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 peace! 나의 오피스
1. 귀사의 돌아이는 안녕하십니까
저희 회사, 그러니까 저는 매우 안녕합니다.
Intro.
함무라비 법전에서 너무도 유명한 구절.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궁금했습니다. 저 뒤에 어째서 이 말은 빠진 건지. 눈눈이이만큼 중요하거니와, 힘없는 이들에게 가장 우선시 되는 생존전략.
'돌아이엔 돌아이'
생각해보면 답은 간단합니다. 함무라비 법전에 돌아이엔 돌아이라는 말은 없는 이유. 그 시대엔 그런 괴생명체가 없어서? 그럴 리가요. 그저, 법전을 왕이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함무라비 법전의 함무라비는 왕일지 언데, 감히 어느 백성 어느 관리가 나라 No.1이자 회사 대표인 왕에게 돌은 짓을 한답니까. 죽고 싶거나 회사 잘리고 싶은 게 아니고서야.
그러고 보면 그 때나 지금이나 남의 나라나 우리나라나 '돌아이'로 통칭할 괴생명체들은, 함무라비 왕처럼 지위가 높거나 힘이 센 이들에겐 나타나지 않았던 듯 합니다.(물론 간혹 예외는 있겠죠.)
나는 이것을 '돌아이 출현 우선의 법칙'이라 이름 붙였고, 우리가 아는 '돌아이 질량 보존의 법칙'과 함께 돌아이 관련 현상들을 공식화한 대표 법칙이라며 우겨볼까 싶습니다.
그러려면 이 대목에서 짚어봐야 할 문제. 돌아이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출현하고 존재하는 곳은 어디인가.
그 답은 아마도 당신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신 머릿속에 이미 답이 있을 테니까요.
모르겠다고요? 그럴 리 없습니다.
당신 회사 내. 당신 옆자리나 앞 사무실처럼 당신의 시력, 청력... 당신의 그 어떤 사정거리 안에는 반드시 1+a의 돌아이가 있을 겁니다. 애석하지만요.
찬찬히 생각해 보시되, 복수의 인물이 앞다퉈 떠오른다 할지라도 속상해하지는 마십시오.
그건 당신의 문제가 아니라 본디 '직장'이라는 곳이, 돌아이 번식에 최적의 환경을 갖춘 곳이기에 그런 것뿐이니까요.
그렇다고 돌아이의 증식이 꼭 직장이라는 공간의 문제라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장소는 죄가 없기 때문인데, 그 근거로 나는 우리가 익히 아는 말을 들겠습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는 그것을요. 그럼요. 중요한 건 사람일 때가 많습니다. 아직까지는 말이죠.
그래서일까요. 우리들의 오피스에서, 도의를 아는 인간이자 최소한의 됨됨이를 갖춘 동료로, 선은 지키며 내 자릴 고수하는 기본적인 일이, 마치 맨 몸으로 험난한 정글을 무사히 헤쳐오라는 것만큼의 비현실적 미션처럼 돼버린 것은? 사람이 문제고 사람의 문제라서?
돌아이가 많은 건 세상이 넓어서라던데. 그런 이치라면 나머지 세상 반쪽엔 그에 반대되는 비(非) 돌족도 많겠죠? 현재로썬 상상 속 동물 해태처럼 와닿긴 하지만 분명 있긴 할 터고, 그 비 돌족도 또 분명 회사는 다닐 텐데. 그렇다면 바라건대 그 축복받은 회사란 내가 다니는 회사면 좋겠습니다만, 아무리 행복회로를 돌려봐도 이 회사는... 빼박 서울 돌씨의 집성촌, 대한민국 돌족의 군락지.
괜찮습니다. 나는 박애주의자거든요. 내가 못 가지면 남이라도 가지면 될 일. 그러니 제발 이 땅의 한 회사만큼은 제 밥벌이를 남을 갉아먹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야만적 구성원이 없는. 일하고 돈 벌어가는 '직장'이란 개념 자체에 충실한 곳이 있다고 해주십시오. 그래야 한 날엔 희망, 한 날엔 위안이라도 삼죠.
하지만 역시나. 내 주변에 없어 그렇지 어딘가엔 있을 거란 바람은 '돌아이 질량 보존의 법칙' 앞에 '너 동화를 너무 많이 봤어'로 고꾸라지기 일쑤.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어딜 가나 있는 돌아이면 업무라도 익은 지금 자리가 좋으니 참고. 괴롭다고 똑같이 돌아이 되기도 격 떨어지니 참고. 그저 참는 것 밖엔 도리가 없으니 참고. 참고 참고 참을 수 밖에.
근데 요즘도 참을 인(忍) 자 세 번이면 살인을 면하는 거 맞나요? 난 왜 죽을 거 같죠? 내가 저지르는 살인은 내가 생각 없으니 면할 것 같은데, 내가 당하는 살인은요? 이렇게 참아 버릇해 주다간 나는 죽지 않겠습니까?
그도 그럴게, 참을 인 한 번엔 내 이름이 난도질당하고 참을 인 두 번에는 내 인격이 살해당하고 대망의 참을 인 세 번엔, 내 존재가 부정될 수도 있는 세상인 걸요.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세 번 참는다는 건, 참 착하다, 큰 사람이다가 아니라 "내가 호구가 될 상인가?" 자진납세 해주는 꼴이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쓰려고 합니다.
내가 어떤 돌아이들을 만났고 그들로부터 어떤 신박한 추억을 남김 당했는지. 마침내 나는 어떤 정당방위로 받은 만큼 베풀라는 선조들의 가르침을 그들에게 행했는지.
이 얘기를 왜 해야 하고 이 얘기가 어째서 필요하냐.
우리 모두는 알기 때문입니다.
꼭 총으로 쏘고 칼로 찔러야 사람이 죽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시대가 아님을. 총 칼 말고도 인간이 인간을 헤치고 해할 수 있는 무기가 너무도 풍요로운 세상이라는 것을. 그 전쟁통 속을 우리는 살아냈고 살아있는 한은 또 계속해 살아야 한다는 것과, 얼핏 보기엔 목숨부지에 인간구실까지. 그러니 '생존'에 가치를 두자면 오늘도 해낸 것이지만, 그 앞에 '건강한'을 붙인다면 그 즉시 대다수는 광탈. 얄짤없이 낙제한다는 것까지도요.
폼 나게는 못 살아도 건강히는 살아야 하는 거니까. 내가 날 아프게 하는 것도 가끔은 꼴보기 싫은데, 하등 자격 없는 것들이 내 영혼에 스크래치 내는 일을 언제까지 눈 뜨고 당할 수만은 없지 않겠습니까.
미친개에겐 몽둥이가 약이라면 돌아이에겐 그들보다 더 쎈. 상돌아이가 되면 그만입니다.
그럼 까짓 거. 돌아이로 살아보죠 뭐.
나는 이미 돌아이들에게 돌아이로 불리는 중입니다만, 그들이 만들어낸 물고 뜯기 좋은 그런 돌아이 말고 진짜 돌아이로 살아보렵니다.
그리고 이왕 돌기로 한 거, 좀 더 품위있게 돌아봐야겠습니다.
누구들처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게 아니라, 그저 쓰는 것으로요.
# 2에서 계속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