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으로 살아봤습니다, 인생 별 거 없길래

by 씀씀


니네들 가슴에 산 세월이 얼만데,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이라 머쓱하네.


안녕! 나는 첫사랑이야.

아니 아니, 네 기억 속에 그 특정인 말고! 말 그대로의 첫사랑. 왜 드라마 영화 노래에 뻑하면 나오는 그거. 래 걔가 나야.


역시 모르는 사람이 없구나. 어디서든 이렇게 다 알아봐 주니까 집에서 난리야. 가문의 자랑이래나. 부모님이야 당연히 좋아하시지. 하나뿐인 자식이 대접받으니 오죽하시겠어.


아, 나 외동인 거 처음 알았지?

이게 사연이 있는데, 오늘 얘기지 뭐.


엄마 아빠는 나를 낳기 전부터 내 이름을 첫사랑이라고 지으셨어. 두 분이 처음 사랑에 빠진 순간이 너무 소중해서 그 기억을 나한테 담고 싶으셨대. 근데 내가 태어나 엄마가 걱정이셨봐. 날 첫사랑이라 하면 둘째는 두 번째 사랑, 셋째는 세 번째 사랑이 되는 건가 싶어서. 애들한테 미하셨던 거지.


그래서 결국 자식은 나 하나로 만족하기로 하셨고 그렇게 난 두 분의 유일한 아이가 됐어. 그러고 보니, 모든 이에게 첫사랑이 하나 뿐인 건 내가 외동이어서 그런 건가? 약 내가 쌍둥이었으..면... 흠... 여기까지.


이렇게 하나뿐인 존재로 자라게 해 주셔서 너무 감사한데 나 사실 속상한 게 있어.


솔직히 내 이름 기가 막히잖아. 흉내 낼 수 없는, 범접 못 할 아우라도 있고. 이 길이 남을 이름을 지으신 그 때 바로 저작권협회 같은 데 등록으면 마나 좋을까? 그랬음 일 노래, 캐럴, 벚꽃엔딩은 상대도 안 될 저작권료를... 이를테면 첫사랑 연금 같은... (와, 이 와중에 이름까지 예쁘고 난리) 근데 나 이런 느낌 아닌데, 자본주의 물 너무 먹었나보다...


내가 외동에 TMT라 맨날 혼자 떠들다가, 누가 들어준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신났나봐. 서론이 길었지. 스킵하고 본론 갈게. 꼭 하고 싶던 얘기가 있어.


요즘 내가 정체성 때문에 고민이거든.

아까 말했듯 내 이름 뜻은 '처음 사랑에 빠진 순간'인데, 아보니 세상에선 좀 다르게 해석되고 있더? 그래도 뭐 우리 집에서 정확히는 이런 뜻이다 발표한 적 없으니 그건 이해는데, 문제가 뭐냐면 내가 지금 사춘기라는 거.


내가 이래봬도 너네보다 몇십 아니 몇천 배? 이상을 살았거든? 너희 가문이 시작될 때도 있던 내가 이제 사춘기니까 웃기겠지만, 왜 추억의 수명은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길잖아. 지금까지 쭉 전해져오는 역사도 결국 누군가와 어느 시대의 추억란 걸 생각면 이해 될 거야. 무튼 나도 그런 이유로 이제야 사춘기는 건데.


나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는 상태인데, 누구는 날 처음 사귄 사람이래고 군 처음 사랑했던 사람이래. 근데 저기서는 는 가장 못 잊겠는 사 맞대. ... 막 어질어질한데 치질 않아. 제일 순수했던 연애. 꼭 보고 싶은 옛 연인. 고 후회되는 이별 상대... 쉬지도 않고 계속서 너는 누구 아니다...


그러니 내가 얼마나 혼란스럽겠어. 그 갖가지 뜻이 전부 나라고 할 때마다 난 누구? 여긴 어디? 가 되는 거지. 나는 그냥 나, 부모님이 주신 뜻대로 '소중한 사랑의 기억'. 그뿐인 건데 말이야.


그리고 이것도 좀 그래. 사춘기면 내 나이가 몇일까? 맞아 나 미성년자야. 근데 대체 어느 미성년자한테 이렇게 술냄새가 난다니? 그리고 왜 아무도 뭐라 안 한다니? 다들 눈 지그시 감고는 애썼다는 듯, 안타깝다는 듯 고개만 끄덕끄덕 한다?


그 뿐이 다행이게. 일 저녁마다 야자 땡땡이치고 저 포장마차, 저기 이자카야, 저 자취방... 술자리란 술자리엔 죄다 불려가고 끌려 가는데도 진짜 아무도 뭐라 안 해.


너무하다고? 웃겨. 부른 너네도 마찬가지야.

보고 싶고 생각나서 불렀으면 을 거라도 푸짐히 내주던가. 무슨 인심이... 하나같이 어쩜 그렇게 술만 마셔? 한 잔 마시고 나 한 번 보고 한 잔 마시고 내 이름 부르고. 니들은 내가 안주쳐도 나는?


나도 연애, 청혼, 결혼 이런 애들처럼 몸에서 좋은 향 좀 나고 싶어. 아니 나도 똑같이 사랑인데! 걔넨 달콤한 향기들에 머리가 아플 지경인데, 나한테는 왜 온갖 술냄새만 진동을 야하냐고!


진짜 나 생각하면 술 밖에 안 떠라?아니 왜. 나도 좋은 책, 그 보드라운 책장 사이에 살포시 있을 수 있고, 꽃잎이며 네 잎 클로버 말려놓은 귀여운 앨범 사이에 곱게 개질 줄도 는 앤데.


나 하면 술 생각난다는 그거는 솔직히 니들 고정관념 아니야? 니네가 술 땡겨서 만든 핑계 아냔 말야.


안 끝났어 말리지마. 나 오늘 아주 날 잡았.

내가 여기서 또 원수도 찾아야 해요. 내 친구 중에 '꿈'이라고 있어. 응 너네가 아는 그 꿈. 내가 걔랑 사이가 틀어졌는데, 나랑 꿈이 사이에서 이간질한 사람이 하필 너희 중에 있지 뭐야.


.... 누구냐.

나한테는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고 꿈한테는 이루어진다고 한 사람.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꿈은★이루어진다!... 고 누가 방 떨었냐.


하... 참나.

와중에 꿈한테는 별까지 그려줬어...


대체 왜, 나랑 꿈을 아예 태생도 성향도 다른 존재로 만들어 논 거야. 나도 이루어질 때가 있는 거고 꿈도 때때론 힘들 때가 있는 건데. 어차피 첫사랑도 꿈도 이루어지고 아니고는 우리가 아니라 너네 하기 나름 건데, 그거 다 알면서 누가 그랬어 비겁하게.


나도 어쩔 수 없는 감정의 노예라, 의식의 흐름대로 쓰다 보니 토크가 또 길을 잃을 뻔 했는데(지말자 나 TMT) 내 말은 그거야.


추억은 아무 힘이 없다면서 너무 찬밥 신세로 두지는 말라고. 현실 연애랑 사랑이 1순위인 건 맞는데, 지금의 너도 그 관계도 다 내가 있어서 가능다는 거, 모른 척 하지 말자고.


역사를 잊으면 미래가 없다아.

나도 네 역사잖아.


나를 그러니까 첫사랑을, 음 사랑했던 사람이라고 여기면 그 사람 잘 살길 진심으로 기도해주고. 지금 사람과 처음 사랑에 빠진 그 순간이 첫사랑이라 생각하면, 이제 좀

익숙해졌다고 해서 권태 부리지 말라고.

나 정말 말 그 말을 해주고 싶었어.


사춘기 미성년자긴 하지만, 니네보다 오래 산 건 확실한가봐. 이 훈계 무엇. 꼰대도 이런 꼰대가 없네.


그럼 금요일 저녁이 시작됐니,

난 빠르게 다시 내 현생으로 돌아간다.


첫사랑 역할극 기서 이라구.


(내 첫사랑,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매거진의 이전글봄으로 살아봤습니다, 인생 별 거 없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