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온 동네가 서울에 또 없을 부촌이었다

by 씀씀


약 보름 전 이사를 한 상황. 지금쯤이면 전입신고서 잉크는 말랐다고 봐도 되려나? 모쪼록 그래줬으면 좋겠는 이유는, 새로 살게 된 동네에 대해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다. 아무리 쓰는 자유가 있단들, 전입신고 잉크도 채 안 마른 생초짜 주제에, 그 동네가 어떻네 떠든다는 건 스스로도 밍구하기에 예의부터 차렸다.


이번에 치른 이사란 무려 신혼집. 나와 신랑은 결혼 6개월 차인 이달에야 살림을 합쳤다. 본격 신혼생활의 시작! 아니… 시작하려 애쓰는 중.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한 짐들의 대환장 파티 속에서, 생활 영위부터 출근 미션까지 클리어하며 인간 구실 하려다 보니, 현재 상황. 단내 나는 신혼집이 아닌 열악한 임시 거처에서 겨우 거주 중인 느낌이기 때문이다.


새 집에서의 두 번째 주말인 지난 3월 28일, 29일에도 상황은 여전했다. 여자는 여자대로 남자는 남자대로 "내가 다시 옷을 사나 봐라" "내 추구미는 이제 진짜 미니멀리즘이야" 자기반성을 해대니. 부부는 일심동체를 하필 이 영역에서 경험한다고?


치울수록 정리되는 게 왜 집이 아니라, 이 집 사람들의 정신력과 체력인 것 같지. 정리와의 전투에서 패잔병을 자처한 우리는, 또 한 번 일심동체의 기적을 경험하며 집을 나섰으니. 이제부턴, 여기서부턴 우리가 정리해야 할 짐이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저 행복. 저녁 외식 겸 산책 겸 동네 구경 겸 나온 길은 자유로웠다.




신혼 첫 살림을 꾸리게 된 동네. 머리칼이 파 뿌리 되어 돌이켰을 때 가장 젊었고 부부로서 제일 서툴렀으며, 촘촘하게 달콤하면서도 열렬히 싸웠을 시절인 신혼의 첫 단추를 꾀는 마을로, 서울 많고 많은 곳 중 이곳을 택한 데에 특별한 사연 같은 건 없다.


서울살이에서 동네란 엄연히 본인 선택이지만 또 순도 100% 자의는 아닐 때가 많기 마련. 지난날의 인서울라이프가 그랬듯 이번 역시였으니. 회사까지 지하철로 무조건 원웨이. 그 시간은 가급적 짧아야 하며, 이를 만족하는 역이 위치한 무슨 동 무슨 동 중, 이 가난한 신혼부부의 경제 여건에도 아늑한 스위트홈 한 채를 내어줄 자비를 가진 곳.


이 당연하고 뻔한 사족을 달고 우리의 첫 보금자리를 마련케 된 곳은 말 그대로 평범한 동네. 굳이 말하면, 서울 핵심 구도 노른자위 땅도, 교통 요지도 아닌 그냥저냥한 곳이다만. 직장까지 지하철로 십 분. 이 하나로 모든 약점, 단점을 상쇄한달까.


반대 결의 부연도 해본다면, 이전 집은 위치 한 번 기가 막혀 직장까지 지하철 7분. 집 도보 5분 안에 백화점, 영화관을 빼곤 내가 필요로 하는 인프라를 다 갖췄던 것과 달리. 지금 집은 도보 5분 거리에, 음... 편의점 말곤 뭐 없는. 앞번과는 다른 의미로 기 막힌 위치.


그래도 반경을 도보 10분으로만 넓히면 별천지로 들어설 수 있었으니. 지금 이 쓰기도, 그 주말 집을 중심 삼아 도보 10분을 반지름으로 원을 그린다 생각하며 걷다 보게 된, 어떤 풍경에서 시작됐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았다. '처음'이었으니까. 대수로워지고 인상적이어지고 궁금해진 건 '반복'되면서부터.


날 좋겠다, 집 들어가면 정리 지옥이겠다. 이 길 저 길 발길 닿는 대로 향하는데, 자꾸 여기저기 영문 모를 의자가 있는 거다.


최초에는 당연히 아무 생각 없었으나 걷다 보면 나타나는 의자에 응? 싶어지더니, 이내엔 버리는 건데 폐기물 스티커를 안 붙였나? 그 관심과 호기심이 조금 더 길어졌다. 여기까지야 뭐. 거리 풍경에 이 정도 생각쯤은 가질 법하기에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그런데… 이건 서막에 불과했으니. 의자를 향하는 생각을 거기서 멈출 수 없게 만든다는 것. 그것이 이 동네의 특이점이었다. 대중 없이 오르고 걷고 내려가는 마다마다에 "어, 신입 주민들! 왔어?" 되게 당연하고 또 반듯하게 놓여 있는 의자 또는 의자들…


눈이 뜨이니 신경 쓰였다. 그게 뭐라고 찾게 됐고 마침내 보이면 신랑 팔뚝을 쳤다. "저기 저기, 의자!" 가보자며 앞장서 걷는 지경.



의자 너머 의자… 이 정도면 도로명주소를 의자로로 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사실 모를 일이었다. 서울 온 동네를 가 본 게 아니니 여느 곳들도 이 정도 의자쯤은 흔한 것을 내가 호들갑인가. 어쩌다 거듭 목격한 의자들을 내가 제멋대로 묶어, 서사를 부여하려는 걸 수도?


연이틀의 투어와 어제오늘 퇴근길, 다분한 의도를 갖고 동네 어귀를 둘러본 결과. 그건 아니었다. (물론 이마저도 내가 내린 결론이라는 게 함정)


이 동네는 걸을수록, 멀리 볼수록 많은 의자가 있었고, 그 모두가 일회성이지 않았다. 다들 느닷없는 위치에서 자리를 지키는데, 그곳은 주로 비탈길 중간이거나 경사가 완만해지는 지점. 그러니까 누구건 숨을 몰아 쉬고 또 숨을 돌려야 할 포지션이면 출처도 영문도 모를 의자가 툭, 있었다. 아니 아니. 기다리고 있었다.


비로소 알겠더라. 의자가 보이니 그 위치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자리들의 공통점을 보게 되니 의자가 거기 있는 이유들이 보인 것이다.


가파른 경사를 오르느라 여기까지 걷느라, 혹은 다른 어떤 류의 사정으로 고단할 누군가에게 무심한 척 전하는, 잠시 쉬어가란 속 따신 배려였구나.


물론 내 해석이 저 의자들의 본래 서사가 아닐 수 있으나, 필히 맞으리라 자만해본다. 만에 하나 아니었고 꿈보다 해몽이었더래도 뭐 어떤가. 누구를 해치지도 해롭지도 않은, 누구든 해피하고 해피로워지는 풀이였으면 된 거지.


살아봐야 알 일이지만 현시점으로는 우리 부부 되게 부자 동네로 왔구나 싶다. 어차피 내 집 아니고 어쩐들 투자할 돈 없으니 이 동네 땅값은 내 알 바 아닌 거. 나는 그런 거보단 마음값. 이렇게 비싼 마음을, 마음을 이렇게 비싸게 쓰는 동네가 흔할 리 없다. 집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지하철역, 삼겹살집, 선술집, 약국, 붕어빵 가게... 등등 내 선호 시설이 좀 없어도 잠자코 정 붙이고 살아봄직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온갖 것 다 갖춘 헉 소리 나는 위치에서 살았을 때도 못 채운 내 정서적 충만을. 도보 50분, 차로 50분을 달려도 느끼기 어려웠을 감성을. 별 힙한 동네서도 구경 못한 되게 촌스러운 디자인의 물건으로 상당히 세련된 멋을 내는 감각을. 산 지 겨우 2주 만에 흠뻑 느끼게 해 줬는데. 이 동네에 무슨 수로 정을 주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안 그런가? 의자 의 자의 자의 자의 자슥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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