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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씀씀 Nov 01. 2024

마흔 전 상서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흔


이골 나는 표현이지만 이만한 게 없어 써보자면

서른부터 지금. 강산이 변한다는 십 년 동안

나는 크게 변한 게 없다.


어라? 근데 그 전에 잠깐. 별안간 궁금하다.


그 강산.

전국팔도 어디든 누구든 시도 때도 없이 찾는 그거.


변화의 싸이클을 인간들 시간으로 정해놔서

10년마다 본의 아니게

반강제적으로 변하는 걸로 돼버린,


그런 사실을 모르는 외계인이 보면

지구의 대한민국이라는 땅의 강산은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움을 꾀하며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참 부지런히 열심히도 산다 리뷰할 그 강산.

 

그게 요즘도 그럴까?

옛날옛적 강산들이야 그랬다 해도...

2000년대의 강산은, 글쎄

10년으로 안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이미 하도 바꿔놔서 더는 바꿔놓을 곳도 없을 거고

봄에는 꽃피우고 여름에는 녹음,

가을엔 발그레, 겨울엔 발가벗은...

그거야 걔 삶의 루틴인 거지 변화는 아니니까.


갑자기 궁금하지만 이쯤에서 삼천포는 마무리 짓고.

다시 본론 가야겠다.


오늘 삼천포의 결론:

속담도 시대마다 세대마다 리뉴얼이 필요할 지도?


...


이탈한 경로를 다시 찾았으니

돌아와 마저 이어가 보겠다.


생생하진 않지만 얼추는 기억난다.

앞자리 2에서 3이 될 때의 내 모습.


(지금 생각하면)

도통 모를 이유로 본인은 물론 친구들 모두 환희.

이제 진짜 어른 됐다며, 백세시대 생태계쯤은

가뿐히 무시하고 장착한 어깨 뽕.

회상하건대 그것은 우리 서른에 있어

가장 강력한 액세서리이자, 데일리템이었나니.


그래서일까.

지루하거나 외로운 날은 좀처럼 없었다.

디테일하게 보면 짜증 분노 눈물 원망 왜 없었겠냐만,

그것들보단 네온이 더 반짝반짝한 일 년이었다.


왜 그런 느낌.

뭔가 진짜 농익은 청춘에 들어선 것 같아서,

나 이제 사회적 젖살까지 쏙 빠졌다!

어엿한 어른이라구! 하며, 엣헴 엣헴 방방 떴던

2015년. 그 무수했던 낮과 밤. 그랬던 서른.


아스라이 아득해,

그 그림자라도 붙잡고 싶은데

다시 서른으로 돌아가라면

나는 불혹이 내일이라는 이유를 들어 사양하리라.


서른에서 서른아홉.

굉장히 먼 구간을 어쩌다보니 한 순간 점프한 지금.

강산의 10년에 견줄 정도로는, 나는 변한 게 없다.


뭐 물론 주름이 좀 자글. 탄력이 꽤 다운.

체력 몰라보게 저질.이라는

즐길 수 없는 변화들을 정통으로 겪고 있긴 하지만,


나는 서른의 꽤 많은 게 여전하다.

여전히 텅-인 통장, 아직 안? 못? 쓴 면사포.

출퇴근도 서른의 그 회사.


30대 꼬박이 일관되니,

마흔이라고 뭐 별다를 게 있겠냐?!

정신승리하고 있지만…


솔직히 좀 쫄린다.


불혹이라는 타이틀이 무안하게,

유혹에 허다히 흔들릴 내 정신머리가 걱정되고.


집도 절도 없이,

나이만 꽉 찬 하루살이로 살아갈

북적북적한 이 도시 정글이 숨 막힌다.


손주는커녕, 손주는... 이제 어려울 것 같은 상태로

사위도 못 봐드렸는데 흰머리가 지긋하다 못해

그마저도 얼마 없으신 연로한 두 분 생각에

가슴은 미어진다.


이와중에 그래도 다행은,

위와 같이 자기 객관화가 제법 훌륭하다는 건데.


그러니 알았으면

이제부터라도 정신끈 한 번 더 동여메고

달리면 그만 아냐? 할 수 있겠지만, 놉!


나는 인생 멀리 보며

티끌 모아 태산을 이룰 1. 지구력이 없다.


처서? 내 입이 삐뚤어져? 콧방귀 껴주곤

겨울까지 입 내밀고 버티는 모기 같은 2. 체력도 없다.


그리고 대망의 하이라이트.

무엇보다도 나의 성공한 인생, 행복한 삶을 두고,

다수의 타인과 사회가 암묵적으로 정해놓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에 대한 3. 공감능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집 없고 차 없고 결혼도 안 하고 어쩌려고 저럴까?

우려를 살 수 있는 게 내 마흔의 일일지 몰라도.


하우스푸어 아니고 카푸어도 아니고,

빚도 재산이라는 시대에 그런 재산은 일절 안 키우며,

결혼을 위한 결혼을 하고 싶진 않은 소신을 지키며

사는 내 고집을 격려하고 싶다 나의 마흔엔.


들어와라 마흔!

내 지난 39년이 네가 일용할 양식이다.

거하게, 스페셜하게 준비했으니 배 곯진 않을 거다.


너무 실패하지도 너무 성공할 것도 없이,

여기까지 축적한 데이터들 잘 활용하고

내 30대와 잘 동기화돼서,

나 반백살도 먹게 해주라 무사히.


49세에 50세를 맞으며

오늘처럼 이렇게 자기객관화 살벌하게 하는 거.

그게, 내가 나에게 주는

내 마흔, 내 40대의 유일한 미션이다.

1분 후를 모르는 게 우리 사는 일이니까.


중꺾마 알지?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흔이야!

알겠나? 그럼 굳세우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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