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으로 살아봤습니다, 인생 별 거 없길래

사람 사는 건 별 거 없길래

by 씀씀


이맘때만 되면 얼른 오라고, 전국적으로

전 국민이 성화니 가기만 하면 예뻐해 줄 줄 알았는데. 그게 나의 착각일 줄이야.


나만 왔다하면 상 온통이 쁜 파스텔 물감 죄다 칠한 것처럼 고, 다들 설레 하는 걸 구경만 해도 찌나 배가 부른지. 루도 비우지 않고 꽉 차게 행복하기에


"와, 나 봄 하길 정말 잘했다"며, 우리 네 남매 모여 각자 어느 계절을 맡을지 운명의 사다리 게임을 하던 날. 나를 봄이 되게 해 준 3번 사다리... 그 마지막에 작대기 하나를 더 그려 넣은 나 자신을 셀프 칭찬해줬는데!


계절 팔자 한 번 녹록지 않았으니... 가장 큰 골치거리는 미스황이었다. 미스황에 대한 원망은 모두 내 차지가 됐기 때문이다.


몇 번을 생각해도 기가 찰 노릇. 아니 낸들 미세먼지, 스모그, 황사 따위가 좋을 리 있겠냐고. 여름 가을 겨울도 아니고, 자그마치 봄! 그 찬란한 내 이름에 먹칠을 하는 애들인데. 걔네한테 질색팔색이기론 인간들 너희보다 내가 더하다는 걸 어찌 그리 몰라주는지.


와줘서 반갑다, 고맙다 인사는 늘 잠깐. 미스황이 전세 낸 뿌연 하늘과 공기가 치 내 정체성인양 되어, 내게 주어진 시간을 낸다는 건 매년 겪어도 매번 씁쓸했다.


헌데 또... 그 웬수 같은 미스황도 벚꽃에 비하면 양반라 해야하는 건지. 미스황이야 어디에서건 불청객니 알고 맞는 매였다면, 나의 시그니처 벚꽃 말 그대로 복병이었다.


왜냐고? 만사 꿰뚫는다는 인간 세상이면서, 신기하게도 벚꽃의 정체는 아무도 른다는 것. 그게 문제였다.

벚꽃은 사실 클래식하게는 계절의 여왕, 요즘말로는 트민계(트렌에 민감한 계절)인 내가 이 땅에 그냥 오긴 좀 허전해, 이왕이면 더 예쁘게 보이자며 련한 액세서리데.


희한도 하지? 왜 내 장신구 나보다 저들이 더 들뜨고 신나는 거지? 아니 나는 벚꽃을 언제 착용할지 생각 안 했는데, 하늘색이 제일 맘에 들고 온도가 딱 날 기분 좋게 하는 날 해볼까 하는 정도였거늘. 근데 이것들은 3월 댓바람부터 지도를 펼쳐놓곤, 여기엔 언제 저기엔 언제 벚꽃이 피네 지네를 정하고 소문내고 앉아있으니.... 내 바이오리듬을 무시하고 그 스케줄에 맞춰주기란 보통 성가시고 빡센 게 아니었다.


어디 그뿐이랴. 벚꽃은 가만있고 지들이 움직이는 일을 대체 왜 '벚꽃놀이'라 는지. 그걸 꺾어서 데리고 놀기라도 하면 몰라. 그냥 가만 쳐다만 보면서 그게 어째서 놀이람?멍 아니야? 왜 불이랑 물 보는 건 멍이라 부르더만. 불멍, 물멍. 그럼 이것도 벚꽃멍이 맞지.


아 맞다! 그 놀인지 뭔지 할 때마다 벚꽃이 지 예쁜 걸 눈치 채는 통에, 시즌 끝나고 나면 응?몸 값이 얼마나 높아지는데. 그런데도 그걸 내가 매년 고 오느라 얼마나 애 먹는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으면서.


말이 나와 말인데 벚꽃 빨리 떨어지는 거? 비 내리고 뭐 그래선 거 같지? 아니다?

그거 걔네가 지네 귀한 거 알아서, 니들 아쉬우라고 그래야 지들 더 좋아해주니까. 보통내기들이 아니고 걔네가.


근데 내 이미지... 어쩔...

소녀운 느낌과 다르게 방언 터졌네 오늘.


아 이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가자.

나도 자아가 있고 능동적으로 살 수 있는 자격이 있다 이 말이야. 그러니 올해엔 얼마나 머물지 정도는 내 맘인 건데. 그거 갖고도 뭐 그리 불만이 많은지.


니들도 어디 여행 갈 때 일정은 니들 편한 대로 짜면서 왜 나한텐 더 머물러라, 왜 이리 짧게 있다 가냐 매년 뭐라 하는 거니.


나도, 우리도요. 계절끼리 다 사전에 협의를 하는 거고 그거에 맞춰 움직인 말입니다.


휴... 근데도 뭐 어쩔까.

내가 뭐라고 해마다 오기 전엔 기다려주고 간다하면 아쉬워해주는 애들인데..

내가 거는 수 밖에.


오늘내일 내리는 비가 봄비라고 철석같이 믿는 것 같은데. 고 비 내리고 나면 이제 이려니 여기는 거 같은데. 거기다 다음 주에 춘분인데. 얘네 빨리 트렌치코트 입게 해 주고 코트랑 패딩은 집어넣게 해줘야 할 텐데.


아는지 모르겠다.

너네는 날 만나는 걸 '봄맞이'라는 이름으로 이것저것 준비하듯, 나 역시 너네 만날 준비를 1년 동안 열심히 해서 온다는 걸.


그러니까 올해는...

벚꽃은 더 튼튼한 애들로 넉넉히 담아왔고 하늘엔 파란색 물감을 좀 더 풀어고 태양한텐 피로회복제 잔뜩 선물해서

낮이 좀 더 길도록 준비했어.

그리고 미스황. 그것들은 좀 쉬라 했는데... 코로나가 그러고 있는 마당에 양심 있으면 너네라도 살살해야하지 않겠냐고

어루고 달래긴 했는데...

글쎄... 말이 통했을진 모르겠다.


니네 요즘 하듯 세줄 요약하면,

우울하고 탁한 건 여기. 겨울도 아니고 나도 아닌 이때에 다 털어두라고. 나랑은 마냥 쨍-할 생각만 하고 만나자고.


너네 너무 고생한 거 다 아니까

내가 못해도 5월 중순까지는 한 번 힘써볼게.


알아 들었으면 남은 며칠 나 만날 준비 바짝 해둬. 내가 너희 코 앞까지 와 있으니. 오늘도 이렇게 추웠는데 장난치지 말라구? 럼 어디 달력 봐봐 몇 월인가.


그래. '춘'삼월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