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회사 연말 포상의 한 부문을 수상했다. 대단한 영예가 따르는 쪽은 아니었고 귀여운? 포상금이 주어지는 상이었다. 사실 과에서 전자 후자 모두에 후보자로 추천을 해주셨기에,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다는 건 너어무 동화에 어울릴 전개니까 나는 좀 다르게 가면, 솔직하게 진심으로 전자를 받고 싶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나도 인간인 걸?
물론 두 부문 모두 나를 후보자로 올리신다는 것에 감사한 것도 당연히 진실. 그러면서도 아... 두 개 다 후보면 당연히 후자를 주지 않겠어? 최우수상 대상 공동 후보인 배우랑, 대상만 후보인 배우가 있어. 그러면 대상만 후보인 쪽이 대상 수상 확률이 훨씬 높을 거잖아? 하여 기대와 욕심은 일찌감치 내려놓았더랬다. 내가 둘 다 후보여도 될 정도로 열심히, 잘했다는 걸 과에서 알아주셨다는 것만으로도 2025년은 되었노라. 나 자신 쓰담쓰담.
인생사 공수래공수거라는데 나의 2025년사는 빈 손으로 시작해 포상금을 쥐고 마무리했으니. 이 정도면 제법 그럴싸한 엔딩 아니겠는가.
자. 그럼 이제 포상금 얘기를 해보자. 그렇게 받은 25만 원은 어떻게 쓰일까. 그 돈을 미래 지향적 소비를 위한 자금으로 통장에 두고, 계획 고민 생각을 하며 용처를 도모한다면 정말 섹시할 거야? 그런데 나는 이번 생에는 섹시하기란 그른 몸. 보나 마나 저 25만 원은 영광스러운 출신과는 다르게, 카드값의 노예라는 비참한 삶을 살게 될 운명.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했는데 나란 놈은 정승처럼 벌어서 개처럼 쓰고 사니. 왜 이러는 걸까. 안 그래도 목돈 나갈 일들이 산적해 있어 단돈 몇 천 원이 아깝고 아쉬운 상황에서 25만 원이면 얼마나 거금이고 동아줄인데. 그래 맞아. 카드값 일부에 일부라도 덜어주는 게 어디야라며 새삼 감격스러우려는데. 포상금의 쓰일 길이 정해졌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내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내가 복이 없지 정이 없냐 병이 도져버린 것이다.
카드값은 그날 가서 생각하고! 이 빛나는 25만 원은 나라는 하늘에 뜬 반짝반짝 작은 별(오글....)들에게 드리리라.
먼저 5만 원은 공교롭게도 그 전날 안타까운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신, 서로 안면은 없지만 오며 가며 얼굴은 알았던 회사 동료 분의 부의로 냈다. 정말로 하늘 제일 편하고 맑은 곳에서 쉬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10만 원은 어제, 마찬가지로 회사 분의 가족상에 부의를 했다. 어르신께서도 이곳 식구들 걱정은 마시고, 그저 편안하고 자유로운 시간 누리셨으면 좋겠다.
이제 남은 돈은 10만원.
그 중 5만 원은 그 사이. 새해 인사를 전하는데 보태었다. 나는 특이해서 내가 받는 건 아무렴 상관없으나 내가 주는 것에만큼은 성의 없는 것이 싫고 뻔한 건 재미없어한다. 그렇게 할 거면 하지 말자는 주의. 성의 없을 거면 신박하기라도 하던가, 뻔할 거면 정성이라도 들이자는 것인데.
그렇게 새해, 밸런타인데이, 빼빼로데이 1년에 3개 기념일을 매년 혹은 격년으로 챙겼더니 문제가 있었다. 해가 거듭될수록 내가 나이 듦에 따라 준비하는 체력 소모가 너무 크고, 준비하는 재정적 타격 또한 상당하며, 돌려 받자고 한 이벤트는 아니라지만 그래도 그렇지. 받는 기쁨이 없어도 너무 없고, 있어도 '감사합니다' 이 한 마디인데, 이건 너무 짧고 금방 휘발되니 서운하더라. 그게 반복되니 상처가 되더라. 해서 마음에 그림자가 지길래, 차츰 줄이게 됐던 것이 사실. 이라고는 하지만, 불과 3개월 전 신혼여행 갔다 오면서도 이미 한 트럭을 했고... 병인 듯 그냥.
우야튼 겸사겸사, 좋은 마음으로 새해 인사를 하고 싶어 무엇이 좋을까 고민하다, 복주머니에 간식을 담자! 정하고는 아이쇼핑을 하는데, 이미 복주머니부터가 개당 가격이 너무 사악했다. 거기에 간식까지 담으려면한 분당 만 원은 들겠는데, 그럼 십만 원이 훌쩍 넘는데? 그 정도로는 여유가 없어 나는...
아까운 아이디어지만 상기와 같은 이유로 다음을 기약하며, 조금 더 생각하기를 몇 분.
좋았어!
나는 당근 주스를 주문했다.
2026년은 말의 해. 말은 당근을 좋아하니, 당근 드시면 말이 알아볼 거다. 말의 기운 받아 잘 풀릴 거다! 하는 뜻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출근하여 한 분 한 분 나눠드렸다. 라벨지에 손글씨로 건강하시고 행복하시라고 쓴 뒤 동그랗게 오려 주스에 오려 붙이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짧고 소박하고 단출하게 끝난 이벤트요, 새해인사. 별 거 아니라면 아닌 마음이었겠으나 재차 알았다. 주는 기쁨이란 게 얼마나 뜨거운 것인지를. 나는 내가 준비한 이벤트에 스스로 되게 감격한다는 것을.
하나씩 나눠 드리고는 나 역시 당근 주스를 드링킹 했다. 그리고 오늘 새해 9일 차. 아직까지는 새해 복 감감무소식. 당근 빨이 전혀 없는 것 같은데. 말이 내게서 나는 당근 냄새를 못 맡은 것일까? 와라 붉은 말아. 나 받아야 할 복이 올해 너무 많단 말이다.
25만원에서 이제 남은 건 5만원. 이건 일단 조금 더 킵해두자. 아니면 오늘 신랑 저녁을 사줄까. 예를 들면 삼겹살에 소주? 신랑도 나의 작은 별이니까? 내가 좋아하는 메뉴는 맞지만 이건 나를 위한 지출이 아니야!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