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 덕으로 사는 나라 아냐?

익스큐즈미, 신혼여행 왔습니다 7

by 씀씀


#2. 진짜 조상 잘 둬서,
조상 덕으로 사는 나라 아냐?


나다. 위험하고 경솔하며 편협하기까지 한 위 발언의 주인공. 어디까지나 내 기준으로, 관광하기에 썩 쾌적하거나 편하지 않던 이집트의 이국적 면모들에 한껏 지치고 뾰족해져 튀어나왔던 말로, 하던 순간에 만큼은 진심이었던 말이기도 하다.


얼핏 건조해 보이게 쓰고 있으나, 사실 신혼여행 리뷰를 시리즈랍시고 몇 편에 걸쳐 남길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나도 모르게 뱉어진. 정말 무심결에 하게 된 저 한 마디때문일 만큼, 내 스스로에게는 파장이 엄청난 말이었다.


그도 그럴게 내 나라를 두고 한 말이라 해도 예의가 없는데. 어디 내 나라 망신되라고 남의 나라. 것도 감히 그 조상님까지 언급한단 말인가. 버르장머리 없는 말인 건 말할 것도 없는데. 와중에 일부분 사실인 것도 같으니 틀린 말 했다 하기도 뭐 하고.


도통 입에 맞을 기미가 안 보이는 음식. 거리를 점령한 클락션 소리와 파리. 뽀송히 나갔거늘 온몸은 금세 담배 냄새와 매연 범벅. 이집트에서 발명된 건 아니지만, 길에 똥을 밟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거라던 하이힐의 탄생 비화가 단번에 이해 가던 거리. 도로에 정신없이 얽혀 있는 승용차들과 그 사이를 자유자재로, 하지만 곡예하듯 건너야만 하는 사람들… (마지막 부분만 빼고는 튀르키예도 다 해당 된다)


피라미드 아니면 이집트를 올 이유가 있나? 사막이야 다른 나라에도 있으니까 대체제가 있고. 나 또한 피라미드 때문에 온 터. 그게 아니었다면 글쎄. 굳이 와보고 싶다는 마음을 들게 하는 나라는 아니었을 것 같은데. 직접 와보고 피라미드도 봐본 결과. 이 넓은 땅덩이에 본 건 일각인데도 또 올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에 힘이 실린 며칠.


주제넘게. 이게 무슨 경우인가 싶게. 검은 머리 외국인인 내가 속이 상했다. 이 나라 어르신들이자 인류의 조상들께서 이룩하신 거룩한 역사를 보는 일에, 어쩌면 내 인생 가장 멀고 긴 여행의 찬스를 고민 없이 썼는데. 존경으론 안 되는 경외심을 갖고 온 곳인데. 이렇게나 발전한 현대 과학과 기술로도 풀지 못하는, 현존하는 몇 안 되는 유적을 가진 나라의 모습이 더 근사할 순 없는 걸까. 왜 가난해야 할까. 관광이 국가에 큰 축일 텐데. 어찌해 여행자들에게 친절하고 따뜻하지 않을까. 피라미드가 있는 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올 것임을 알아서 그런 걸까.


이집트 비교군으로 제시할 데이터들이 있으면 좋겠다만, 해외여행 겨우 6개국 차. 가진 경험치가 너무 소박하고 무엇보다 대륙이 달라지는 경험은 이번 신혼여행이 처음이기에. 마! 내가! 어데도 가봤고 저데도 가봤는데 마! 힘 잔뜩 주며 말하기에는 상당 부분 쫄린다.


허나 내 적응력과 위기 대처 능력, 비위 또한 일종의 데이터이자 기준점이기에, 나로 실험한 그 결과치를 쓰는바.


나는 남들이 보기와는 다르게 환경에 대한 한계점이 꽤 높고 더디게 온다. (운동 제외) 쪼금도 못 참을 거 같이 생겨서는 바득바득 남아있으니. 보는 이들은 멘탈 세다 오해하지만, 속은 시작과 동시에 만신창이. 그저 견뎌야 살 수 있다고 하니 버티는 것. 멘탈 그런 건 완전 와인잔 유리고, 그냥 삶에 대한 맷집이 그럭저럭 쓸만할 뿐이다.


물론 그런 나란 한들. 손실만 없다면야 바로 두 발 벗고 꽁무니를 빼지만, 리스크가 자명하다? 허허, 은행나무 침대의 황장군처럼 그곳을 지키며 살아왔다. 그 세월이 자그마치 얼만데 튀르키예에서 두 번. 이집트에서 두 번. 그냥 인천 갈까? 신랑과 얘기했더랬으니. 너희는 대체...


그래도 이집트는 사하라라는 감동이라도 있었지. 사람들이 입 모아 찬양하는 튀르키예에서 우리 부부는 이렇다 할 감동을 느끼지 못했기에 논할 생각도 없는 지라, 이렇게 이집트만 쓰는 참인데. 너무 한놈만 패는 것 같아 미안하다.


그런데 사실 이건 패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무려 배움과 사색을 준 나라. 나는 그걸 잃기 싫어 남기니, 이것이 그 증빙이다.


다른 부부의 허니문에선 어떤 것이 가장 무거웠는지 모르겠다. 내 허니문의 무게추는 이랬다. 부부로서의 시작. 다신 없을 환희와 잊어선 안 될 약속을 나누고 새기는, 좋은 것 맛있는 것을 함께 하는 꿈같은 시간으로의 무게보다는, 여지껏 몰랐던 내 모습과 애인일 때는 발견 못한 남편을 찾았다는 의미.


또 내가 태어나 살던 나라를 제일 멀리 떠나온 땅에서 낯선 삶을 보며, 내 일상을 반성하고 돌아가서의 내 하루를 기름칠했다.


달콤해서 당장 녹아도 이상하지 않을 사랑이 진해졌다기보다는, 쌉싸름하고 돼직한 것이 뭐랄까. 연인으로서의 시절이 서울이었다면 부부로서의 삶은 이집트 같을 거라는. 연인 때보다는 더 와일드하고 버라이어티하며 보다 적나라한 서로를 마주하는 시간일 거란 하늘의 신호를 캐치했달까.


내가 느낀 것들이 신혼여행이 한 일은 아니라 생각한다. 이집트여서 줄 수 있던 결혼 선물이라 여기지. 물론 이집트 아닌 다른 나라. 많이들 가는 하와이,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등. 더 반짝이는 나라들에 갔어도 나는 그 나름의 무엇을 얻었을 것임을 알지만, 신혼여행지를 정하던 홍은동 삼겹살집으로 다시 돌아가도 내 선택은 똑같을 것이다.


"이집트?"

"이집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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