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는 달리는 라디오다

by 씀씀


십 년 전쯤이려나. 먼 옛날. 친구가 톡을 해오길, 택시를 탔는데 기사 아저씨가 말씀이 너무 많아 힘들다기에.


나는 더없는 궁서체로, 그러지 마라. 기사 아저씨한테는 그 한 평 남짓한 택시 안이 오늘의 우주고 너는 잠시이자 오래 간의 유일한 말벗이다. 대꾸를 못 하겠거든 잘 들어라도 드려라. 보냈더랬다.


그 결과로는, 육두문자는 피했지만 뭐 이런 게 다 있냐는 식의 피드백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뿌린 대로 거둔다더니. 그로부터 몇 달 후쯤인가. 정확히 반대의 상황에 직면한 내가, 또 때마침 그 친구와 연락 중이던 터. 와 나 너무 피곤한데 기사님이 말씀을 너무 많이 하셔라는 의식의 흐름대로 톡을 보냈던 모양이다. 친구에게서 온 답을 보고 아뿔싸! 돌려받는구나! 알았던 걸 보면 말이다.


에이, 그럼 쓰나! 기사 아저씨한테는 네가 세상의 전부고 너의 침묵은 세상과의 단절인데 좋은 말벗이 돼드리렴… 블라블라.


그렇게 십몇 년이니 그간 택시를 탄 건 수없고. 기사님들에 대한 생각은 뭐 변함없다. 나를 무사히 바래다주셔서 감사한 분들.


달라진 거라면,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이 늘 귀에 꽂힌 상태니 자의적, 기계적으로 대화가 줄거나 제한적이어졌다는 것. 그리고 그게 택시 이용의 기사-승객 간 매너가 됐다는 것.


허나 그럼에도 아직 대부분의 기사님들이 내게는 어르신들이라, 그들의 음성 하나에 귀가 쫑긋하거나 짧은 음절도 곧잘 캐치하는 중인데. 어제 퇴근길에 탄 택시가 유독 인상적이게 그랬다.


달리는 창으로 본 달이 유난히 밝고 똥그랗길래. 뭐야 왜 보름처럼 예뻐? 생각하고 마는 그때. 기사님 음성이 들리는 것 같기에 이어폰을 빼고,


네? 뭐 말씀하셨어요? 하니 바로 이어지는 목소리.


앞에 포르투갈이랑 스페인 손님이 탔어요. 근데 문 문 하는 거예요. 자꾸 문을 말하니까 창문이 열렸나? 창문을 열으라는 건가? 열었더니 이게 아닌 거 같고 그럼 문인가? 달리는데 문을 왜? 이상하잖아요. 근데 아가씨. 그 문이 달이었어요 달. 나는 외국 손님인 건 알았으면서도 문은 영어로 생각을 안 하고 짜꾸 한국어로 창문. 문만 생각한 거야. 문을 보라는데. 씨 문. 하는데 문을 달로 떠올리지를 못 했지 뭐예요.



아. 달이 예쁘다고 기사님 달 보시라고요?


맞아요. 문 보라고. 그니까 문이 그 문이 아니라 달인데. 나는 맨 창문. 문만 찾았지 뭐예요. 그런 일이 있었어요. 손님 타시기 전에.


ㅎㅎㅎ 달이 진짜 예뻐요 기사님 오늘.


그랬다. 그 스페인 포르투갈 손님도 달이 얼마나 예뻤으면 아저씨에게 달 좀 보라고 다 말하고 싶었겠는가. 그 정도의 일화니 기사 아저씨도 응당 다음 손님, 다른 사람에게 말해야만 하는, 어딘가 가슴 두큰두큰하는 에피소드였으리라. 내가 회사서 있던 일을 신랑에게 종알거리고 싶어 하듯 말이다.


사실 경청이며 공감, 대화는 하고 나면 대부분 따뜻하다. 또한 필요하고 얼마든 할 수 있다. 기사님들과의 이야기가 어렵거나 불편한 건 아니다. 다만 그저 내가 통 그 리듬을 모르겠는 정치 얘기 같은, 자신 없는 주파수일 때. 뽑아 올릴 안테나를 몰라서 그렇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한적인 상황과 관계에서의, 필연적인 침묵과 단절이 아직 힘들어서…


하지만 어제 퇴근길 탄 택시는 그런 거 다 모르겠고, 꼭 고딩 야자 때 들었던 심야 라디오 프로 같았다. 장르도 말랑한데 사연도 감성적. 밤에 달이라니. 문이라니. 그리고 그 달은 또 그렇게 예쁘다니.


내가, 세상을 조금 더 친절하게 사는 법은 명확하다. 또 쉽다. 내가 만나고 대하는 직업군이 우리 부모님의 것이다 생각하면 결단코 누구에게도 함부로 할 수, 싸가지 없을 수가 없다. 물론 난 우리 선하디 선한 엄마아빠의 딸이라, 애초에 이미 어떤 분에게도 그럴 수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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