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가지에도 순정이 있다

익스큐즈미, 신혼여행 왔습니다 8

by 씀씀


여권에 얼룩덜룩한 면보다 순수 종이가 많은, 여린이인 나도 이것만큼은 안다. 아무리 좋은 게 여행이어도 극소수의 나라를 제외하곤, 음식 이슈가 누구에게나 골칫거리라는 거.


여기에 나는 한 가지 더 보태고 싶으니. 음식이 입에 안 맞아 고생인 부분은 불가피한 일이라는 것이다. 로마 가면 로마 법 얘기가 괜히 있을까. 이것저것 다 따지면서 신중에 신중을 기해 스스로 선택했을 나라. 그곳 음식이 안 맞은들 그 나라 음식은 죄가 없다.


나는 차라리 그보단,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르란 그 말이 여행의 발목을 잡는다 본다. 그걸 따르며 여행하면, 어느 부분에서도 힘드네 어렵네 안 맞네와 같이, 순응의 반대 결에 해당하는 코멘트는 할 수 없기 때문.


내 허니문 나라들 역시 당최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이 애를 먹였으나, 그 덕에 한식의 소중함을 세포 하나하나에서 절감했고 우리나라 음식 잘하네 다시금 깨달은 것이;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큰 수확인 셈이니 그 점을 높이 사며, 음식 챕터는 여기서 줄인다.


그럼 다음 차례는 뭐냐. 여행의 숙명. 얹으려는 자와 덜려는 자의 숨 막히는 레이스. 바가지 되시겠다. 세상 참. 얄궂지. 나는 이미 고지된 금액이 무효가 되는 신박한 경험을 이집트에서 처음 해봤으니. 악명 높은 이집트 택시였다. 놀라운 건 우버가 그랬다는 거. 서울에서 미터기를 안 누르고 출발하신 기사님들은 더러 계셨지만, 늘 근사치의 금액이나 밑도는 금액을 결제하셨는데. 여기는 웬걸. 우버가 5년 동안 업데이트가 안 됐다며 6배 비싼 금액을 부르는데 우버 업데이트랑 우리랑 무슨 상관인지 설명부터… 결국 흥정에 흥정을 한 끝에 4배가 되는 금액을 지불하고야 택시에서 내렸으니. 실화인가?


아무리 흥정을 해봤자 어차피 웃돈. 그러니 우리가 선심 쓴 건데 기사 본인이 엄청난 호의를 베푼다는 듯하는 게 괘씸해서 더 기분 나쁘지만 이해할게. 그대 가정의 살림이 나아진다면 호구 한 번쯤은 돼줄 수 있어.


칼 모시기 시장. 거기 사장님들 듣던 대로 터무니없는 가격 일단 부르고부터 시작하시더라. 근데 더 신기한 건 거기에 반을. 반보다 더를 깎아도 오케이를 한다는 거야. 대간절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지? 원래는 얼마란 거야? 처음 부른 가격에서 오십육십칠십 프로를 깎았어도 현지인보다는 몇 배 비싸게 사는 걸 테지만, 그것도 이해할게. 어느 나라든 그런 거잖아. 우리나라에서는 손님이 왕이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다르잖아. ‘외국인’ 손님은 왕이 아니라 봉이어야 하잖아.


봤지? 나 되게 포용적이고 이해심 넓어. 정승 같이 버는 주제에 왈왈, 쓰는 일에 인색하지 않거든. 그런데 말이야. 바가지에도 장르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정통 바가지. 오리지널 바가지. 순수 바가지. 한 길만 가야지. 바가지에 반전이 있으면 어떡해. 정찰제 매장에서 바가지는, 선 넘은 거 아닌가?


손님이 줄을 잇고 단일 메뉴로 무려 5층 짜리 건물을 사용하고 관광객은 물론 현지인까지 사로잡은 맛집! 한국인 입맛에 가장 잘 맞는 이집트 전통 음식이라는 코샤리 음식점이 숙소 바로 근처였다. 입에 안 맞네 뭐네 했어도 다시는 못 할 경험. (다신 안 오겠단 소릴 이렇게 또 한다) 언제 이집트 음식을 먹어보겠냐며 여행 내내 가리지 않고 잘 먹으려고 했기에, 부푼 맘으로 갔다가 고픈 배로 나왔다.


여자의 촉. 그 감각계는 로밍을 안 해도 외국에서 역시 작동 이상무인가 보다. 가게를 나와 숙소엘 가는데 이상한 거다. 선불이라 계산은 이미 아까아까 마친 터. 꾸준한 쎄함에 초록 검색창으로 최근 포스팅을 들여다보니. 오 마이갓 내 코! 눈 뜨고 코를 베인 후더라.


상황은 그랬다. 가게에 들어서니 2층으로 가랬고 갔더니 3층을 가란다. 올라가니 4층을 가라기에 도가니를 짚고 마침내 도착한 5층. 인산인해 한편에 다행히 빈 곳이 있어 앉은, 가쁜 숨을 몰아쉬는 우리가 어느 점원의 먹잇감이 되었던 모양. 메뉴판도 안 주고는 주문을 받으러 왔기에, 메뉴판 달라했더니 코샤리 단일 메뉴란다. 오케이. 코샤리 두 개에 콜라 하나와 망고 주스 하나를 주문. 285 파운드를 달라기에 지불했다.


식사는 오 층을 계단으로 올라온 시간 정도 걸렸을까?


분명 단일메뉴랬는데, 다른 테이블에 있는 저 정체 모를 음식들은 뭔데! 궁금했으나 주문할 뻔했으나 코샤리 맛을 보고는 응 안 먹어도 될 것 같다며 나온 길.


전에 찾아봤을 때 코샤리는 900원인가 하는, 값은 저렴하고 양은 많아 이집트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라 했는데. 이게 왜 우리 돈 만원 가까이가 나왔지? 다시 찾아봤더니 조금 올라 코샤리 하나가 1,900원. 그럼 두 개래 봤자 3,800원. 뭐야 이건. 콜라랑 망고 주스가 얼마여야 해. 결국 또 바가지. 어제는 사진 찍으래서 사진 찍다 200파운드 뜯겼구먼. 어질어질했다.


그나마 와중에 다행이라면, 이집트 물가가 굉장히 저렴하다는 거. 그래서 그 숱한 바가지에도 경제적 타격감은 그나마 덜했다는 거.


그런데요. 이집트고 다른 나라고 이럴 거면 그냥, 국제적으로다가 모든 상점에 현지인 가격, 관광객 가격 따로 책정해서 표기 똭 하고! 판매하게끔 엠오유를 체결하는 게 덜 기분 나쁘고 간편하지 않을까요.


우리나라야 팁 문화가 없지만 팁 주는 거 괜찮다. 아깝지 않다. 여행이 그런 거 아닌가. 없던 문화도 경험하고 흠뻑 즐기게 되는 것.


강요하지 않아도, 최고가 아니어도 충분히 최선의 것이라 느끼고 마음이 전해진다면 '바가지'라고 이름 붙여질 금액보다 더 좋은 액수에 기분까지 즐거운 '팁', 서로가 흐뭇한 마음의 덤을 주고받게 될 텐데. 그걸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게, 그런 걸 알 새 없이 쫓겨야 하는 삶이 대륙을 넘어서도 똑같다는 게 아쉬웠다.


생각나는 대로 복기한, 정찰제 코샤리를 눈탱이 맞은 걸 안 후, 숙소에서 나눈 우리 부부의 대화.


"우리나라 장사하시는 분들도 바가지 좀 씌우셔야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 외국 나가서 바가지 쓰는 거 생각하면 그래도 될 거 같아. 비싼 나라에서 팁 주고 바까지 쓰고 해 봐 “


“튀르키예가 그랬잖아. 형제의 나라에 형제는 없다 “


"레알. 우리나라 너무 물러터졌네. 다 퍼줘. 물부터 공짜야. 심지어 셀프네 “


“밑반찬도 공짜“


"화장실도 공짜"


"국중박도 공짜"


"환승은 무슨 일이야…“


애국심 고취 어쩐담. 돈만 많으면 우리나라가 진짜 살기 좋은 나라라고 하던데. 우리나라 살기 좋은 나라인 건 이미 알았지만, 또 한 번 너무 알았다. 그러니 자 이제, 돈 많자. 돈 많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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