사를, 오롯이 우리 둘 서로와 구글맵, 구글, 네이버에만 마음 놓고 기댈 수 있는 이 염치없는 의존을. 될 수 있는 선에서 최대치로 누려야겠다.


우리의 사랑이 빨간색이든 핑크색이든 하늘색이든 중요치 않다. 우리 부부의 인생이 해피엔딩이든 새드엔딩이든 그 역시도 마찬가지. 그게 희망일 때도 절망일 때도 무어건 얼마든이건 달게 함께하리라는 약속. 그게 결혼이었고, 부부로서는 아직 사춘기 소년소녀보다도 못한 남편과 나는 대견하게도 그걸 알고 있다.


그래서 말인데 알아둬. 다시 싸울 땐 꽃으로 안 될 거야. 물론 너도 다음 싸움에 아파줄 일은 없겠지만.


덜 힘들게, 되도록 곱게 살아보자 한 번.


작가의 이전글라면 십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